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중독’ 늪 빠진 佛… 마크롱이 사활 건 연금개혁까지 좌초 위기

박강현 기자 2025. 10. 10. 0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긴축예산 놓고 여야 대립 격화
마크롱 2기에만 총리 5명 사임
AFP 연합뉴스지난 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7차 유럽 정치 공동체 정상회의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2기에만 다섯 명의 총리가 사임하는 등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마크롱 정책의 상징인 연금 개혁마저 좌초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긴축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적 반목으로 9개월 새 총리 3명이 사퇴한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해 온 연금 개혁마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수령액 비율)이 72%로 세계 최상위권인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재정 적자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마크롱은 연금 개혁을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추진해 왔다. 이런 와중에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마크롱 정부의 긴축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면서, 여권 내에서 잇따라 ‘차라리 연금 개혁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8일 “지난 6일 사임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가 2주 전 재정경제부에 연금 개혁을 중단했을 때 경제적 비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사임 이후에도 “정파 간 합의를 끌어내라”는 마크롱의 지시를 받은 르코르뉘는 전날 우파·중도 진영과 회동에서, 연금 개혁 중단 가능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금 개혁 당시 정부를 이끈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도 7일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연금 개혁 중단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범여권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을 언급하며 “공화당 우파부터 개혁주의 좌파(사회당·PS)와도 함께 일해야 한다”며 “연금 개혁 중단이 금기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금 개혁 중단은 사회당이 여권과의 정책 공조 조건으로 줄곧 요구해 온 것이다. 여권의 잇따른 입장 변화 조짐에 사회당은 “늦었지만 긍정적인 신호”라며 일단 ‘환영’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단순한 전술적 조치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연금 개혁은 2017년 집권한 마크롱의 최대 역점 사업이다. 그는 2023년 연금 수령을 위한 법정 은퇴 연령(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완전 연금 수령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개혁안을 강행했다.

프랑스의 은퇴 제도는 62세에 일을 그만두고 바로 연금 수령이 가능해 유럽에서 가장 후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마크롱은 이에 대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일 뿐만 아니라, 노동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등에 업은 강경 좌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은퇴자들이 주요 지지 세력인 강경 우파 국민연합(RN) 등 야당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마크롱 정부는 이에 의회 표결을 생략하고 단독 입법하는 헌법 규정을 발동해 2023년 9월 새 연금 제도 시행에 들어갔으나, 2년이 넘도록 연금 개혁은 사실상 표류 상태다. 긴축 반대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야당들이 정년을 다시 62세로 되돌리거나, 아예 60세로 더 앞당겨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해 왔다.

이런 와중에 추가로 긴축 예산안이 나오자,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지난해 12월)와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9월)가 의회에서 연속으로 불신임됐다. 바이루에 이어 총리직에 오른 르코르뉘가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타협안 조율을 시도했으나, 이마저 각 당의 정치적 셈법이 갈리면서 실패했다. 르코르뉘는 결국 취임 27일 만에 전격 사임하며 20세기 이후 최단명 총리가 됐다. 마크롱 2기에만 총리 다섯 명이 잇따라 사임하며 국정 마비가 일상이 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의 재정난은 ‘복지·연금 재정 포퓰리즘’이 구조적으로 고착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2025년 1분기 기준 프랑스의 누적 국가 부채는 3조3454억유로(약 5461조원)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113.9%로 유로존(유로화 통용 지역) 중 그리스·이탈리아의 뒤를 잇는다. 재정 적자는 GDP의 5.8%로, 유럽연합(EU) 평균의 거의 두 배다.

이런 재정적 부담의 주요 원인으로 연금제도가 꼽힌다. 한국처럼 기금을 쌓아두고 나눠주는 적립식이 아니라 그해 걷어 그해 나눠주는 ‘부과식’ 구조로, 부족분은 정부 재정에서 메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금 지출은 전체 예산의 약 20% 내외를 차지하고, 재정의 ‘폭탄 돌리기’는 점점 심화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철도·공무원 등 특수직역 연금과 높은 실업수당(평균 임금의 57%를 24~36개월 지급), 무상에 가까운 건강보험 제도까지 겹치면서 복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대가는 신용 등급 하락과 급증하는 이자 비용이다.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5%에 육박하고, 올해 국채 이자만 665억유로, 2029년에는 1000억유로를 넘어설 전망이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선 사실상의 ‘국가 부도’인 IMF 구제금융까지 언급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연금 개혁이 중단되면 이미 ‘재정 포퓰리즘’에 중독된 프랑스의 부채 위기가 더 심화되고 미래 세대의 부담도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

프랑스의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고 완전 연금 수령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내용. 급속한 고령화와 재정 적자 등에 대응해 마크롱 대통령이 2023년 강행했다. 의회 표결을 생략하는 헌법 49조 3항까지 동원했지만, 야당·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