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없는 사회’ 모든 시민 함께 나서야
지난해 일터서 숨진 노동자 827명
새 정부, 산재 예방책 마련 등 총력
‘노동 존중’ 분위기 속 변화 기대감
노동자 “일선 현장 안전환경 조성”
시민 “노조 역할 필요없는 세상을”
경영계 “회사가 현장 불합리 개선”
전문가 “사회 안전 분위기 조성을”
내란을 극복한 시민의 목적은 정권 교체가 아닙니다.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들을 짚어봅니다.

성과보다 안전 먼저
올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노동 존중' 기조에 발맞춰 노동계 숙원을 제도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새 정부는 지난 8월 24일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로 △사용자 정의 △하청노동자의 원청 교섭권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등을 명확히 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별칭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두 차례나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새 정부 들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9월 12일 공포됐다.
새 정부는 지난달 노동안전 종합대책도 발표하면서 산재 예방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노동안전 종합대책 핵심은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노동자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완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시 법인 과징금 부과(영업익 5% 이내·하한액 30억 원) △건설사 영업정지 요건을 동시 2명 이상 사망·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 △노동부의 건설사 등록말소 요청 규정 신설 등이다.
새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이 '일터에서 죽지 않는 사회'로 향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각자의 일터가 보다 안전해질 수 있도록 노사 모두의 안전 중심 경영을 강조했다.
김영환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두산에너빌리티지회 대의원은 "매해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산재를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사용자가 절대적으로 안전 경영을 해야 한다"라며 "성과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안전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대의원은 특히 '과거 타령'에 매몰되지 않아야 산재를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7월 초 폭염에 수도권에서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3명이 온열질환 의심으로 숨졌다. 7월 8일 서울시 최고 기온은 37.1도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택배노동자들은 과로사·온열질환 재해 등을 예방하려면 택배 과열 경쟁·시민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CJ대한통운 창원진해성산 터미널 택배노동자는 "쿠팡이 불붙인 배송 속도 경쟁으로 모든 택배사가 주 7일 배송·심야 배송 등 노동자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라며 "경영계에서는 재해 발생 때 처벌·제재 규정이 가혹하다고만 말하지, 노동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 더불어 배송 속도 경쟁이 맞물려 과로사가 유발되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빨리빨리'식 문화가 우리 이웃을 죽음으로 몰 수 있다는 생각도 해줬음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산재 발생 땐 재발 방지책 연결돼야
직장인 이영우(36·창원시 성산구) 씨는 '일터에서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역설적으로 노조가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터에서 죽는 이들 중 안전 사고 외 감정적으로 노동자를 몰아붙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도 산재인 만큼, 감정 노동 산재 예방도 대응이 중요해 보인다"라며 "한편으로는 노조가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노사가 알아서 본인 역할을 다 한다면 노조가 없어도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재해 없는 사업장 만들기에 동의하면서 노사 의식 변화를 강조했다. 경영 여건이 좋지 않은 영세 사업장 같은 경우 안전 관련해 정부 지원을 일부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경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ㄱ 임원은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산재 예방보다 기업 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들 사업장은 영세해 산재 예방 환경도 100% 구축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형기 경남거제경제정책연구회 부장은 "'이쯤하면 되겠지', '대충하자'는 마인드가 안전 사고를 일으킨다"라며 "노동자는 개인 작업 환경에서 안전 점검을 숨쉬듯 해야 하고, 회사는 주기적인 안전 교육을 하는 등 노사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노동자는 매일 일하는 곳일수록 나태해지기 쉬우니 스스로 작업 공간 안전을 잘 살펴야 한다"라며 "회사는 안전하지 않은 현장의 불합리를 묵인하지 않고 개선하는 식의 안전제일 문화가 안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자·전문가들은 산재를 숨기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 발생 시 당연히 기업과 사회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례를 통해 재발하지 않는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상환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미조직국장은 "산재를 은폐하지 않고, 기업과 사회가 책임질 수 있도록 산재 사실을 알리며 그 사례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게 먼저"라며 "그러면서 산재를 막게 된다면,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고 사회와 시민 또한 성숙해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황현일 국립창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자들이 다친 후 법·제도를 통해 산재를 인정받고 심신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나, 제도 이전에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는 작업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 조성도 중요하다"라며 "이밖에 우리 사회·시민들이 일터에서 위험 요소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야 '일터에서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