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구마밭이 코스모스밭으로… 의성 치매보듬마을의 가을 실험장
농업과 돌봄 결합한 마을형 복지 모델…치유농업으로 어르신 삶의 질 높인다

가을 햇살 아래, 분홍빛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경북 의성군 서부1리 치매보듬마을의 옛 이두초등학교 운동장. 10일 현재 이곳은 온통 코스모스 물결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땅은 고구마 줄기가 푸르게 뻗어 있던 흙밭이었고, 마을 어르신들이 허리를 굽혀 땀을 흘리던 노동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그들의 산책길이자 '치유의 길'로 변모했다.
지난달 30일, 이곳에서 의성군이 주최한 고구마 수확행사가 열렸다.
주민과 가족 등 30여 명이 참여해 지난 5월 함께 심은 고구마를 캐며 풍년의 기쁨을 나눴다.
운동장 주변에는 주민들이 7월에 미리 심어둔 코스모스가 만개해, 수확의 현장에 가을 정취를 더했다.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식물의 향과 색을 배우며 기억력을 키우고, 공동텃밭을 함께 가꾸며 협동심과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꽃을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루가 즐겁다"라는 한 어르신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서부1리 치매보듬마을은 농업과 돌봄이 결합된 복지형 마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의성군은 이 사업을 기반으로 내년에 신규 치매보듬마을을 추가 지정할 방침이다. 유휴부지와 폐교를 활용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사업은 식용꽃과 허브 재배, 체험활동을 중심으로 인지 향상과 사회적 교류 확대를 목표로 한다.
군 관계자는 "운동장을 코스모스로 단장해 주민 산책로 '운동길'로 활용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주민이 주도하는 공동텃밭 프로그램을 본격화해 돌봄과 여가가 공존하는 마을형 복지거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공동체 중심의 치유농업 활동은 어르신들이 '내가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기반"이라며 "유휴 텃밭과 폐교 공간을 활용한 돌봄형 복지모델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고구마밭에서 코스모스밭으로 변한 이 작은 운동장은, 농촌 고령화와 치매 문제에 맞서는 한 마을의 조용한 실험장이다. 여기서 어르신들은 흙을 만지고 꽃을 키우며, 잊혀져가는 기억과 관계를 되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