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들끓는 일본 열도 “통일교는 내 돈 돌려줘라”
줄잇는 신도 탈퇴와 헌금 급감으로 일본 통일교 존립 위기
(시사저널=유재순 재일(在日) 작가 )
9월23일, 입헌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중의원 의원의 X(옛 트위터)에 일본 내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가 한국에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자와 의원이 시간 단위로 수위를 높여가며 일본 정부를 향해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통일교의 한학자 총재가 구속됐다. 일본도 당연히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의 테마로 삼아야 한다. 작년 총재 선거에서는 후보자 전원이 재조사를 거부했고, 또한 (통일교가) 국민을 해쳤는데도 지금까지 태연하게 있는 자민당은 더 이상 정권을 맡을 자격이 없다. 이번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자민당 정권과 통일교가 밀착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실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변화된 자민당이라고 말하려면 우선 행동으로 나타내야 될 것 아닌가?"

'자민당 총재 선출' 다카이치도 통일교와 밀착 의혹
오자와 의원의 비판에 일본 언론은 뜨겁게 반응했지만, 정작 '여자 아베'로 불리며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일련의 통일교 사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과거 통일교가 주최하는 행사에 직접 참석해 인사를 하거나 혹은 자신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 일본 통일교에서 티켓을 구입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뒤에도 그녀는 '관계가 없다'가 아닌 애매모호한 표현인 '모른다'로 끝까지 부인했다.
이렇듯 오자와 의원의 일침을 일본 언론 대다수가 비중 있게 보도한 것은, 그만큼 한학자 총재의 구속이 일본에서도 빅뉴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모든 언론은 한 총재가 구속되자 속보 혹은 1면 톱으로 대서특필했다. 일본 국민의 관심도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은 이번에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를 비롯해 모두가 애써 외면하거나 거론하기를 극도로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민당 의원 상당수가 통일교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어 혹여 이번 한 총재의 구속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봐 몸을 사린 것이다.
2022년 7월8일 아베 전 총리를 총격으로 사망케 한 범인 야마카미 데쓰야(44)는 통일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집안의 전 재산을 헌금한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유산인 사업체의 자금까지 통일교에 헌금해 가족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형은 끝내 자살했고, 자신도 여러 번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베가 사망하기 전까지 주간아사히·주간문춘·주간현대 등 일본 언론이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통일교와의 밀착관계를 폭로해 왔지만, 그때마다 자민당은 부인하면서도 뒤로는 밀월관계를 계속 이어나갔다.
일본 국민 대다수의 생각은 '만약 아베가 야마카미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통일교의 고액 헌금으로 인해 한 가정이 어떻게 풍비박산 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면, 통일교와 자민당의 수십 년에 걸친 유착 관계는 계속 수면 아래에 꽁꽁 숨어있었을 것이다'였다. 때문에 야마카미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전국에서 영치금이 답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릇된 일본 정치사를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며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자민당에 대한 분노가 컸다는 방증이다.
9월23일 한학자 총재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1억원의 정치자금을 건네고, 김건희 여사에게 선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는 속보가 뜨자 먼저 분통을 터트린 이들이 바로 일본의 전 통일교 신자들이었다. "통일교 자금의 90%는 일본 신자들이 헌금한 돈이다. 그 돈으로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통일교는 내 돈을 돌려달라."(도쿄 거주 전 신자), "40여 년 전에 통일교 신자가 된 내 동생은 영감상법의 판매원이 됐다. 가정도 붕괴됐다. 고액 헌금으로 붕괴된 가정이 많다. 때문에 한 총재가 정치인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고 카지노 도박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통일교는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70대 도야마현 신자 가족)
한 총재 구속을 두고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크게 분노하는 모양새다. 통일교에 의한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전국통일교회피해대책변호단'은 9월23일 성명을 내고 "위법한 배경이 있는 통일교의 풍부한 자금은 일본으로부터의 다액 송금이 원천이 되고 있으며, 일본 피해자들로부터 빼앗은 돈이다. 그 돈을 일본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통일교의 일본 법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단본부도 일본 피해자 구제를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고 발표했다.

日 시민단체 "기도와 헌금으로 신앙심 증명하라 부추길까 걱정"
이렇듯 한학자 총재 구속은 일본 내 반(反)통일교 정서에 기름을 끼얹는 계기가 됐다. 그렇잖아도 현재 일본 통일교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아베 전 총리가 총격에 쓰러진 이후 올해 1월까지 1만 명이 넘는 신자가 통일교를 탈퇴했다고 전해진다. 정식 수순을 밟지 않고 떠난 신자까지 합하면 두 배를 훨씬 넘을 것이라는 게 통일교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래서인지 현 신자들도 자신이 통일교 신자임을 외부에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통일교 자체를 배척하는 경향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4월30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시모노세키 가정연합은 시모노세키시로부터 한 통의 문건을 받았다. 통지 내용은 "재판소로부터 해산명령이 내려진 귀 법인에 대해 시모노세키시의 시설물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사용불허가통지서'였다.
지방의 이 사소한 행정절차가 일본 언론의 이목을 끈 이유는 시모노세키에 대한 일본 통일교 신자들의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 교주가 1941년 유학을 위해 일본에 왔을 때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시모노세키였기 때문에 일본 신자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 신자들의 성지인 시모노세키에 대한 토지 사용이 불허되자 신자들은 종교 탄압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문부과학성이 요청한 통일교 해산이 1심 재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일본 통일교 신자들은 큰 충격에 빠져있다. "통일교 간부뿐만 아니라 한 총재까지 구속하는 것을 보니 한국 특검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통일교의 일본 조직은 한국본부로부터의 상하전달 구조다. 한 총재 구속에 의해 지휘계통이 무너져 교단 운영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교단 내부의 결속이 강해질 테지만, 그 후부터는 탈퇴자가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일교단을 추적해온 스즈키 에이드 기자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최근 일본 시민단체들은 "(통일교의) 새로운 후계자들이 작금의 통일교 사태가 종교 탄압이며, 신앙심이 부족하니 기도와 헌금으로 신앙심을 증명해야 한다고 부추길까 걱정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일제히 발표했다. 통일교의 입지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 통일교는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망 이후 줄을 잇는 신도 탈퇴와 헌금 급감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교주 격인 한 총재 구속과 그에 따른 후계자 문제까지 불거지며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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