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명태, 추석 그리고 기후변화
더딘 변화 대응은 자기위로 불과
2035 NDC 연말 제출, 회피 안 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추석 연휴를 알차게 채워 준 TV 프로그램을 꼽자면 세계 각국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으로 경연한 KBS의 ‘K-가곡 슈퍼스타’다. 흥왕하는 K컬처의 기세를 타고 한국 가곡의 진가를 알리겠다는 게 기획 의도였다면 백 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상 입상자인 영국 바리톤 유리 유르추크가 한국인 성악가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명태’를 부르면서,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라는 대목에서 ‘캬’ 하고 후렴구를 넣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외국 성악가가 멋들어지게 뽑은 가곡 '명태’를 통해 한국적 해학이 만국공통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뿌듯했지만, 마음 한편은 씁쓸해졌다. 기후변화의 실상을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원산 구경이나 한 후’ 같은 부분은 곡이 발표됐던 1950년대에나 쓸 수 있을 법한 가사가 됐다. 1~5도 정도에 서식하는 한류성 어류인 명태가 살기에 한반도 바다는 너무 뜨거워졌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68~2024년 57년 동안 한반도 해역의 표층 수온은 1.58도 상승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全) 지구 표층수온 상승폭(0.74도)의 2배다.
비 때문에 이번 추석 연휴는 제법 서늘했지만 최근의 패턴을 보면 올해 추석이 이례적이다. 기상청 자료 분석(강찬수 환경신데믹 연구소장)에 따르면 1990년대 추석 당일 평균 기온은 가을 평균 기온(20도 이하)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20.3도, 2010년대에는 21.1도, 2020년대에는 22.6도까지 올랐다. 지난해 추석 당일(9월 17일) 서울 평균 기온은 28.6도를 기록했고 경남 사천시에는 추석 연휴 닷새 중 나흘간 열대야가 발생하기도 했다. 추석이 더 이상 가을 명절이 아닌 셈이다.
사실 세계 평화, 인류적 박애 같은 말처럼 ‘기후변화’라는 개념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존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대비하자고 하면 찬성하다가도 막상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 "당장 일도 아닌데 왜 지금"이라는 반응이 꽤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무책임한 자기위로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달 환경부와 기상청이 2,000여 편의 논문과 보고서를 집대성해 낸 ‘한국기후 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묵시론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정도에 따라,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금세기 후반(2081~2100)이 되면 최고 7도 더 상승하고 현재 연평균 8.8일인 폭염일수는 79.5일로 최대 9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보건에도 악영향을 끼쳐 2090년대 고령자의 초과사망률은 2000~2019년보다 최대 10.96%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자원, 생태계, 산림, 농업, 등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마침 올해는 우리 정부가 유엔에 2035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목표(NDC)를 제출하는 해다. 연말 제출할 목표치를 확정 짓기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진행 중인 대국민 토론회는 다음 주에 끝난다. 기후부는 2018년 대비 40%대 중후반인 산업계 감축안부터 67%를 주장하는 환경단체의 제안까지 4가지안을 내놓고 여론을 청취하고 있다.
일단 국제사회에 높은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나면, 우리 사회는 생산과 소비 구조의 전면적 전환이라는 큰 도전을 맞닥뜨릴 것이다. 정부는 소극적인 기후변화 대처로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이라고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시선과 에너지 비용 인상에 반발하는 국민 여론 사이에서 난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어느 대국의 대통령처럼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이왕구 사회정책부문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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