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4억 할인에도 썰렁”…애월은 어쩌다 아파트 무덤이 됐나

지난 1일 오전 10시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해안도로에서 약 200m 떨어진 ‘엘리프 애월’(엘리프) 단지 앞에는 ‘할인분양 6억원대→4억원대’라고 쓰인 홍보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파격적인 할인 혜택에도 단지에 차려진 분양사무소에는 고객 대신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만 드나들었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그래도 할인 광고가 시작된 뒤 전화나 방문 문의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엘리프 시행사인 대한토지신탁이 32평형(전용면적 84㎡) 아파트 분양가를 33%나 파격적으로 낮춘 건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준공한 엘리프는 단독·다세대·연립주택이 모여있는 애월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피스텔 30세대와 아파트 136세대를 보유한 아파트 단지다. 하지만 2022년 12월 아파트 청약 당시 신청 건수는 16건뿐이었고, 입주가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비어있는 세대가 적지 않다. 현재 시행사는 미분양 세대 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30% 안팎의 세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프에서 10㎞ 떨어진 애월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사용 승인을 받은 애월읍 하귀1리의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효성해링턴)는 모든 세대(425세대)를 대상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공매(정부가 재산을 공개 매각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준공될 때까지 425세대 중 9세대만 분양됐는데, 최종적으로는 1세대만 분양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대마저 시행사인 신한자산신탁 등을 상대로 분양대금을 돌려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낸 상태다. 4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공매에 넘겨진 건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다. 8억원대(34평형)에 이르는 고분양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달 8일 약 4006억원에 시작된 효성해링턴(감정평가금액은 약 3336억원) 입찰은 현재 6차례 유찰됐고, 최저입찰가(물건이 팔릴 수 있는 가장 낮은 금액)는 3000억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선 “2000억원에도 안 팔릴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귀1리 옆 하귀2리에도 악성 미분양 아파트 단지가 있다. 2023년 2월 준공된 41세대 규모 하귀푸르미르아파트다. 지난 7월 기준 제주 지역에는 총 1611세대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애월에 있는 엘리프와 효성해링턴, 하귀프리미르아파트가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시행) 사업체들이 민감한 미분양 세대 수는 비공개 요청을 해서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면서도 “해외에 못 나가는 코로나19 시기가 제주 지역은 부동산 활황기였는데, 그때 뒤늦게 애월에 비싸게 땅을 산 사업체들이 최근 (비싸게) 분양하려다 보니 팔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10년대 중반 방송인 이효리씨의 이주로 ‘제주살이’ 열풍의 상징이 됐던 애월의 부동산 경기는 코로나19 시기에도 ‘한 달 살이’ 유행으로 활기를 띠었지만,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도민 대신 비싼 땅과 고급주택을 사들이던 이주민이나 외지인들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애월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ㄱ씨는 “한창일 때 외지인들이 평당 300만~400만원에 사던 애월 땅을 지금은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아무도 안 사는데, 누가 시내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6억원, 8억원에 사겠냐”며 “이 주변에 아파트 말고도 경매에 나왔거나 나올 부동산 매물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이효리씨 덕분에 애월이 떴을 때는 내가 (중개 수수료로) 1년에 1억원 넘게 벌었고, 코로나19 시기에도 못 해도 1년에 3천만원은 벌었다”며 “최근에는 1년간 전혀 계약을 못 해서 지금 폐업절차를 밟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채 상병 특검 “13일 윤석열 소환통보…다음주 조사 계획”
- ‘보석 기각’ 윤석열, 체포방해 혐의 재판 또 불출석
- 코스피, 사상 첫 3600선 돌파…연휴 뒤에도 ‘반도체 랠리’
- 풀려난 이진숙에 박주민 “체포 적법했다는데 정치탄압 장사해서야”
- 이스라엘 내각, 가자 1단계 휴전 합의안 승인
- 혐중 부추기는 국힘…‘의료·선거·부동산 쇼핑 방지 3법’ 당론 추진
- 민주 대변인이 국힘 대변인을 “용기 있다” 칭찬한 까닭
- 코스피 사상 첫 3600 돌파…원-달러 환율 1420원 웃돌아
- 인천 해상서 탄피 수백발 발견…군 당국 수거·조사
- 가을 하늘에 4개의 혜성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