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로 나를 드러낸다"…'하이엔드'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오상희의 공간&트렌드]
'럭셔리'와 달리 '가격'보다 '가치'에 중점을 둔 소비 트렌드

'럭셔리'를 넘어 '하이엔드' 가구를 찾는 한국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 말하는 하이엔드는 가격보다 가치에 좀 더 초점을 두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럭셔리와는 다르게 쓰인다.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들은 최고의 기술과 소재를 사용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남다른 경험을 향유하도록 만든다. 소비자는 이를 위해 비싼 비용을 기꺼이 치른다. 하이엔드 트렌드는 패션, 가구, 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 퍼지고 있다. 결국 남다른 차별성을 통해 희소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희소한 가치를 집안으로 들이기 위해 소비자들이 기꺼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특히 최근 하이엔드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분야는 가구, 주택 분야가 아닐까 싶다. 이 중 하이엔드 가구는 단순히 '고가의 제품'을 뜻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퀄리티를 통해 남들과 다른 경험을 나만의 공간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를 내포한다. 명확한 타겟팅(takgeting)으로 소수의 소비자층을 겨냥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사실 한국에 진출하는 해외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를 구매하는 소비 과정은 매우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공식 유통사가 생겼다 없어지는가 하면, 소량으로 입고하다가 아예 쇼룸이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플랫폼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흐름은 브랜드 인지도보다는 타깃층의 수요 편차나 유통·수입 과정의 변화 때문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건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한국에 처음 들어온 이탈리아 브랜드 '리마데시오'(Rimadesio)는 프리미엄 건축 자재를 소개하는 브랜드 '하농'에서 수입하고 있다. 하농 관계자는 "론칭 이전부터 국내 수입 제안은 있었지만. 높은 가격대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하이엔드 가구 시장의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하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리마데시오를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내 유통사들이 해외 브랜드로부터 이런 제안을 지속적으로 받는 이유는 한국이 테스트베드로서 매우 적합한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에 선보인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헨지'(Henge)를 수입하는 유앤어스의 박길정 헨지 브랜드 디렉터는 "수입 가구를 대하는 한국 소비자들은 단순히 집을 꾸미는 차원을 넘어 공간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브랜딩한다"며 "가구를 실용성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취향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통로로 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경아 유앤어스 본부장도 "결국 한국 시장에서 가구의 고급화 기준이 상승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고급화와 차별화 측면에서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는 명확한 아이덴티티(정체성)와 맞춤화를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앤비 이탈리아'(B&B Italia)를 수입하는 두오모 관계자는 "가구가 단순히 사용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공간을 큐레이션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투자'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비앤비 이탈리아는 전통 가구 제작 방식이 아닌, 폴리우레탄 폼 생산 기술을 활용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안토니오 치테리오, 가에타노 페세, 마리오 벨리니 등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출시한 가구들은 일종의 '작품'으로 여겨져 소비자들의 '투자'를 받고 있다.
리마데시오도 차별화에 초점을 둔 제품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리마데시오의 모기업이 글라스 제조업체라는 강점을 살려 글라스와 알루미늄을 소재로 한 슬라이딩 도어, 흠결 하나 없는 유려한 캐비닛 등을 주력 제품으로 선보였다. 헨지는 주재료인 금속과 더불어 다양한 소재를 응용하는 등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들이 좀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은 완제품을 오래 두고 쓰자는 인식을 더 많이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미니멀하고 깨끗한 디자인,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타임리스'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비앤비 이탈리아 관계자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오래 두고 쓰는, 그러려면 품질이 좋고 디자인이 질리지 않는 하이엔드 가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물론 창고형 매장에 다양한 체험 공간 구성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던 이케아의 전략은 지금도 대중들 사이에서 유효하다. 하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는 그 방식이 보다 폐쇄적이다. 한국처럼 온라인 거래와 배송이 쉽고 자유로운 문화에서도 소비자들은 가구만큼은 직접 보고 구매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 만큼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들은 쇼룸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와 같은 공간에도 힘을 주고 있다.
대부분 방문은 예약제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가구를 보여주기식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공간 전반에 반영한다. 두오모가 수입하고 있는 비앤비 이탈리아의 플래그십 서울은 이탈리아 본사 관계자가 네 차례나 공사 현장에 방문할 만큼 공을 들였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제품은 물론, 제품에 사용되는 소재를 활용한 공간 연출, 공간 자체의 동선까지 연출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매장 안에 담았다. 헨지의 쇼룸도 마찬가지다. '소재의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공간을 5개 존으로 나누고,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절제된 미감을 단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국내에 본격 론칭한 헨지에 대해 소비자들이 "가치 중심적인 브랜드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제 가구를 선택할 때 단지 실용성에만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이엔드 가구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의 연령과 소득 수준 또한 점차 넓어지고 있는데, 이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마이크로 럭셔리'를 추구하는 성향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이때 성향과 취향은 단순한 트렌드나 선호도를 넘은 개인의 독립적 가치에 가깝다. 그런 만큼 가격이나 브랜드 자체, 혹은 '누가 구매했더라'가 아닌, 브랜드의 철학이나 특징이 나에게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상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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