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첩 잡는 경찰들’ 전국 1%, ‘3無’에 흔들리는 안보망 [2025 간첩보고서②]

강윤서·박성의 기자 2025. 10. 1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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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수사 전담하는 경찰, 안보수사 인력 1124명…99%는 민생 치안 집중
방첩사는 해체 위기에…“韓, 간첩 수사 체계·입법·인식 미비한 ‘간첩 3無국’”
안보시스템 약화 지적에 전문가 일각 “국정원 안보수사권 부활시켜야” 주장도

(시사저널=강윤서·박성의 기자)

"세 가지가 없는 한국은 간첩하기 참 좋은 나라다." 

간첩 수사 기관(경찰청), 수사권이 사라진 기관(국가정보원), 해체 위기인 기관(국군방첩사령부)에선 모두 이런 냉소가 흘러나온다. ①대공수사 컨트롤타워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불안정한 수사 체제 ②간첩의 정의 및 처벌에 대한 입법 공백 ③간첩에 대한 낮은 경각심 등 '3무(無)' 상황이 맞물리며 한국 사회의 대공 방어선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고, 이런 상황이 간첩에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실제 간첩 검거작전에 투입됐던 전·현직 국정원, 방첩사, 경찰청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국내 간첩수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간첩은 어떻게 잡을까. 먼저 전문가들은 '①불안정한 수사 체제'를 논하려면 간첩 검거 작전에 대한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첩수사의 핵심은 '전문성'과 '비밀유지'다. 우선 간첩은 일반 범죄와 달리 신고자·사건·피해자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 마치 사이비 종교의 신도처럼 추종하는 조국과 조직을 위해 전력을 쏟는다. 따라서 간첩 수사가 성공하려면 음지에서 단서를 찾되, 다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위장 잠입이나 내부 협조자를 심는 수사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간첩 검거 작전이 적게는 5년, 많게는 20년씩 걸리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간첩 수사의 가장 큰 노하우를 지닌 기관은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뺏기기 전인 2023년 적발한 간첩단 상부망은 크게 4곳이다. 그해 1월 전북간첩망, 3월엔 창원간첩단(자통 민중전위), 4월 제주간첩단(ㅎㄱㅎ), 5월에는 민주노총 침투 간첩망 관련자들이 각각 4명 안팎으로 기소됐다. 현재 이들 '새끼조직'에 대한 후속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출신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창원간첩단의 경우 국내에 포진된 이들 하부망은 총 68곳으로, 백주대낮에도 간첩이 활보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국가정보원, 경찰청, 국군방첩사령부 로고

대공수사권 이관 받은 경찰청, 전문성 충분한가

그러나 간첩수사 '제1방어선'이었던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법 개정으로 지난해 1월부터 대공수사권을 박탈당했다. 더 이상 강제수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국정원의 수사권을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넘겨받았다. 

수사 전문 기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찰은 성과를 내고 있다.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은 후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53명을 검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검거 후 송치된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은 20명이다. 범죄 행각으로 보면 △목적수행 1명 △잠입·탈출 5명 △찬양·고무 10명 △회합·통신 2명 △편의제공 2명 등이 검거됐다.

그러나 경찰의 고군분투에도 국내 간첩 수사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토로, 한탄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사저널이 국회 정보위원장 신성범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올해 8월 기준 전국 경찰인력 13만여 명 중 안보경찰 인력은 2255명이다. 세부적으로는 안보수사인력(대공수사, 산업기술유출, 안보사이버, 테러·방첩)이 1124명, 일반안보인력(관리자, 안보수사 지원, 신변보호, 안보상황, 공항·항만 관리 등)은 1131명이다. 지난 문재인·윤석열 정부에 비해선 늘어난 규모지만, 전체 경찰인력 중에선 1%대에 불과한 숫자다. 

간첩신고 체계 역시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3년 '안보신고 113'은 정부의 유사번호 정리 기조에 따라 112로 통합되었다. 신성범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에 '연도별 113 간첩신고 접수 건수 현황 및 신고유형'을 문의한 결과, 경찰은 "112 시스템상 신고통계는 61개 사건종별로 관리하고 있으나 간첩 관련 신고유형은 별도 분류·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안보 사건 관련 전문 접수 인력 역시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이 넘어가면서 '첩보의 공백'이 발생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보원의 신원보호가 중요한 국정원 요원들이 경찰에 간첩 관련 첩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길 꺼리고 있다는 후문도 나온다. 간첩 검거작전에 참여한 한 수사관은 시사저널에 "국정원은 간첩·첩보가 주 전공이지만 경찰은 간첩수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언젠가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기에 전문 자산을 쌓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경찰은 국정원과 차별화하기 위해 북한이나 개별 간첩단보단 북한 외 국가, 더 큰 국가안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마저도 한계가 있다"며 "수사권을 빼앗긴 국정원도 협조보단 견제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수사권 대신 정보수집·분석·첩보제공 차원의 '대공조사권'을 부여받았지만, 제대로 집행하기엔 법적 공백이 있다는 입장이다. 간첩조사는 업무 특성상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현행 국정원법상 대공조사권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령이 없고 '현장 판단에 따른다'고만 나와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조사권은 사실상 간첩활동이 의심되는 이를 조사하기 위해 임의출석을 요청하는 수준에 그친다.

2024년 12월1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모습 ⓒ연합뉴스

李, 방첩사 해체 예고…'방첩·수사·보안' 쪼갠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공수사의 또다른 핵심 축인 방첩사령부도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방첩사령부의 해체 수준 개혁'을 예고하면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사태에서 핵심 역할을 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중심의 방첩사를 해체하고, 3대(방첩·수사·보안) 기능 중 '방첩'만 남기고 '수사'와 '보안'은 무력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방첩사는 내란·외환·반란죄와 국가안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10개 혐의에 대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데, 해당 권한을 국방조사본부로 넘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방첩사의 핵심 기능인 정보 수집 및 조사 권한도 합동참모본부, 각 군 정보작전참모부 등으로 이관된다. '방첩' 기능도 다른 기관으로 점차 흡수되면서 결국 방첩사가 폐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첩사는 '보안사→기무사→국가안보지원사' 등 간판이 변했지만 최소한의 기능과 권한은 유지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기무사 계엄 문건 논란으로 방첩사 해체를 검토한 바 있지만 이름 변경과 인원 축소 선에서 일단락됐다. 군 보안사고에 대응할 전문 기관과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 방첩사가 연도별 진행한 보안조사 건수를 보면 △2021년 224건 △2022년 412건 △2023년 665건에 달했다. 작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1000건을 넘어섰다. 군기누설, 일반 이적죄 등으로 처벌받은 군 관련 안보사범 역시 2021년 18명→22년 20명→23년 18명→24년 27명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여기에는 육군 소속 정보 분석 담당 병사가 중국 측에 매수돼 6000만원을 받고 한미 연합훈련 기밀 정보를 넘긴 사례 등 방첩사가 처리한 군사·방산 기밀 사건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같은 안보 수사를 지휘했던 방첩사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박탈된 상황에서 폐지될 위기에 몰리면서, 국내 국가안보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9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 소재 국군방첩사령부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국군방첩사령부 앞에서 근무중인 장병. ⓒ연합뉴스

안보 전문가들 "軍 무장해제 격" "국정원 원상회복 시급"

시사저널과 만난 안보 전문가들 역시 간첩수사 체제개편 전반의 흐름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기무사(방첩사 전신) 출신인 정임재 전 국가보훈부 제대군인국장은 "지난 30여 년 간 간첩도 잡고 보안활동도 해온 사람으로서, 방첩사 폐지는 간첩들에게 우리의 국가 전략자산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통로를 제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간첩 검거조직의 기능을 무력하게 쪼개며 자해 정책을 펼치는 곳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출신 윤봉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지난해 북한은 헌법을 개정하고 적대적 2개 국가론을 확립하면서, 정찰총국 등을 활용한 군사부문에서의 대남 정보활동을 강화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방첩사 수사권은 오히려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방첩사 해체는 곧 군의 무장 해제를 뜻한다"면서 "방첩사는 간첩만 잡는 게 아니다. 군 내부 작전·인사 기밀을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군의 유일한 방첩기관이다. 방첩사를 해체했을 때 좋아할 사람은 김정은 뿐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한국의 간첩수사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선 국정원의 수사권 원상회복이 불가피하다. 지금 경찰의 간첩수사는 박사 과정을 공부해야 하는데 학부생을 앉혀놓은 셈"이라며 "간첩수사는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연구원

국민 10명 중 3명 '간첩 없다'…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에 61.9% 찬성

한편, 자유민주연구원과 자유민주연구학회가 지난 7월1~2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제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공수사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비교적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방첩사 안보 관련 수사권 존폐 입장을 묻는 질문엔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58.6%로,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자(29.9%)의 약 2배였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에 대한 입장 역시, '찬성'(61.9%)이 '반대(29.5%)'보다 2배 이상 많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 사회에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였다.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이 더이상 간첩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 방첩사 해체 등 국가안보와 직결된 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떨어지는 모습이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지난해 1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에 이관된 점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몰랐다'는 응답(52.8%)이 '알았다'(47.2%) 보다 높았다. 이번 조사 응답률은 2.6%로 표본오차는 ±3.1%포인트, 95% 신뢰수준이다.

[2025 간첩보고서①] "韓은 간첩하기 좋은 나라" 요원들이 말하는 北의 숨은 공작망

[2025 간첩보고서③] [단독]"국보법 위반자 2명 중 1명 1심 무죄"…숫자에 드러난 法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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