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문장으로 300쪽… 헝가리 '묵시록 문학 거장' 노벨상 영예
헝가리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등
종말·파국 치닫는 인간 욕망 그려
길고 난해한 만연체의 문장 특징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인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파국으로 치닫는 종말을 그리면서도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헝가리 현대 문학 거장. 헝가리 작가로는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시간)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에 대해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켜 주는 강렬하고 예언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프란츠 카프카를 거쳐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기까지 중부 유럽 전통을 잇는 위대한 서사시 작가"라며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이 특징"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수상자 발표 직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54년 헝가리 남동부의 소도시 줄러에서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했다. 1985년 발표한 장편 '사탄탱고'는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공산주의가 붕괴돼 가던 1980년대 헝가리의 해체된 집단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절망을 그린 소설은 헝가리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헝가리 작가주의 영화감독 벨라 타르가 7시간이 넘는 동명의 영화(1994)로 만들어 걸작의 반열에도 올랐다.


이후에도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1999), '서왕모의 강림'(2008), '마지막 늑대'(2009), '세상은 계속된다'(2013),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 등 절망과 고통, 타락과 구속, 전쟁을 주제로 인간 내면을 탐구해 왔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이라고 상찬했다. 그는 종종 러시아 문학의 시작을 알린 니콜라이 고골(1809~1852), 미국의 대문호 허먼 멜빌(1819~1891)과 비견되기도 한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도 매년 거론됐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은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이 특징이다. '저항의 멜랑콜리'는 300쪽이 넘는 분량이 단 한 문장으로 쓰였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과 '서왕모의 강림'을 한국어로 옮긴 노승영 번역가는 "작가는 인터뷰에서 낮에 소젖을 짜며 일하는 동안 쓸 것을 머리에 넣어두고 밤에 쓴다고 했는데, 마치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 한 번에 쭉 흘러나오듯 글을 쓴다"며 "분절되지 않는 일상의 연속성을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문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덧 몰입에 이르는 게 크러스너호르커이 소설의 매력이다. 다만 영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에는 대표작인 '사탄탱고'를 비롯해 6권의 책이 번역 출간됐다.

그의 작품에는 체제 비판적 성향도 짙게 깔려 있다. 1987년 공산주의 체제하의 헝가리를 떠나 서독에서 1년을 머물렀다. 이후 몽골과 중국에서 영감을 받아 다수의 작품을 썼다.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담겨 있다. 노 번역가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헝가리의 민족성과 역사, 오늘날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한다"며 "그런 그의 작품은 한국 사회와도 오버랩 되는 면이 있어 한국 독자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제이슨 휘태커 영국 링컨대 교수는 "우리는 20세기 말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대적이고 암울한 환경 속에서 21세기에 들어선 것 같다"며 "그래서 '사탄탱고'와 같은 책에 담긴 암울하고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벨상 수상자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와 함께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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