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반이민 갈등 심화…흔들리는 '유럽의 기둥들'
삐걱대는 영·프·독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8대 노동조합이 주도한 전국 총파업 모습. 이들은 사회복지 동결, 긴축 반대 등 요구 시위를 벌였다. [AFP=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3/joongangsunday/20251013135647141rxme.jpg)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8년 동안 7명의 총리를 교체했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최다 기록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취임한 지 불과 27일 만에 사임했다. 올 들어 세 번째 내각 붕괴이자, 현대 프랑스 역사상 총리 최단 재임 기록이다. 10일 AFP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새 총리를 발표한다. 이에 앞서 엘리제궁으로 주요 정당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이 같은 정치적 불안정은 재정 위기에서 비롯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가 116%, 재정 적자는 5.8%에 달했다. 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복지를 줄이는 재정 개혁을 꺼내 들었지만, 우파와 좌파 모두 그의 개혁안을 거부하고 내각을 잇따라 붕괴시켰다.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정치적 분열’을 이유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중앙은행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GDP 성장률을 약 0.2%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르코르뉘 총리, 취임 27일 만에 사임
하지만 프랑스 국민 수십만 명은 지난달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공휴일 축소 반대” 등을 외치며 버스를 불태우고 바리케이드를 쳤다. 폴리티코 등 외신들은 “프랑스가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주요국들이 위기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정책 실패의 누적이다. 유럽에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경제조차도 불안하다. 독일은 2023년 -0.9%, 지난해 -0.5%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독일은 그간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해 왔으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급 악화와 급진적 재생 에너지 전환이 맞물리면서 산업 경쟁력이 추락했다.
정치적으로는 중도·기득권층의 정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치명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 스타머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소속 정당과 별개로 대체로 중도 지향적 정치를 표방했다. 그러나 복잡해진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우리몫 빼앗겨” 자국민 우선주의 확산
특히 이민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갈등이 응축된 이슈다. 일자리와 복지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면서 유럽 중산층 사이에선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민 우선’을 앞세우는 극우파들의 지지 기반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국민연합(RN)’, 영국의 극우 ‘영국개혁당(Reform UK)’은 모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RN의 경우 제도권 정치에 뿌리를 깊숙하게 내려 “프랑스가 유럽연합(EU) 내 극우 축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폴리티코)”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영국 데이터분석업체 유고브 조사에선 영국인의 44%가 “지금 정치 의제를 주도하는 세력은 개혁당”이라 답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5~26%로 1위를 달리는 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아예 국경을 넘은 우파 연대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대놓고 AfD를 지원했다.
동유럽은 이미 극우 중심 정치로 재편됐다. 지난 3~4일 실시된 체코 총선에서 ‘프라하의 트럼프’로 불리는 안드레이 바비시의 극우 ‘긍정당(ANO)’이 승리했다. 지난 6월 폴란드 대선에서도 극우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받은 카롤 나브로츠키 무소속 후보가 이겼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유럽의회에서 일찌감치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유럽 외교관은 이런 현상을 두고 “이제 유럽의 물결은 바뀌었다. 문제는 그 선택이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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