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조우진, 27년 차에도 계속되는 도전과 성장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보스'는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큰 사고력을 요하지 않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영화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관객수 공약 같은 걸 걸었는데, 이젠 그런 얘기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극장 상황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저 많은 분들께서 시름을 잊은 채 웃고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배우 조우진이 그간 쌓아온 진지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침체된 극장가에 웃음 폭탄을 날리겠다는 각오다.
지난 3일 개봉한 '보스'는 조직의 미래가 걸린 차기 보스 선출을 앞두고 각자의 꿈을 위해 서로에게 보스 자리를 치열하게 '양보'하는 조직원들의 필사적인 대결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로, '바르게 살자' '용기가 필요해' 'Mr. 아이돌' 등을 연출한 라희찬 감독의 신작이다.
조우진은 '본캐'인 조직원이 아닌 '부캐' 중식당 사장의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나, 차기 보스 0순위로 부상하며 부캐를 잃을 위기에 처한 순태 역으로 분했다.
무게감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온 조우진에게 코미디 영화 1롤은 제법 큰 도전이었을 터. 그는 "'모두들 보스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는 역발상의 코미디지 않나.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연기를 해야 해 줄타기하듯 위태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언젠간 내가 꼭 해내야 하는 작품이라는 도전 의식이 있었다"며 "개인적으론 '하얼빈' 이후 스스로가 다운되고 어두워진 느낌이라 어떻게든 원래의 궤도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현장에서 생긴 부작용은 현장에서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보스'가 딱 그 기회 같았다"고 출연 계기를 떠올렸다.
이어 "지금껏 받아온 시나리오의 성격과 많이 달랐다. 홍콩이나 유럽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소동극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정말 숙제가 '이만큼'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특히 '본캐'와 '부캐'를 넘나드는 역인 만큼 밸런스를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어찌 보면 1인 2역과도 같지 않나. 코미디라고 해서 무조건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 판단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임해야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 함께 "'부캐'를 연기할 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혹은 주방장의 친근한 모습을 그리려 했다. 서열에서 밀려난 모습, 가정에서 아내와 딸에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진심으로 요리에 대한 꿈을 좇는 모습 등. 특히 요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보였으면 했다. 촬영을 하다 보니 '본캐'와 '부캐' 사이 정체성 혼란이 오기도 하더라. 그때 감독님께서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하셨다. 촬영분을 보면서도 '내가 이런 표정이 있었나' 싶더라"고 부연했다.

도전 그 자체였던 '보스'는 촬영 내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매 장면이 힘들었다"던 조우진은 "모두가 편하게 연기할 순 없고, 납득이 갈 만한 합이 이뤄져야 했다. 당연히 쉽지 않아 피로감이 쌓였다. 하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이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기에 늘 노력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라희찬 감독의 디렉팅이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배우의 능동적인 면이 최대한 잘 발휘되게 도와주시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칼 같이 끊어내주셨다. 같이 고민해 주신 점이 정말 감사했다. 덕분에 점점 정답을 향해 좁혀나갈 수 있었다. 고되긴 했지만 보람찬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스'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의 동료애도 느낄 수 있었다. 조우진은 극 중 아내로 등장한 황우슬혜에 대해 "열정도 열정인데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센스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매력 있고 재밌게 나올지 안다. 확실하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역할이었다. 왜 슬혜 씨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배우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또 "정경호 씨는 참 스위트하고 섬세하다. 제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다다랐더라. 작품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동료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부자라 저도 덩달아 부자가 되는 느낌이었다"며 "박지환 씨와 이규형 씨도 마찬가지였다. 호칭만 선후배지 동료이자 친구였다. 온갖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조우진이 '보스'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면은 초반에 등장했다. "처음에 다 함께 미친 듯이 춤추는 장면이 있다. '우리 영화는 이런 영화다'라고 톤 앤 매너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모든 인물이 한꺼번에 포효하면서 기분 좋게 소리 지르는 장면은 그게 처음이자 끝이었다. 짠하기도, 신나기도 했다. 제일 신났다."
아쉬운 장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요리하는 장면이 제 눈엔 좀 부족해 보였다. 좀 더 잘할걸 싶었다"며 "실제론 요리에 소질이 없다.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여서 송편을 빚으면 제가 만든 건 딱 티가 난다. '똥손'이다. 어느 날은 혼자 면치기를 해보겠다고 밀가루 반죽을 했는데 하나도 안 되더라. 결국 집만 초토화됐고 청소를 네 시간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우진은 '보스' 언론시사회 당시 "홍보가 최고의 다이어트"라며 근 한 달간 살이 쭉 빠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홍보를 위해 하루에 촬영 세 탕을 뛰었다. 같은 날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 퀴즈')과 웹예능 '짐종국' '짠한형'을 찍었다. 밥 먹을 여유조차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엔 예능 출연이 역할 몰입을 방해할까 봐 잘 안 나갔는데, 이젠 후회 없이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비 관객들과 친밀도를 높여놔야 영화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커지지 않을까 싶었다"며 어려운 극장 상황 속 달라진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유 퀴즈' 출연 당시 긴 무명 시절을 떠올렸던 조우진은 "'유 퀴즈'의 경우 자기님들께서 역경을 딛고 뭔가를 이뤄낸 경험담을 많이 풀어놓으시지 않나. 사실 제 옛날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진 않았다"고 고백했다. "저보다 더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도 많고, 여전히 작품에 목이 마른 배우들도 많은데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낯뜨거웠다. '보스' 홍보를 위해 프로그램이 원하는 얘기를 한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솔직한 마음도 전했다.
또한 '보스'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추석 극장가 맞대결을 펼치게 된 상황도 언급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오니 아직 우리 영화가 살아있구나, 불씨란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불을 한 번 지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보스'와 '어쩔수가없다'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한국 영화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시켜 줄 수 있었으면 한다."
1999년 데뷔해 어느덧 27년 차 배우가 된 조우진. 그는 "한 번 해본 역할이어도 더 넓고 깊이 있게 확장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달려들 준비가 돼 있다"며 시간이 흘렀어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첫 작품이 연극이었던 만큼 무대에 대한 애정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황정민 형처럼 꾸준히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저도 항상 준비는 돼 있는데 매번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사정이 생기곤 했다. 관객들과 실제로 만나 호흡하고 싶은 소망은 늘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시장이 어려움에 빠지며 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 조우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그는 "'보스'와 같은 시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마귀'까지 선보이게 됐다. 복 받았다,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라며 "tvN '두번째 시그널' 특별출연을 제외하곤 아직 차기작은 없다. 나라는 인간을 찾기 위해 이 직업을 택한 만큼, 또 한 번 소중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저에 대한 평가는 관객분들에게 잠시 맡겨두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고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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