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철책 사라진 동해안 낯선 풍경들
가볍게 한 장 21. 사진가 김전기의 ‘낯선 장소들’ 사진전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보던 기자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철책이 언제 사라졌지? 동해 바다가 이렇게 아무 곳이나 갈 수 있었나?’ 과거 동해안을 갈 때마다 좋은 풍광일수록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그런 아쉬움이 사라졌다. 송이버섯과 낙산사가 유명하던 강원도 양양이 서핑의 성지가 된 것도 바닷가를 막던 철책선이 사라지고부터였다.


지난 2007년부터 동해안 바닷가에 철책이 사라지기 전과 후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던 김전기 사진가의 사진전이 현재 강원도 고성 평화기억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철책이 사라지기 전과 후의 사진 10여 점이 소개되고 있다. 철책 안에서 텐트를 치고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철책을 앞에서 올리는 야외 결혼식, 철책 앞의 사륜 바이크 주행장 등 다소 낯설고 어색한 풍경들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낯선 장소들’이다.


과거 동해안은 북한이 잠수정이나 고깃배로 자주 침투하던 바다였다. ‘68년, ’96년, ‘98년에 울진·삼척, 속초 등에 잠수정과 다수의 무장공비가 침투했다가 우리 군경과 대치하고 발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24시간 군인들이 경계하던 해안 초소와 철책이 있어도 바다에서 침투하는 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군에선 한강과 동·서해안의 철책과 초소들을 없애는 대신 폐쇄회로(CCTV) 카메라나 열 영상 감시 장비 등으로 대처했다. 동해안 철책만 해도 2006년부터 2022년까지 70%의 철책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진가는 철책선이 사라졌다고 동해안에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고 했다. 바다 풍광을 가로막는 철조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외지인들이 휴가를 즐기는 풍경만 담았다면 단순한 기록에서 끝났을 것이다. 김 전기는 무심한 풍경 속에 분단이라는 시대의 역사적 흔적이 집단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불안한 흔적들을 찾아 관찰했다.


김씨의 사진은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바닷가는 더 낯설게 보인다. 사진가의 파인더는 먼 거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거리두기 앵글을 통해 과거의 빈자리에 남은 그림자를 담았다. 초소가 사라진 바닷가에 들어선 새장, 골프장, 수영장 그리고 어느 카페에 설치된 여배우와 군인, 달리는 말의 조형물들은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동해의 낯선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11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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