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장 직접 다녀왔다"…사장들 긴장시킨 '매의 눈'
정주영 110주년…미공개 회의록으로 본 ‘위기극복 리더십’ 〈3〉

1984년 7월 9일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 시작과 함께 정주영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무 책상 이야기했었다. 같은 값이면 철제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이니 그렇게 공급하자고 했는데 왜 실행을 안 했지? 물건을 구매할 때, 그룹 내에서 조달이 불가능할 때만 외부에서 사라고. 두 회사(현대전자·현대종합목재) 모두 시말서 제출하라.”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는 종종 ‘무덤’과도 같았다.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잘 아는 정 회장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내가 다녀왔는데…” “내가 가봤더니…”로 시작되면 타깃이 된 계열사는 대개 진땀을 흘려야했다. 한 계열사 사장이 얼이 빠져 나가다 캐비닛을 문으로 착각해 열고 들어갔다는 후일담도 있을 정도였다.
![현대울산조선소 건설현장을 찾은 정주영 회장과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 겸 당시 국회재경위원장(왼쪽 다섯째). 첫 수주한 유조선을 건조하고 있다. [사진 김명호 교수의 ‘건설자 정주영’]](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1/joongangsunday/20251011000257131cctg.jpg)
현대강관 차례였다. “자재 관리나 제품 관리에 대한 교육은 잘 이뤄지고 있나? 지난 번에 공장과 창고를 전부 둘러봤더니, 제품들이 시뻘겋게 녹슬어 있어. OOO 부사장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걸 그때 느꼈어.”
“본사에서는 공장에 가면 사무실에서 얘기만 하지 말고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직접 확인도 하고 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라. 노력하면 (재고를) 줄일 수 있고 그게 곧 이익인데, 거기 가서 저 아래 겨우 과장 정도나 만나고 오는 모양이다. 그게 본사야?”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에서의 정 회장. 이 공사는 현대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중동 건설 붐을 이끌었다. [사진 김명호 교수의 ‘건설자 정주영’]](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1/joongangsunday/20251011000258400ffit.jpg)
같은 해 11월 26일 그가 계열사인 인천제철 임원과 나눈 대화에는 이런 면이 잘 드러나 있다. 정 회장은 “인천제철은 시설 빨리 개선해서 명년에는 H빔(건축에서 건물의 뼈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H모양의 강철기둥)을 꼭 계획대로 내놓아야 한다. 언제쯤 완성되나”라고 물었다. 인천제철이 수압으로 쇳물을 받아내는 시설을 미쓰비시에서 들여오는 데 8개월이 걸린다고 답하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정 회장=“그걸 우리가 여기서 만들지, 뭐 하러 일본까지 가서 해오나.”
▶인천제철=“그건 저희가 못 만듭니다. 그 안에 물을 통과시켜 냉각을 시켜야 하고, 그 통로 부분을 동(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내 제작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정 회장=“그렇게 혼자 어물거리지 말고 (현대)엔지니어링 OOO 부사장이랑 상의해라. 견본 보고 만들면 되지 않나. 우리도 만들 수 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기술자도 아닌 당신이 혼자 붙들고 있나. 내가 항상 얘기하지 않았나. 그런 일은 반드시 기술자한테 자문하라고. 몇 달을 허비했어? 참 한심하다.”
해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정 회장은 “종합상사 해외지사는 뉴저지 지점과 샌프란시스코 지점 중 한 곳에서는 월요일 아침 6시, 다른 한 곳에서는 화요일 아침 6시에 나한테 꼭 전화하라고 일러달라. 리야드는 수요일 아침 6시에 전화 달라”(1985년 6월 3일)고 지시했다.
정 회장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현장의 사나이’로 통했다. 모두들 참 열심히 일했으나 그래도 내가 현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크게 달랐다. 현장 사람들 모두의 걸음걸이부터 달랐으니, 경영자가 직접 현장을 챙기고 안 챙기고의 차이는 대단히 큰 법이다… 원효로 4가에 있는 중기 공장은 매일 하루 한 번씩 가다가, 어떤 날은 하루 두 번도 갔다. 방심하고 있던 직원들을 혼이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 스케치. [사진 김명호 교수의 ‘건설자 정주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1/joongangsunday/20251011000259658numq.jpg)
“동서산업도 P.C(Precast Concrete) 콘크리트에 대해서는 지난번 현장에서 해 놓은 작업을 기준으로 보면 낙제다. 콘크리트의 품질도 그렇고, 강도도 그렇고 앞부분이 너무 두꺼워질 수밖에 없지 않아? 내가 보기엔 아직도 10년 전 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던데, 과거 중동에서 하던 방식보다 발전된 형태로 구상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전자 공장 (건설현장)에서 하는 걸 보면 딱 보여. 지난 주 일요일에 나가봤더니 예산 승인도 안 났는데, 공사를 하고 있길래 중단시켰다. ‘얼마에 하느냐’ 했더니 ‘삼천몇백만원입니다’라고 하더라. 100만원이면 될 일을 3000만원에 한다고? 당신네 밑에 있는 사무 라인에서 전부 현장 조사를 하면 그런 계획은 나올 수 없다. 어물쩍 넘기지 말라. 회사 이익보다 자기 실수나 장난이 드러날까봐 더 걱정하니까 발전이 없지.”
“반도체 공장도 똑같은 설계를 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것과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 완전히 천지 차이다. 국내 건설본부장이 질 향상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야. 책임자가 만족해버리니 현장 사람들도 더 나아지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임원들도 ‘발품’을 팔아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자들이 아무리 바빠도 기계공업 전시장 등 모든 전시장에 전부 나가서 보라. 그걸 보고 바깥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무슨 전시든지 밑에 사람만 보낼 게 아니라 윗사람들이 나가보는 게 좋다. 그래야 감이 오는 게 있고, 설계를 할 때나 그 무엇을 할 때 남들보다 앞질러서 발전을 할 수가 있다.”(1984년 7월 9일 사장단 회의)
국내외 리셉션에도 웬만하면 참석하라고 했다. 정 회장은 “나는 리셉션이 아주 좋은 사교 장소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안면을 트고 인맥을 넓히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달라. 그게 영업이기도 하고 개인의 대인관계를 넓히는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소비자 평판을 중시했다. 그 또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1984년 10월 1일엔 이렇게 질책했다. “또 하나,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은 한국도시개발(현대 그룹 계열사) 당신네가 짓는 주택이 현대건설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거야. 그렇지? 그런데 팔 때는 ‘현대 아파트’ 이름으로 팔고 있지? 그건 회사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거다. 돈으로 따지면 몇 푼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떨어지는 공신력은 엄청나다. 특히 주택은 소비자인 주부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속도가 빨라. 불만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다. 각서를 받아서 품질을 확실히 보장하라.”
■ “하청업체 울리지 마라” 어음보다 ‘현금 지급’ 강조
「 정주영 회장은 “팔아주는 것이 큰 권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기업 중 누가 먼저 그 생각을 버리느냐가 제일 진보된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8월 27일 사장단 회의였다. 하청업체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의 말이다.
“대부분 하청업자들은 모기업보다 비싼 이자를 물고 자금을 돌린다. 수형(어음)을 늦게 떼 주면 결국 하청업자를 망하게 하든가, 아니면 돈을 더 주고 비싸게 사게 된다고. 하청업자가 어쩔 수 없이 받아간다고 해서 3개월 이상 수형 떼 주는 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기는 회사가 있는데, 현금을 못 주고 한 달이든 몇 날이든 수형으로 줄 때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돈이 없어서 못 주면서 수형을 끊어준 걸 더 당당하게 여기는 건 옳지 않다. 물건을 납품하면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회사에서 지급이 제일 늦은 회사가 어디야?”
계열사 상황을 보고받은 정 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은 90일이라는데, 이 사람들은 경영을 잘 못 하고 있는 거야. 자기 회사가 크다고 하청업체를 울리면 안 된다. 정부가 정책(2개월)을 시행하면 그대로 따라라. 인천제철도 반드시 두 달 안에 지급하고 될 수 있으면 한 달 안에 지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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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신수민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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