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默珠) 병원을 아십니까

이 성당 신자이자 병원장인 권묘정 씨는 “가톨릭 신자에게 묵주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묵주 기도’라는 기도 형식이 있을 정도로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성물”이라고 말했다. 묵주 기도는 묵주를 이용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묵상하며 바치는 가톨릭의 대표적인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유흥식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들의 주례로 매일 밤 교황의 쾌유를 비는 묵주 기도가 봉헌됐다. 또 레오 14세 교황도 지난달 말 세계 평화를 위해 “10월 한 달을 묵주 기도의 날로 봉헌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특별한 의식이다.
“10년 전 세례를 받으면서 나만의 특별한 묵주를 갖고 싶어 직접 만들어 봤어요.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주변에 소중한 묵주가 망가졌는데, 고치지도 못해 상자에 넣어 보관만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성경이 찢어지거나 훼손됐다고 일반 책처럼 쉽게 버리기 어려운 것처럼, 신자들에게는 묵주도 마찬가지다. 권 씨는 “수선을 부탁받은 묵주 중에는 100년 넘게 대대로 이어지거나,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것도 있었다”라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준 묵주는 유품과 마찬가지인데 망가졌다고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 묵주를 파는 곳은 있어도, 고쳐주는 곳은 없었다. 권 씨는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묵주를 고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2년 전 신부님께 허락을 받고 다니는 성당 안에 묵주 병원을 열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묵주 병원은 신자들의 호응이 좋아 현재 수원교구 호계동 성당 등 모두 6곳에 문을 열었다.
‘묵주, 그까짓 것 줄에 알을 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 오산. 묵주를 꿰는 줄은 실 같은 단순한 줄이 아니라, 대부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매듭이다. 외국에서는 비교적 만들기가 쉬운 번데기 매듭이 많지만, 국내에서는 합장·연봉·도래·가락지 등 우리 전통 매듭으로 만든 묵주가 대부분이다. 번데기 매듭은 끈이 돌돌 말린 모양이 번데기와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매듭 중 가장 간단하다. 연봉 매듭은 연꽃의 봉오리 모양을 닮은 둥근 매듭으로, 단추 매듭으로도 불린다. 알도 같은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서울 동대문 시장 등에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같은 모양을 구하기 어려우면 최대한 모양과 색이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는데, 워낙 묵주 종류와 색이 다양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권 씨는 “워낙 사연을 가진 묵주가 많다 보니, 망가진 묵주를 고쳐 받았을 때 대부분 오랜 세월 못 보던 가족, 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라며 “작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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