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정협회의 첫 주재…'뒷방 신세' 후춘화 부활설
[유상철의 차이나 워치] 시진핑 이후 후계 구도
![후춘화(오른쪽에서 두 번째) 정협 부주석이 8월 지린성에서 열린 동북아박람회를 둘러보고 있다. 당시 후춘화는 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를 대신해 시진핑의 편지를 대독했고, 지린성 서열 1·2위인 당서기와 성장이 배석해 위상이 달라진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았다. [사진 지린성 공식 홈페이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5/joongangsunday/20251015082449471cegi.jpg)
게다가 퇴임 직전 간부들이 머무르는 양로원 성격의 정협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1963년생으로 당시 59세이던 후춘화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후춘화는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을 대표하는 주자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리커창 전 총리의 뒤를 잇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청단 견제에 밀려 정계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후진타오가 20차 당 대회 때 끌려나가듯이.
후, 후진타오·리커창 잇는 공청단 대표주자
한데 그가 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를 대신해 박람회장에 나타났고 시진핑의 축하 편지를 대독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막식 이전에 후는 박람회 전시관을 둘러봤는데 지린성의 황창 당서기, 후위팅 성장, 주궈셴 정협 주석 등 지린성의 서열 1위와 2위, 4위가 그의 곁을 지켰다. 성의 핵심 인물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대거 몰리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후춘화는 정치국 위원이자 부총리이던 2019년에도 이 행사에 참석했지만 당시에도 이 같은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시진핑의 권력 이상설 속 점차 넓어지는 후춘화의 보폭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23일 베이징에서는 정협 제14기 전국위원회 상무위원회 12차 회의가 열렸다. 눈에 띈 건 후춘화가 회의를 주재했다는 점이다. 이전 11차례 회의는 정협 주석인 왕후닝, 또는 후춘화보다도 서열이 낮은 이들이 회의를 진행했다.
후의 회의 주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진핑 권력의 퇴조가 후춘화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시진핑 주석이 바로 퇴진한다는 뜻을 가진 실각설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시 주석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하며 이에 따라 이젠 ‘시진핑 이후’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시 주석의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는 많은 이가 공감한다.
시진핑의 건재를 과시한 9·3 전승절(戰勝節) 행사는 역으로 전과 같지 않은 시진핑의 건강 상태를 드러냈다. 당초 오전 10시에 시작하려던 행사를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한 시간 앞당겨 열었다. 시 주석의 연설문 또한 짧아졌고 분열식 때는 의자가 준비됐다. 과거엔 모두 서 있었다. 천안문 성루로 이동하면서 시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눈 장기 이식 등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화도 괜히 나온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7월 초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는 리창 총리가 참가하고 7월 7일 베이징 서부 외곽 노구교(蘆溝橋) 부근에서 열린 항일전쟁기념관 확장 개장 행사에는 차이치가 장유샤 군사위 부주석과 왕샤오훙 공안부장 등 주요 간부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같은 시각 시진핑은 산시성 시찰에 나섰는데 중국 언론조차 특별한 부각을 피했다. 1인 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후계자의 조건으로 충성·감정·능력·영도력·가치관 등을 보는데 딩이 가장 앞선다. 딩은 2013년부터 10년간 국가주석 판공실 주임으로 일하며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국사는 물론 집안일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지 않은 게 없다. 충성과 감정 면에서 시 주석과 가장 잘 통한다. 또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국내외 대소사를 처리해 능력과 영도력 면에서도 검증은 끝났고 노선 또한 다르지 않다.
천지닝은 64년생으로 칭화대를 나와 영국에 유학한 엘리트다. 칭화대 총장, 환경보호부 부장, 베이징 당서기를 두루 역임하고 현재 상하이 당서기로 있다. 천지닝 이전의 지난 35년 동안 역대 8명의 상하이 당서기 중 숙청된 천량위를 제외하고선 7명 모두가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차기 총리가 유력하다는 말을 듣는다. 군에 대한 권력은 장유샤가 놓을 리 없다. 그래서 당(黨)은 딩쉐샹, 정(政)은 천지닝, 군(軍)은 장유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 앞서 말한 후춘화의 부상이 예사롭지 않다. 63년생 후춘화는 후베이성 우펑(五峰)현이 낳은 최초의 베이징대 합격생이다. 우펑현은 소수민족인 투자(土家)족 자치현으로 후는 16세 때 현 전체에서 문과 수석을 차지하며 중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비가 없었다. 후는 여름 내내 수력발전소 현장에서 삽과 광주리를 들고 일해 100위안을 모았고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더해 간신히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 전승절 연설 짧아지고 의자에 앉기도
대학 졸업 후엔 티베트 근무를 자청해 20년을 오지에서 보냈다. 동굴에서 말린 떡을 먹고 눈 녹인 물을 마시며 도로 공사를 완성시키는 등 모범적 활동으로 광명일보(光明日報)에 80년대 중국 청년의 역할 모델로 그려지기도 했다. 후는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는 신조 아래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겸손하고 국제적 감각도 갖췄고 한국의 차세대 정치인 그룹과도 교류가 적지 않았다.
후는 시진핑 집권 초기만 해도 쑨정차이와 함께 총서기와 총리 자리를 나눌 것이란 말을 듣는 차세대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2017년 쑨은 숙청됐고, 후는 숙청은 피했지만 그로부터 3년 후 뒷방으로 밀리는 신세가 됐다. 그런 후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여름 이후다. 즉 시진핑 건강 이상설이 돌면서다. 지난해 10월 후춘화의 글이 중국 언론에 실렸고 12월엔 한정 국가부주석을 대신해 스페인을 방문했다.
지난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후춘화는 안후이성을 시찰해 눈길을 끌었다. 안후이성은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과 왕양 전 정협 주석의 고향이다. 이어 4월 중순엔 대표단을 이끌고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고 6월엔 정협 대표단을 이끌고 랴오닝성을 시찰했다. 특히 지난 8월 말 시진핑의 티베트 방문 이후 왕후닝이 조직한 대표단의 한 지도자로 후춘화가 린즈(林芝)를 방문한 게 주목을 받았다.
수력발전소 현장과 천장(川藏)철로, 농가 방문 등 일정이 2021년 시 주석이 린즈를 찾았을 때와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고위 간부의 인사를 다루는 조직부 수장에 후진타오와 관계가 깊은 스타이펑이 올랐다는 점도 후춘화에겐 유리한 요소다. 특히 최근 장유샤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알려진 시 주석이 세(勢) 만회를 위해 공청단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돈다.
딩쉐샹이나 천지닝 등은 흔히 시 주석의 배려와 보호 아래 성장한 온실 속 화초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반해 후춘화는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인동초에 비유된다. 따라서 ‘시진핑 이후’ 일단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면 후가 더 강한 생존력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바람이 없으면 물결은 일지 않는 법이다. 후춘화 관련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춘화의 부활 여부를 지켜볼 때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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