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크로아‘티 나’…부러우면 지는거야, 부러우면 가는거고~

강석봉 기자 2025. 10. 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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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에서 피야카(fjaka)라 불리는 독특한 삶의 철학이 주목받고 있다. 피야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크로아티아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덴마크의 휘게(hygge)나 일본의 이키가이(ikigai)처럼 직역이 불가능한 이 개념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정신적 해방의 상태를 뜻한다.

피야카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휴식법이다. 완벽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피야카’

피야카는 크로아티아어로 ‘희미한 무의식 상태’를 의미하며, 이때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스플리트를 비롯한 달마티아 지역 사람들은 “아이메, 유디, 우파틸라 메 피야카(Ajme, judi, ufatila me fjaka, 아 친구들아, 피야카가 나를 사로잡았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과거 크로아티아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일하고, 점심과 낮잠을 위해 휴식을 취한 뒤 오후 5시에 다시 업무를 시작하는 이중 근무제를 운영했다. 관광업의 발달로 이런 전통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피야카 문화를 전통 혹은 철학처럼 고수하며 ‘완벽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체리를 비롯해 자두, 포도, 호두, 꿀, 장미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라키야는 크로아티아 가정마다 고유한 비법이 있다. 알코올 도수는 50-65%에 달하는 강한 술이다.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만병통치약, 라키야

크로아티아인들은 라키야(rakija)라는 과일 브랜디를 거의 모든 상황에서 마신다. 라키야는 프랑스의 코냑, 그리스의 우조, 일본의 사케, 멕시코의 테킬라와 같은 의미를 갖는 크로아티아의 대표주다.

머핀과 사과를 곁들여 가볍게 마시는 라키야.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가장 인기 있는 라키야는 자두로 만든 실리보비차(šljivovica)다. 알코올 도수는 보통 40% 지만, 집에서 만든 것은 50-65%에 달하기도 한다. 크로아티아인들은 라키야에 체리, 자두, 포도, 호두, 꿀, 모과, 장미, 심지어 풀까지 넣어 다양한 종류를 만든다.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기 위해 라키야를 일상적으로 마신다. 아침 커피와 함께 라키야를 마시는 것도 흔한 일이다.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라키야는 만병통치약이므로 술이 아닌 약을 마신다는 인식이 강하다. 배가 아플 때, 치통이 있을 때, 진정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라키야를 찾는다.

크로아티아의 바람 공포증 ‘프로푸흐’에서 영감을 받은 동명의 보드게임.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바람 공포증, 프로피우

크로아티아인들은 프로피우(propuh)라 불리는 맞바람을 극도로 경계한다. 슬라브어 접두사 ‘프로(pro-, 통과하여)’와 ‘푸하티(puhati, 불다)’가 결합된 이 단어는 집안에서 두 개 이상의 창문이나 문이 동시에 열려 공간을 관통하며 불어드는 맞바람을 뜻한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이런 맞바람이 근육통, 두통, 감기부터 감염, 심지어 뇌염까지 일으킨다고 믿는다.

프로피우를 피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인들은 샤워 후 즉시 머리를 말리고, 가을·겨울·봄에는 목뒤를 반드시 스카프나 후드로 가린다. 맨발로 다니는 것도 금기다. 한여름 40도가 넘는 날씨에도 에어컨 바람을 경계하며, 시멘트 바닥에 직접 앉으면 신장이나 난소에 문제가 생긴다고 여긴다. 이런 믿음은 크로아티아인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문화 코드다.

이런 믿음은 크로아티아인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문화 코드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한여름에도 창문을 동시에 열 수 없는 이런 ‘바람 금기’를 당황스러워한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주가가 “바람이 평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오클라호마”로 시작할 정도로 바람을 반기는 문화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풀라 영화제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제로 고대와 현대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사진제공|크로아티아 관광청/CNTB



영화에 진심인 크로아티아, ‘1 마을 1 영화제’

크로아티아는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제를 개최하는 나라 중 하나다. 거의 모든 주요 도시와 지역이 영화제를 연다. 자그레브 영화제는 크로아티아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로 매년 11월에 열린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에서 개최되는 DUFF. 중세 도시 안에 거대한 극장이 마련된다.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2000년 된 고대 로마 원형극장에서 열리는 풀라 영화제(Pula Film Festival)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스플리트의 지중해 영화제(Mediterranean Film Festival Split), 두브로브니크의 DUFF(Dubrovnik Film Festival), 모토분 영화제(Motovun Film Festival)까지 다양한 테마의 영화제가 1년 내내 이어진다. 규모는 작지만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문화 행사만큼은 빠뜨리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 시간 감각마저 사라지며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비우는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여유의 철학에서 배우는 세 가지 지혜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은 현대인들에게 세 가지 지혜를 전한다. 첫째, 완벽한 휴식의 가치다. 피야카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비우는 시간이다. 둘째, 전통과 믿음을 지키는 힘이다. 프로피우나 라키야에 대한 믿음은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그들만의 정체성을 만든다. 셋째, 작은 것에서 큰 즐거움을 찾는 능력이다. 작은 마을의 영화제처럼 규모가 아닌 진정성으로 일상 속에서 예술과 함께 살아간다.

바람을 경계하고, 약이 부족했던 시절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우려낸 전통주로 잔병을 다스렸던 지혜가 지금도 이어진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영화제 하나쯤은 열어야 한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가진 이들의 피야카는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크로아티아인들이 지켜온 여유로운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잠시 멈춤의 가치를 일깨운다.

사진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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