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나와라 오버!”…한국인 37%, 여행은 337!

강석봉 기자 2025. 10. 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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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관광기구 이사회 후보 진출, 한국인 방문객 37% 늘어



오버투어리즘 극복한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전경.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아드리아해 연안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가 지속가능 관광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단지 아름다운 풍경만 내세우는 관광지가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며 지역 주민과 조화를 이루는 여행 방식을 실천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크로아티아 관광청(CNTB)은 2025-2029년 임기 UN 관광기구(UN Tourism) 부속회원 이사회(Affiliate Members Board) 선거에 유럽 지역 및 글로벌 대표 후보로 나섰다.

UN 관광기구 이사회 유럽 후보로 선정된 크로아티아.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한국인이 선택한 지속가능 여행지

올해 1월부터 10월 초까지 한국인 방문객이 16만 명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37% 늘었다. 이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0.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자그레브 직항 노선이 올해도 유지되며 접근성이 높아진 점도 있지만, 한국 여행자들이 크로아티아에서 발견하는 것은 환경을 존중하는 ‘진짜 여행’의 의미다.

크로아티아관광청의 ‘포말로’ 캠페인.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포말로(pomalo)’라는 크로아티아어 단어는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라는 뜻이다. 크로아티아 관광청이 내세우는 이 슬로건은 붐비는 여름 성수기 대신 봄과 가을에 여행하기를 권하고, 유명 관광지보다 작은 마을에 머물기를 제안하는 실질적인 캠페인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이 느린 여행의 철학은 새로운 휴식법으로 다가온다.

과학적 모니터링으로 입증한 지속가능성

크로아티아의 지속가능 관광은 말뿐이 아니다. 자그레브의 관광연구소(Institute for Tourism)가 운영하는 크로아티아 지속가능 관광 관측소(CROSTO)는 UN 관광기구의 국제 지속가능 관광 관측소 네트워크(INSTO)의 일원이다. 이 시스템은 아드리아 해안 크로아티아의 가장 관광이 발달한 지역에서 관광지 수용력, 물 사용량, 폐기물 관리, 에너지 사용, 공간 개발 관리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모니터링한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Condé Nast Traveler)는 2024년 크로아티아를 유럽 최고 지속가능 관광지 상위 5곳 안에 선정했다. 2021년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 조사에서는 전 세계 지속가능 관광 순위 14위를 차지했다.

두브로브니크 전경을 내려다 보는 여행자.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두브로브니크, 오버투어리즘을 극복한 모델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2017년 뉴욕 타임스는 두브로브니크를 오버투어리즘으로 피해야 할 도시로 보도했다. 한때 최대 8척의 크루즈 선박이 동시에 입항하며 하루 9,500명의 승객이 좁은 구시가지를 뒤덮었다. 주민 1명당 관광객이 27명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밀 도시였다. 유네스코는 두브로브니크의 세계문화유산 지위가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2017년 시장으로 당선된 마토 프랑코비치(Mato Franković)는 ‘도시 존중 캠페인(Respect the City)’을 시작했다. 핵심은 관광객을 막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크루즈 선박을 한 번에 2척으로 제한하고, 최소 8시간 정박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통해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간을 분산시켰다. 관광버스는 사전 예약제를 도입했다. 예약 없이 도착하면 2,000유로의 벌금을 물린다. 크루즈 선박이 입항하는 날에는 버스 예약을 차단해 과밀을 방지했다.

구시가지 내 야외 테이블과 의자 수를 30% 줄이고, 기념품 가판대를 70% 철거했다. 식당과 바 주인들은 반발했지만, 프랑코비치 시장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고 도시의 미래를 위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시가지 동시 입장 인원을 1만1,200명으로 제한하고, CCTV로 실시간 인파를 모니터링한다. 2026년부터는 성벽 입장도 사전 예약제로 전환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4년 두브로브니크는 도착객 139만7,052명, 숙박 455만5,636건을 기록해 전년 대비 9% 늘었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은 유지됐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두브로브니크를 오버투어리즘의 상징에서 지속가능 관광의 상징으로 변모한 도시로 재평가했다. 한국 여행자들도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천천히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후기를 남긴다.

불편 감수하며 플라스틱을 버린 섬들

크로아티아의 작은 섬들이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나섰다. 흐바르(Hvar) 섬의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 두기 오토크(Dugi Otok) 섬의 살리(Sali), 두브로브니크, 트로기르(Trogir)는 WWF가 주도하는 플라스틱 스마트 시티(Plastic Smart Cities)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스플리트의 환경단체 순체(Sunce)는 각 지역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열어 플라스틱 없는 섬을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흐바르 섬.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스타리 그라드와 살리는 2026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실행 계획을 완성한다. 시청, 학교 같은 공공 건물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아예 금지했다. 이것만으로 연간 약 2톤의 플라스틱이 줄어든다. 식당과 카페는 플라스틱 컵과 빨대 대신 재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내놓는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로 한 상점 주인에게는 임대료를 깎아주는 혜택도 준다.

즐라린 섬.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즐라린(Zlarin) 섬은 한발 더 나아갔다. 2018년 섬의 모든 주민, 상점, 식당, 지역단체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없애자는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플라스틱 봉지는 종이 봉투나 천 가방으로, 플라스틱 접시는 나무 접시로 바꿨다. 크르크(Krk) 섬은 2024년 크로아티아에서 처음으로 제로 웨이스트 유럽(Zero Waste Europe)의 제로 웨이스트 인증을 받았다. 그리스 틸로스 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크르크 섬.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이 섬들의 도전은 쉽지 않다. 플라스틱은 싸고 편하지만, 바다를 오염시킨다. 크로아티아는 연간 4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 지중해 지역에서 세 번째로 많다. 특히 여름 성수기에는 쓰레기가 40% 늘어난다. 섬 주민들은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며 미래를 선택했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현지 와이너리의 유기농 와인을 시음하고, 올리브 농장에서 전통 방식으로 짠 올리브 오일을 사며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

코르출라 섬.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청정 바다와 건강한 음식

유럽 환경청 통계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해수욕장의 99.1%가 우수 등급을 받았다. 스플리트(Split), 비스(Vis) 섬, 코르출라(Korčula) 섬 같은 곳에서 투명한 바다에 몸을 담그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한국 여행자들의 후기에는 “음식이 깨끗하다”, “소화가 편하다”, “몸이 가벼워진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크로아티아 해안 마을의 식당에서 먹는 갓 잡은 생선 요리와 로컬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는 인공 첨가물이 거의 없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거니는 여행자.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법으로 보장하는 지속가능성

크로아티아는 2024년 관광법 개정을 통해 목적지별 수용 한도를 법으로 정했다. 환경과 주민의 삶을 지키면서도 관광 수입은 올해 5% 이상 늘었다. 크로아티아 관광부 장관 톤치 글라비나(Tonči Glavina)는 최근 인터뷰에서 “크로아티아가 마침내 연중 관광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역사상 처음으로 여름 두 달이 아닌 비수기에 관광 수입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는 ‘2030년 지속가능 관광 발전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지역사회 복지, 문화 및 자연 유산 보존, 기후 변화 대응에 초점을 맞춘다. UN 관광기구와 손잡고 지속가능 관광 상(Sustainable Tourism Awards)을 신설하며 글로벌 리더십도 확보했다. UN Tourism과 크로아티아 관광체육부, 자그레브 대학교는 협약을 맺고 자그레브 대학교 내 지속가능 관광 연구센터(Research Centre for Sustainable Tourism)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연구와 정책 개발의 지식 허브 역할을 한다.

두브로브니크의 풍경.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한국 관광지가 배워야 할 두브로브니크의 해법

두브로브니크가 이룬 성과는 우리나라의 인기 여행지에도 귀감이 된다. 제주도나 부산처럼 여름철만 되면 관광객이 몰려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모습은 두 나라가 닮았다. 크루즈 선박과 관광버스를 예약제로 운영하고, 관광지 입장 인원을 제한하며, 실시간으로 인파를 확인하는 시스템은 한국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제주도가 봄꽃 축제나 가을 올레길을 내세우듯, 비수기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크로아티아는 관광으로 돈을 벌되 환경과 주민 삶을 함께 챙기는 길을 택했다. 법으로 지속가능성을 명시하고, 과학적 데이터로 실천 여부를 확인하며, 주민과 사업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크로아티아 관광청이 UN Tourism 부속회원 이사회 후보로 나선 것은 이런 노력을 국제사회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올해 크로아티아는 관광객 수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9월 한 달만 봐도 전년보다 도착객과 숙박이 각각 5% 넘게 늘었다. 두브로브니크-주파(Dubrovnik-Župa Dubrovačka) 지역은 1월부터 9월까지 도착객 13만5,661명으로 14.7%, 숙박 57만5,002건으로 15.5% 증가했다. 눈여겨볼 점은 이런 성장이 마구잡이 개발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원칙 위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관광 산업 육성에 고민이 많은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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