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대신 사죄합니다”... 고개 숙인 임진란 왜장 후손들

신정훈 기자 2025. 10. 10. 17: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충북 옥천 가산사 찾아 용서 구해
10일 오후 충북 옥천 가산사에서 열린 ‘대한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평화의 날’ 행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왜장(倭將)의 17대 후손인 히로세 유이치(70) 씨와 히사 타케소마(24) 씨가 헌주(獻酒) 의식을 올리며 선조를 대신해 참회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일본 왜장 후손의 공식 참회 행사다. /신현종 기자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왜장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조상을 대신해 머리를 숙였다.

10일 충북 옥천의 조계종 사찰인 가산사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한일 평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일본인 히사다케 소마(24)씨와 히로세 유이치(70)씨가 참석해 의병·승병을 추모하는 위령탑에 술잔을 올리며 선조의 조선 침략에 대해 사죄했다.

또 이종학(이순신 장군 후손)·서재덕(서예원 장군 후손)·황의옥(황진 장군 후손)씨 등 조선 장수의 후손들을 만나 용서와 화해를 구했다.

이들은 충청 전투를 지휘한 왜군 5진 후쿠시마 마사노리 부대 소속의 쵸소 가베모토치카 왜장과 6진 모리 데루미츠 부대 소속 도리다 이치 왜장의 후손이다.

이 자리가 성사된 데는 부산외대 김문길(일본학과) 명예교수와 가산사 주지인 지원 스님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3년 전쯤 왜군이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가 묻었다는 일본 교토의 ‘귀 무덤’ 위령제에 참석했던 두 사람이 한일 양국 화해를 위한 행사를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가산사가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진영(초상화)을 모신 절이란 사실을 알고, 평소 친분이 있던 왜장 후손들을 만나 사죄의 자리를 주선했다.

행사에 참석한 히사다케 소마씨는 “그때의 침략 행위가 잘못이라고 반성하던 중 사죄할 기회가 생겼다”며 “오늘을 계기로 많은 일본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평화의 시대로 함께 나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원 스님은 “임진왜란 발발 433년이 지났지만 이번 참회의 의미는 매우 크다”며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이 화해와 용서, 나아가 평화의 미래를 함께하자는 취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충북 옥천 가산사에서 열린 ‘대한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평화의 날’ 행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왜장(倭將)의 17대 후손인 히로세 유이치(70.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와 히사 타케소마(24. 사진 맨 오른쪽) 씨가 한국 후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이번 행사는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일본 왜장 후손의 공식 참회 행사다. /신현종 기자

가산사는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 말사이다.

신라 성덕왕 대인 720년에 창건된 가산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 군영으로 사용됐다. 전란 중 불에 탔다가 1624년 인조 때 중건돼, 숙종 때 호국사찰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조헌과 영규 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제를 올리고 있다.

또 2019년 국가 지원을 받아 의·승병을 기리는 호국충혼탑을 제막하고 2022년에는 호국문화체험관도 지었다.

행사 뒤 두 일본인은 청주로 이동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가 등을 둘러봤다.

이튿날인 11일에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돌아보고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