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학자 구속은 정원주 전 비서실장 탓” 깊어지는 내홍, 앞당겨진 후계 구도
일각에선 손자 문신출·신흥씨 승계 관측…집단지도체제 가능성도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특검 정국이 종교단체 후계 구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킨 형국이다. 한학자 통일교 총재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수사망을 결국 피하지 못했다. 2012년 고(故) 문선명 총재 사후 교단을 이끌어온 1인자의 권위에 금이 간 것이다. 이로써 사법부 심판대에 오른 한 총재를 대신해 한 총재 손자 세대가 교단을 이끌어 나가게 될 것으로 관측됐다. 교단 1세대가 사실상 물러나고 다음 세대의 등장이 재조명된 가운데, 한 총재를 십여 년간 수행한 실질적인 2인자이자 '그림자 실세'인 정원주 전 총재 비서실장의 퇴진을 두고 내홍이 이어지고 있다.

1954년 창교 이래 최대 위기 빠진 통일교
통일교로 흔히 알려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창교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한학자 총재의 부재(不在) 속에 가정연합은 정원주 전 비서실장(천무원 부원장)의 퇴진 등을 두고 내분을 겪고 있다. 한 총재의 자녀 중 일부는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위기를 면한 정 전 비서실장과 달리 수감된 한 총재를 만나 위기 수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 총재는 14명의 자녀 중 일부와 2012년 문선명 1대 총재 사후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3남과 7남 등으로도 세(勢)가 나뉜 것으로 전해졌다( 참조).

현재 유력한 차기 후계 구도는 한 총재의 손자가 중심인 체제다. 가정연합 대표자회의는 9월23일 "'천애축승자'와 '참가정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재가 구속될 경우에 대비해 남긴 "통일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천애축승자와 참가정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일하라"는 당부를 고려한 것이다. 천애축승자는 문신출·문신흥씨다. 이들은 한 총재의 장남 문효진씨의 첫째·둘째 아들이다. 이미 지난 4월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식에서 두 사람은 천애축승자로 지명됐다. 한 총재의 공식 후계자로 발표된 셈이다. 여기에 참가정 사위기대는 문효진·문흥진씨 가정을 의미한다. 문효진씨의 부인 문연아씨(최연아)와 차남 문흥진씨의 부인 문훈숙씨가 포함된다.
이는 한 총재가 구속되더라도 내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함인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대표자회의 입장 발표 후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매듭지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20대로 알려진 문신출·문신흥씨 체제로 갈지, 혹은 문연아·문훈숙씨 등을 포함한 집단체제로 갈지 불분명하다. 다만 정 전 비서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문연아씨 등의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를 보여주듯, 한 총재의 구속 이후 정 전 비서실장을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분위기다. 가정연합 전 협회장 등 일부 지도자급 인사는 '참어머님(한 총재 지칭) 석방을 위한 법률방어(소송) 준비위원회 구성회의'를 10월9일 오후 계획했다. 특검 수사에 대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비공개 보고자료에는 정 전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담겨있다. 한 총재의 구속 사유 중 하나가 정 전 비서실장과 같은 거주지라는 점이다. 피의자들끼리 '말 맞추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부 자료에 "정원주와 정보 공유 차단하라"
구체적으로 한 총재의 보석 기각과 관련해 "부원장(정 전 비서실장 지칭) 동일거주공간과 접촉 가능성, 증거인멸 등을 해소하지 않아 기소 후 구속돼 보석 허가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자료에 담겼다.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에 대해서는 "1. 법적 대응 주체의 부재(세계일보 사장, 행정원장, 행정원 사무총장, 어떤 법무법인) 2. 변호인단 및 정보 보안 관리 실패(호화 변호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3. 이해 상충 구조 고착화(한 총재, 부원장 진술 책임 주체 간 쟁점에 대한 변호사 대립) 4. 언론·여론 대응 공백(협회 차원의 기자회견 전무, 모든 대중의 오해와 혐오는 참어머님께 향함) 5. 신도 신뢰 약화 및 내부 혼선 심화, 부원장 중심의 법률적 지원을 용인했는지 여부"가 지목됐다.
향후 대응계획으로 한 총재 전담 독립변호인단의 즉시 구성이 거론됐다. 보고체계에 대해 "참어머님 소송전담 비대위가 참가정 사위기대 및 천애축승자 비상대책위에 직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자료에 기재됐다. 한 총재의 당부대로 후계 구도에 힘을 싣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정 전 비서실장과 관련해 "(한 총재와의) 공동 수임 철회 및 정보 공유 차단, 피의자 관계자(행정원장 등) 소송 참여 제한, 한 총재 전담 변호인단 완전 분리" 등을 강조했다. 또 "대형 법무법인 전직 교정국장 출신을 특별히 요청하면 구치소 근무자들을 통해 (한 총재에 대한) 편의 사항이 지원될 수 있다고 한다"며 이런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률대응 브리핑팀 신설, 협회·세계일보 언론 전문가 영입 등 방안도 거론됐다.
가정연합은 창교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종교단체 1인자가 수사망에 올라 공개 소환되고 구속 기소된 건 이례적이다. 한 총재 지시에 따라 교단 차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돕고 청탁성 뇌물 등을 제공했다는 게 특검팀의 조사 결과다. 가정연합 전 세계본부장(2020~23년) 윤영호씨와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했다는 고가의 선물 등 청탁 사건은 교단 차원의 20대 대통령선거 지원 의혹으로 비화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 가정연합이 자금 지원, 교인 동원 등 정치권과 유착됐다는 의혹은 그래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법원은 올해 초 자국 종교법인법에 근거해 가정연합 해산명령까지 내렸다. 앞서 2022년 아베 전 총리 암살 용의자는 '모친의 가정연합 고액 기부'를 범행 배경으로 밝히면서 국제적 논란이 됐었다. 이와 맞물려 가정연합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쪽 헌금이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연합과 일본 자민당 의원 간 유착 문제도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자금 논란까지 겹치면서 기시다 내각에서 각료 4명이 낙마했다. 여러 논란 끝에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퇴진했다.
여기에 한 총재와 정 전 비서실장 등 지도부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원정도박 의혹도 더해졌다. 2022년 11월 일본 '주간문춘'은 이들이 2008~11년 64억 엔, 우리 돈으로 600억원을 도박에 썼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가정연합 측은 정교유착부터 교단 지휘부의 원정도박 등 여러 의혹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검에서 시작된 수사가 특검으로 넘어오면서 이 같은 의혹들은 심판대에 올랐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때 쓰는 공소장은 죄가 의심되니 법원이 판단해 달라는 취지다. 일본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 퍼진 가정연합의 총체적 위기는 사법부의 심판 결과에 따라 다시 출렁이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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