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편리함, 자연의 여유가 함께 만드는 ‘일상의 넉넉함’

김소은 2025. 10. 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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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제주를 보다] ⑨ 오클랜드: 시민의 삶을 품은 도시

제주는 '섬'이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을 얘기할 때는 늘 개발과 보존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섬나라 뉴질랜드는 산악, 호수, 해안선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등 제주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김소은 THE 관광연구소 대표가 안식년으로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관광 1번지'를 지향하는 제주가 참고할 만한 뉴질랜드의 사례를 가지고 독자들과 비정기적으로 만난다. [편집자 글]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는 인구 규모로 따지면 광주·대전보다는 크고, 부산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제주 인구의 두 배 반이 넘는 약 170만명이 살아가는 이 도시는, 그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활력을 품고 있다. 빌딩 숲이 늘어선 도심 속에서도 바다와 공원, 항구와 도서관, 그리고 세월을 지닌 공연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시민들의 삶을 지탱한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상권, 공원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오클랜드는 '도시적 편리함'과 '자연의 여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균형 잡힌 매력을 지닌 도시라 할 수 있다.

오클랜드, 일상을 품은 공원의 도시

오클랜드 도심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빌딩 숲 사이로 알버트 파크(Albert Park)가 펼쳐지는데, 시내 중심가 바로 옆인데도 분위기가 매우 평화롭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들고 모여 앉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긴다. 분주한 도심 속에서도 이런 고요함을 즐길 수 있으니, 이곳 사람들의 삶에 여유가 배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걸으면 오클랜드에서 가장 큰 공원 중 하나인 도메인 파크(Auckland Domain)가 나온다. 축구장 100개가 들어갈 만큼 넓은 이곳은 축제와 스포츠 경기, 피크닉으로 늘 활기가 넘친다. 언덕 위에는 오클랜드전쟁기념박물관이 자리해, 자연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만든다. 아이들이 공을 차고, 연인들은 잔디 위에 누워 책을 읽고, 한쪽에선 결혼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평화가 전해진다.
스카이타워에서 내려보이는 알버트 파크와 전쟁기념박물관이 정상에 있는 도메인 파크 / 사진=김소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코른월 파크(Cornwall Park)와 원트리힐 도메인(One Tree Hill Domain)이 있다. 원트리힐 정상에 서면 도시와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저녁 석양은 장관이다. 권력의 상징이자 마오리와 땅의 연결점이었던 이 나무는 정치적 사건으로 베어낸 뒤, 키위(뉴질랜드 국민을 부르는 애칭)들은 이곳을 농담처럼 '노트리힐(No Tree Hill)'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무가 사라져도 이 언덕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하늘을 향한 기념비 같은 공원으로, 키위들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곳이다.

코른월 파크는 산책로와 소 목장이 함께 어우러져 도심 속 농촌 풍경을 느낄 수 있다. 풀을 뜯는 소 너머로 스카이타워가 보이는 풍경은 매우 독특하다. 이곳의 스타돔 천문관(Stardome Observatory)에서는 천문 강연과 별자리 투영 쇼가 열린다. 밤하늘의 별이 쉽게 보이는 이 나라에서, 천문관의 경험은 이미 눈으로 본 별빛을 더 깊이 가슴속에 담게 해준다. 

웨스턴 스프링스 공원(Western Springs Park)은 호수와 잔디밭, 인접한 오클랜드 동물원 덕분에 가족 나들이 명소다. 잔잔한 호수 위로 뉴질랜드에서는 흔한 흑조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사람들은 오리에게 모이를 던지며 웃음을 나눈다. 여기에 오클랜드 북쪽 끝, 이전 칼럼에도 소개했던 셰익스피어 공원(Shakespear Regional Park)은 내가 가장 많이 찾은 장소다. 이십여분 오름과 같은 동산을 오르면 양 떼가 풀을 뜯고, 하우라키 만의 푸른 바다는 가슴을 확 트이게 하고, 캠핑장에서는 밤하늘 별빛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원시적인 자연을 만나는 경험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오클랜드의 공원은 단순히 풀밭이 아니라 일상을 품는다. 알버트 파크 근처의 라 시갈 프렌치 마켓(La Cigale French Market)이나 그레이린(Grey Lynn) 마켓, 타카푸나 비치 선데이 마켓 같은 곳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 수공예품,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시민들은 공원에서 장을 보고, 피크닉을 하고, 공연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도시가 주는 활기와 바다가 주는 여유 사이에서, 공원은 그 둘을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다.
타카푸나 비치 선데이 마켓, 엄청 맛있는 쌀국수 포장마차가 있는 곳이다. / 사진=김소은

스카이타워 번지점프부터 럭비·영화·동물원까지, 오클랜드의 매력

스카이시티(SkyCity Auckland)는 오클랜드 도심을 상징하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다. 328m 높이의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와 항만, 멀리 와이헤케섬까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여행자라면 꼭 들르게 되는 명소다. 타워 아래에는 호텔과 카지노, 극장, 다양한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 있어 낮과 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찔한 체험이다. 전망대에 서 있다 갑자기 위에서 누가 툭 떨어져 깜짝 놀랐는데, 바로 스카이점프(SkyJump)다. 192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번지 점프와, 전망대 난간을 따라 걷는 스카이워크(SkyWalk)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즐기는 짜릿한 스릴이다. 오클랜드 도심과 노스쇼어를 잇는 하버브리지에서의 번지점프도 있다. 푸른 항만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해, 나는 사진으로만 감상했다.

스카이시티와 이어진 건물에는 웨타 워크숍 언리시드(Weta Workshop Unleashed)도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과 '아바타'를 만든 특수효과 스튜디오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소품과 미니어처, 특수효과 제작 과정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 영화 속 상상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한층 아래에는 럭비 체험관(All Blacks Experience)이 있다. 세계 최강 럭비팀 올블랙스의 상징인 하카(Haka)를 눈앞에서 보고, 실제 선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경기장의 열기를 몰입형 전시로 느낄 수 있다. 실제 럭비 경기는 이든파크(Eden Park)에서 보았는데, 관중석을 가득 메운 함성과 환호는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올블랙스 체험관에서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 패스와 킥 체험 공간 / 사진=김소은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색다른 체험도 이어진다. 노스쇼어의 첼시 설탕공장(Chelsea Sugar Factory)은 1884년부터 가동된 전통 있는 공장으로, 지금은 '첼시 베이(Chelsea Bay)'라는 방문자 센터를 운영한다. 설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제빵 클래스에 참여하며, 산업유산을 배우는 공간이다. 공장 앞 카페와 정원은 현지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다. 또 다른 명소인 오클랜드 동물원(Auckland Zoo)은 1922년 개관 이후 100년 넘게 이어져 온 대표 가족 나들이 공간이다. 열대우림, 사바나, 뉴질랜드 토종 서식지 등 135종 이상의 동물을 전시하며, 단순한 관람을 넘어 멸종 위기종 보존과 환경 교육의 역할도 하고 있다.

오클랜드의 하늘을 올려다본 후 스카이점프를 하고, 영화 제작 현장을 탐험하며, 럭비 문화를 체험하고, 오래된 설탕공장에서 산업유산을 배우고, 동물원에서 생태와 환경을 만날 수 있는 오클랜드에서의 주말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오클랜드 도심 한가운데, 시간과 예술이 만나는 길

지난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오클랜드 타운홀은 1911년에 지어진 건물로, 도심의 중심 광장인 아오테아 광장(Aotea Square)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단순히 '보존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공연과 집회, 시민 행사를 품으며 살아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연주와 연설, 축제와 집회를 품어온 이 장소는, 그 자체로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문화적 무게감을 상징한다. 남반구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시민 합창단의 무대, 혹은 사회적 의제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까지, 이곳 무대는 매일매일 다양한 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아오테아 광장에 집회를 위해 모인 시민들, 타운홀에 뉴질랜드 국기가 펄럭인다. / 사진=김소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오클랜드의 문화 지도를 그리는 주요 시설들이 도보 10분 이내에 모여 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미술관인 오클랜드 아트갤러리(Toi o Tāmaki), 방대한 장서와 사람을 품은 오클랜드 중앙도서관(Auckland Central City Library), 그리고 뉴질랜드 최대 규모의 다목적 공연예술센터 아오테아 센터(Aotea Centre)가 차례로 이어진다. 아오테아 센터는 오페라와 뮤지컬, 국제 컨퍼런스까지 소화하는 공간으로, 현대적 건축미와 함께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준다.
아오테아 광장 인근의 노천 카페. 동서남북 도보 이삼분 거리에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이 위치한다. / 사진=김소은

옆에는 지역 예술가들과 커뮤니티가 힘을 모아 만든 독립 공연장 Q 씨어터가 있다. 실험적인 무대와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로 올라가며, 대규모 공연장과는 달리 관객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친밀함이 매력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공연장은 1929년에 문을 연 더 시빅(The Civic)이다. 내부는 인도와 아라비아풍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마치 이국의 궁전에 들어선 느낌이다. 특히 천장에 수놓인 별빛 하늘은 마치 실제 밤하늘 아래에서 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곳에서 만난 호주에서 만든 프리실라(Priscilla, Queen of the Desert) 뮤지컬 무대는 오래도록 선명한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The Civic 극장 내부, 프리실라 뮤지컬 공연 한시간 전에 찾았다. / 사진=김소은

아오테아 광장 자체도 공연 무대 못지않다. 여름이면 야외 영화제가 열리고, 주말이면 플리마켓과 스트리트 공연이, 겨울에는 아이스링크가 펼쳐진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음악에 몸을 흔들고, 아이들은 각종 이벤트를 체험하느라 뛰어다닌다. 광장은 건물들을 잇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도심 속 열린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듯 오클랜드 도심의 아오테아 광장을 중심으로, 100년의 시간을 품은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 공연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풍경은 뉴질랜드 최대 도시의 문화적 자산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잘 보여준다. 짧은 거리 안에서 미술·음악·연극·영화·문학까지, 공연과 전시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인 내게 큰 놀라움이었다.

항구, 일상과 연결되는 문화

바다와 맞닿은 퀸스워프(Queens Wharf)는 오클랜드의 얼굴이다. 노스쇼어 지역이나 와이헤케 섬에서 출퇴근 배가 오가는 선착장 옆으로는 전시 공간과 레스토랑, 이벤트 홀들이 이어진다. 항구 바로 옆에는 뉴질랜드 해양박물관(New Zealand Maritime Museum)이 자리해, 폴리네시아 항해 전통부터 현대 요트까지 이 나라 바다 이야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관광객은 페리를 타고 섬으로 떠나고, 시민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한다. 퀸스워프 일대에는 야외 공연이나 마켓이 수시로 열리고, 선착장 끝의 클라우드(The Cloud) 전시장에서는 국제 컨퍼런스와 아트페어 등의 특별 행사가 열린다. 바닷길을 따라 이어진 바이아덕트 하버(Viaduct Harbour)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줄지어 있어 저녁이면 활기를 더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와이니아드 쿼터(Wynyard Quarter)가 나온다. 이곳은 재개발된 산업지구로, 아이들이 뛰노는 수변 놀이터, 거리 공연, 푸드트럭이 어우러진 가족 친화적 공간이다.

해 질 무렵, 항구 앞 데크에 앉아 요트와 배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관광객에게 항구는 배를 타는 출발점이자 산책길이고, 시민에게는 점심 도시락을 먹거나 여유롭게 맥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생활 속 광장이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이 항구는 그 자체로 오클랜드의 거대한 무대이며, 늘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심장 같은 장소다.
퀸스워프에서 바라보이는 스카이타워와 도심 마천루 / 사진=김소은

도시와 자연의 균형이 주는 깨달음

오클랜드를 걷다 보면 '대도시와 자연은 꼭 대립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높은 빌딩 옆으로 바다가 열리고, 도심 한복판에서는 공원이 숨을 고르게 한다. 100년이 넘은 건물 안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이 도시의 편리함은 자연의 여유와 나란히 서서 사람들의 일상에 넉넉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오클랜드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다.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와 이곳에서 뿌리내린 시민, 그리고 여행자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원과 거리, 바다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 과정에서 언어와 음식, 예술과 일상이 섞이며, 도시의 문화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클랜드는 단순히 '뉴질랜드 최대 도시'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끊임없이 문화적 다양성을 빚어내며, 시민과 이민자, 여행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살아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내가 매일 만나고 있는 오클랜드다.

김소은

제주에서 10여년을 살다 뉴질랜드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 생태관광, 람사르습지 보전, 해양관광 자원 발굴 등과 관련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으며,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대학때부터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으며, 석박사 과정에서 관광경제, 마케팅, 관광객 행동 등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현) THE(Think for Human & Earth) 관광연구소 대표, 섬연구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