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그리움, 마지막 장미의 아리아 '마르타'

강성곤 2025. 10. 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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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한 떨기 마지막 장미'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 오페라 <마르타> 中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일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 참호. 휴식을 끝내고 다시 전투를 명하던 영국군 장교가 외쳤다. “자, 이제 프랑스 놈들 때려잡으러 가자.” 뜨악한 군인들의 표정을 본 후 그제서야 “미안, 프랑스가 아니고 독일군으로 정정하겠네. 진격!”

사실 영국을 구성하는 앵글로-색슨족(Anglo-Saxens)의 색슨은 독일 동부 지방 작센(Sachsen)에서 기원한다. 영국의 색슨족은 독일 작센에서 이주한 게르만 부족인 것. 음악 쪽에서도 헨델을 비호하던 조지 1세와 2세는 원래 독일인이었다. 영국 왕가 제임스 1세의 후계가 마땅치 않던 차 먼 친척뻘인 독일 하노버 공국 선제후였던 게오르크가 소환된다. 이 게오르크(Georg)가 바로 조지(George) 1세로, 대를 이어 헨델을 아꼈다.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Friedrich von Flotow,1812–1883,獨)는 19세기 오페라계에서 이국적이되 낭만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던 영국을 주목했다. 리치먼드를 배경으로 시골 농가, 귀족과 평민의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 장터와 인력시장을 주제로 한 독특한 희곡에 눈길이 갔다. 1844년 프랑스 작가 쥘-앙리 베르덩이 쓴 발레 오페라 <앙리에트 부인(Lady Henriette)>이 원작으로 독일서 <리치먼드의 장터(Der Markt zu Richmond)>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고, 이게 <마르타(Martha)>라는 여주인공 이름의 제목으로 바뀐 채 오늘에 이른다. 그러니까 영국을 소재로한 프랑스 대본에 입각한 독일어 오페라다.

독일 작곡가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Legé & Bergeron

막이 오르면 귀족 여성 하리엣(Hariett)이 궁중 생활이 무료하던 어느 날 하녀 낸시(Nancy)와 함께 리치먼드 장마당으로 간다. 둘은 신분을 숨기고 이름도 각각 마르타(Martha)와 줄리아(Julia)라고 속인다. 젊은 농부 라이오넬(Lionel)과 플런킷(Plunkett)은 두 여인이 마음에 들어 돈을 치르고 농장에 들이기로 한다. 2막은 마르타와 낸시의 농장 생활이다. 일을 잘할 리가 없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마르타에게, 플런킷은 줄리아에게 흠뻑 빠진다.

둘은 마음이 흔들리지만,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려워 탈출한다. 몇 달 후 다시 열린 장터가 3막 시작이다. 라이오넬은 마르타를 다시 보게 되지만, 귀족 차림의 하리엣은 그를 외면한다. 손을 잡으려 하다 제지받고 감금당한 처지. 그때 언젠가 어려움이 닥치면, 반지를 내보이라는 선대 유언을 따라 친구 플런킷을 통해 왕실에 반지를 전달하고, 원래 부유한 백작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4막은 사랑을 잃어 의기소침해진 라이오넬의 집에 마르타가 다시 찾아오고, 플런킷과 줄리아도 맺어져 두 쌍의 커플이 탄생한다는 해피엔딩이다.

2막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우리를 감싸 돈다. ‘한 떨기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

[독일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히이가 부르는 ‘한 떨기 마지막 장미’(1955) | Rita Streich | YouTube]

“한 송이 장미 홀로 피었네, 다 시든 꽃들 속에 / 벗들도 모두 떠난 자리에 그대만 남았구나, 아무도 없는 적막한 들에 / 그 향기 홀로 머금은 채, 누군가 손길 머문 그 자리에 / 그대는 슬피 서 있네, 외로이 핀 그 꽃을 남기려고 / 내 어찌 꺾을까나, 기쁨도 없이 지는 그대라면 / 나 역시 시들리라, 영원히 잠든 그대 곁에서 / 내 사랑도 지우고, 꽃잎을 따라서 / 저 하늘 너머 나 또한 잠들리라.”

아일랜드 전통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노래로 낭만주의 시인 토머스 무어(Thomas Moore,1779–1852)가 가사를 붙였다.

극중에서는 라이오넬이 하리엣 옷에 꽂힌 장미꽃을 장난스레 뺏었다 다시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구애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하리엣의 감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평민의 삶이 버겁고, 무엇보다 거칠고 서툰 노동에 지쳐 신체적⸱정신적으로 혼란과 피로, 외로움이 버겁다. 하리엣은 조용히 관조적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라이오넬은 이 대목에서 역설적으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리라 마음먹게 된다.

1950~70년대를 풍미한 독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Rita Streich,1920–1987)가 맛깔나게 잘 불렀다. 슈트라이히는 정확하고 투명하며 청아하다. 정밀하고 색채감이 뛰어나다. 뛰어난 테크닉을 발휘하면서도 무엇보다 따스하다.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 / 사진출처. © NHN Bugs Corp.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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