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으로 흥한자, 도박으로 망하리라…‘동부의 라스베가스’는 어쩌다 몰락했나 [홍키자의 美쿡]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애틀랜틱시티는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죽어가는 도시였습니다.
한때 동부 해안의 대표적인 휴양지였던 이곳은 항공 여행의 대중화와 함께 관광객을 플로리다와 카리브해에 빼앗겼습니다. 도시의 실업률은 15%를 넘어섰고, 시 재정은 파산 직전이었죠.
1976년 11월 2일, 이 지역 주민투표가 열립니다. 이날 투표에서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합법화가 56%의 찬성으로 승인됩니다. 미국 동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카지노가 합법인 곳은 네바다주가 유일했으니까요.

카지노 수입은 1978년 2억2000만 달러(약 3080억 원)에서 1995년 35억 달러(약 4조9000억 원)로 급증했습니다. 직·간접 일자리 4만5000개가 창출되었고, 애틀랜틱시티는 라스베이거스에 이은 미국 제2의 도박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3월, 애틀랜틱시티에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가 개장하면서부터 위기가 시작됩니다. 당시 트럼프는 이 카지노를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선전했습니다.

애초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개장 불과 1년 후인 1991년 타지마할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2016년 10월 10일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한때 트럼프는 애틀랜틱시티에 3개의 카지노(타지마할, 플라자, 캐슬)를 소유하며 8000명을 고용하고 지역 도박 수익의 3분의 1을 차지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 사태는 지역 경제에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수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수십 개의 지역 건설업체들이 미수금으로 인해 폐업했습니다. 조각가 마이클 맥레오드처럼 트럼프 관련 작업 대금을 받지 못한 사례들이 속출했습니다.

애틀랜틱클럽(1월), 쇼보트(8월), 레벨(9월), 트럼프플라자(9월)가 차례로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이 지역에서는 1년 동안 99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이는 전국 318개 대도시권 중 최대 규모였습니다. 실업급여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시의 컨벤션센터에서 대규모 실업 접수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허약해진 애틀랜틱시티에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는 1400대의 차량이 2마일(약 3.2㎞)에 걸쳐 줄을 서서 푸드뱅크(무료 급식소)에서 음식을 받아 가는 모습이 목격됐죠.
2018년 연방대법원이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한 이후, 온라인 도박 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습니다. 현재까지 38개 주가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했고, 이 중 30개 주는 온라인 스포츠 베팅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DraftKings는 2012년 일간 판타지 스포츠로 시작해 2020년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시가총액 200억 달러(약 28조 원)를 기록했습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기존 카지노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에 있었습니다.
플랫폼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기의 모든 순간을 베팅 대상으로 만들어냅니다. 야구를 예로 들면, 다음 타자가 안타를 칠지, 몇 회에 첫 득점이 나올지, 홈런이 나올지 같은 세부적인 상황에 실시간으로 베팅할 수 있습니다.
농구 경기에서는 다음 슛이 성공할지, 어느 팀이 먼저 10점을 득점할지, 다음 파울이 언제 일어날지까지 베팅 대상이 됩니다.

실제로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베팅과 짧은 간격의 보상 경험은 슬롯머신과 동일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도박 중독의 핵심은 ‘간헐적 보상 스케줄’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타이밍에 보상이 주어질 때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가장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이는 마약 중독과 같은 신경학적 패턴을 보입니다.
더 교묘한 것은 ‘거의 성공’의 경험입니다. 베팅이 아슬아슬하게 실패할 때 뇌는 이를 ‘거의 이겼다’고 인식하며, 이는 실제 승리만큼이나 강한 도파민 분비를 일으킵니다. “다음번엔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스포츠 베팅에서 실제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 95%는 돈을 잃지만,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합니다.
도시 쇠퇴의 구체적 지표들도 있습니다. 시 전체 공실률이 30% 이상이고, 강력범죄 발생률(인구 10만 명당 1247건)도 뉴저지주 평균의 4배에 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틀랜틱시티가 쇠락하는 동안 도박 관련 주식들은 역대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었습니다. 시저스 엔터테인먼트는 2018년 8달러에서 2021년 최고점 119달러를 기록하며 3년새 15배 가까이 주가가 올랐습니다.
골드만삭스는 2025년까지 미국 온라인 도박 시장이 400억 달러(약 56조 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더 나아가 2030년까지는 650억 달러(약 91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향후 5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새로운 카지노 라이선스 발급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뉴욕은 애틀랜틱시티의 최대 고객 공급원입니다. 맨해튼에서 애틀랜틱시티까지는 차로 2~3시간이 걸리지만, 이제 뉴욕 브롱크스나 퀸스에 카지노가 생기면 이용자들은 3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애틀랜틱시티의 도박 산업 이야기는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비단 도박 산업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디지털 전환은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이 오프라인 매장을 대체하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극장과 DVD 시장을 재편하고, 모빌리티 플랫폼이 전통적인 교통 서비스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소비자에는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기존 산업과 지역사회에는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요구합니다.
라스베이거스가 되고 싶었던 도시, 애틀랜틱시티. 그 꿈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지역과 도시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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