"돈 줄 테니 스트립 춰라" 모욕 여전···폴댄스는 강건한 스포츠입니다 [영상]
'야한 댄스'로 왜곡돼온 폴댄스
'애마'에 담긴 진짜 폴댄스 모습
"1년 이상 배워야 가능한 동작"
'여성 운동'에 가하는 모욕 끊어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마'는 여성 성상품화의 상징이었던 영화 '애마부인(1982)'을 여배우들의 투쟁기로 변모시킨 작품이죠. 눈치채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드라마 4화에는 전반의 메시지를 기가 막히게 담아낸 '이스터 에그(몰래 숨겨둔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연회'에 등장하는 폴댄스인데요. 폴댄스는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트립댄서가 바닥을 훑으며 '흐느적'거리는 동작을 하는 퇴폐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지만, 이 드라마 속 배우들은 다릅니다. 회전하는 폴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공중으로 몸을 띄운 후 3초가량 버티다가 몸을 뒤집어 오금을 걸고 버티는 등 근력이 상당히 필요한 폴 스포츠 기술(인버트와 레그체인지 등)을 선보입니다.

애마 제작진 측은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해당 장면을 위해 일반 배우가 아닌 전문 폴댄서를 섭외했다"면서 "크고 힘 있는 동작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는데요.
폴댄스는 과거 여배우들이 그랬듯 미디어에서 성상품화의 상징으로 소비돼 왔지만, 사실 강건한 스포츠입니다. 신체가 드러나는 복장을 입는 것도 팔, 다리는 물론 승모까지 전신 피부 마찰력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철봉을 오를 때 장갑을 낀 미끄러운 손보다는 마찰력 있는 맨손이 수월한 것처럼 말입니다.
매일 불쾌한 전화받는 폴댄스 학원
지난달 25일 서울 양천구 오하운폴댄스 목동점에서 만난 김시연 원장은 '애마' 속 폴댄스 장면에 대해 "2, 3초가량 찰나에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주변 강사들과 수강생들 사이에선 기존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던 폴댄스의 모습이 아니어서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속 기술들에 대해서 "근육과 균형을 섬세하게 컨트롤해야 하는 동작"으로 "평소 주 2, 3회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어도 1년 정도 배워야 드라마 속 장면처럼 완성도 높게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어요.

애마는 시대와 함께 변했지만, 폴댄서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애마 원작인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여성들이 많이 하는 운동과 함께, 폴댄스 영상·사진을 공유하며 왜곡된 성인지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 원장은 "공개돼 있는 학원 업무용 번호로 하루에 두 번씩은 부적절한 전화나 메시지가 온다. 새벽 두시에 전화를 걸어 '돈 줄 테니 다 벗고 폴댄스 춰주는지'를 묻기도 한다"면서 "수업 진도나 오늘 배운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주변 선수나 강사, 수강생들이 외모평가나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왜곡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가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해요. 2023년 10월 부산에서 한 남성이 학원에서 폴댄스를 배우는 여성들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자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 공연음란죄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받았습니다. 그해 11월엔 성범죄 전과자가 서울의 폴댄스 학원에서 수업을 6차례 지켜보다 스토킹 혐의로징역 6개월형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요.
매년 국제대회 열리는 폴스포츠
폴댄스는 매년 국제대회가 열리는 엄연한 스포츠 종목입니다. 2009년 설립된 국제폴스포츠연맹(IPSF)은 2011년 국제체조연맹(FIG) 자문을 받아, 폴스포츠의 올림픽 종목화를 목표로 규정집을 만들었죠. 이 규정집에 따르면, 폴스포츠는 운동수행능력과 예술적 요소를 종합 평가합니다. 남성은 물론 장애인 종목도 있죠. 의상은 스포츠 성격에 적합해야 하며 과도한 노출은 금지됩니다.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피부 마찰력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짧은 바지와 조끼, 크롭톱을 입을 수 있습니다.

각종 폴스포츠 대회 출전 선수를 지도해온 김 원장이 진행한 이날 수업에선 연신 "그렇지!" "잘한다!"와 같은 우렁찬 응원이나 함성,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연신 터져나왔습니다. 수강생들이 동작을 성공해 낼 때마다 또는 안타깝게 실패할 때마다 한마음이 되는 모습이 마치 야구장이나 체육관을 연상케 합니다.
수업 전 30~100개가량 진행되는 푸시업 등 준비운동은 폴에서 추락할 때 입을 수 있는 부상 방지를 위해 필수입니다. 그는 "폴댄스 자체가 단순 반복 동작이 아니라, 여러 기술에 '도전'하는 운동"이라면서 "수강생들끼리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마치 콘서트처럼 응원하는 분위기가 특징으로, 오랫동안 실패했던 동작을 연습하다 해내면 끌어안고 울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갖게 되는 유대감이 무척 크다"고 설명했죠.

"모든 스포츠 존중받길"
김 원장의 바람은 폴댄스는 물론이고, 모든 스포츠가 '존중'받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피겨, 발레 등을 보면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생각만 했지만, 폴댄스를 하고부터는 저렇게 가벼운 움직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는 인내, 참을성, 도전 정신이 뒷받침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떤 운동이든 직접 해보면 예술성이 있는 스포츠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당부도 했습니다. "자신감이 부족한 편이었던 저는, 폴댄스를 통해 '내 몸을 컨트롤해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경험을 하며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결과를 만들기까지의 성취감을 경험해보셨으면 합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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