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만에 처음… 아프리카, 자전거에 눈을 뜨다

지난달 28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170만 시민 전체가 도로로 쏟아져나온 듯했다. 도심 외곽 지역에선 전신주와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간 사람도 많았다. UCI(국제사이클연맹) 도로 세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투르 드 프랑스’ 챔피언 타데이 포가차르(슬로베니아)를 비롯해 세계 108국 사이클 선수들의 역주를 보려는 인파였다. 1921년 창설 이래 104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열린 이번 세계선수권은 르완다 국민에겐 일생일대 축제나 다름없었다. 대회 기간(8일) 내내 키갈리의 모든 학교가 휴교했고, 정부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에도 필수 인력만 남기고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키갈리 세계선수권을 통해 14억5000만 인구의 아프리카가 ‘사이클 신대륙’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이클 인기 확대와 신(新) 시장을 찾으려는 UCI,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국가 발전의 동력(動力)으로 삼으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UCI는 2010년대 후반부터 유럽을 넘어 글로벌 시장 확대에 몰두했다. 아시아, 중동, 호주 등지에서 대회를 개최하며 가능성을 타진했고, 젊은 세대의 사이클 열기가 높고 각 정부의 의지도 강한 아프리카를 새 타깃으로 삼았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가 과거 유럽의 지배를 받아 사이클을 전파하기 쉬운 환경이란 점이 우선 고려됐다. 프랑스의 정치·군사적 영향 아래 있었던 르완다는 1980년대 후반 투르 드 프랑스를 벤치마킹한 ‘투르 드 르완다’를 개최하며 사이클 인프라를 갖춘 상태였다. 대중교통이 열악해 일반 국민의 자전거 이용률이 높고, 해발고도가 높아 사이클 훈련지로 적합한 점, 젊은 유망주 발굴에 유리한 점도 UCI가 아프리카에 적극적인 투자를 결정하는 이유가 됐다. 실제로 해발 1500m 고지에 있는 키갈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비율이 17%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UCI는 일찌감치 2025년 세계선수권 개최지를 아프리카 국가로 못 박았고, 모로코와 경쟁 끝에 르완다가 유치에 성공했다. 자전거 저변은 탄탄하지만, 열악한 재정 탓에 엘리트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가 쉽지 않았던 주변 국가들이 앞다퉈 르완다에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아프리카 국가는 36국으로 작년 스위스 취리히 대회(15국)보다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선 사이클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제 대회 유치가 경제·사회 발전을 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점에 주목한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대회 기간 르완다에 외국인 관광객 수만 명이 몰리면서 시내 호텔은 물론 농촌 홈스테이까지 만실을 기록했고, 사파리·트레킹 같은 여행 상품도 완판됐다. 이번 대회 TV 중계 시청자는 전 세계에서 3억3000만명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엘 두센기윰바 키갈리 시장은 “르완다 국민과 기업을 세계에 알릴 최고의 기회”라고 했다.
근력과 심폐 지구력 등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춘 선수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것도 아프리카에서 사이클 인기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2022년 세계 3대 도로 사이클 대회인 ‘지로 디탈리아’에서 처음으로 구간 우승을 차지한 비니암 기르마이(에리트레아)가 대표적이다. 작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3개 구간을 우승한 그는 에리트레아에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기르마이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거리 응원이 펼쳐지고, 청소년 사이에서 사이클 선수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여자 선수 중에선 킴벌리 르크루(모리셔스)가 올해 투르 드 프랑스 여자 대회서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중간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키갈리 세계선수권에 나선 르쿠르는 “아프리카에서 조국을 대표해 달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우리 같은 작은 나라도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는 이번 대회 여자 주니어 도로 레이스 7위로 아프리카 선수 중 최고 성적을 달성한 유망주 치게 키로스(18)를 배출했다.

미 포브스지는 “키갈리 세계선수권을 통해 젊은 아프리카 선수들은 영감을 얻었고, 사이클계를 후원하는 기업과 UCI는 투자가치를 확인했다”며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스포츠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대회는 아프리카가 지닌 잠재력과 한층 발전한 사이클 문화를 보여준 멋진 쇼케이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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