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서 쫓겨난 디즈니의 영웅, 꿈꾸는 달에서 낚아낸 복수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5. 10. 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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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24][브랜드로남은사람들-65]드림웍스 S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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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헐리우드, 수면아래 끓어오른 갈증
1990년대 초·중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시장은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르네상스’를 일으키며 시장을 주도했기 때문이다.《인어공주》가 1989년에 개봉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으로 이어지는 성공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이러한 성공을 이끌어간 인물은 바로 제프리 카첸버그(Jeffrey Katzenberg)였다. 뉴욕에서 태어나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제작 부사장까지 승진했던 그는 회사 상사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를 따라 1984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스너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카첸버그는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의 각본가 린다 울버튼을 직접 영입했고 인어공주의 성공을 이끄는 등 디즈니 르네상스를 구축한 장본인이었다.

마이클 카첸버그
디즈니서 쫓겨난 영웅, 복수를 꿈꾸다
하지만 성공신화는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1990년대 화려한 전성기를 연 디즈니는 내부 갈등에 휩싸인다. 그를 발탁하고 함께 디즈니에 합류한 아이스너와의 갈등이 핵심이었다. 경영권을 두고 두 디즈니 스타 경영자들은 맞붙었고 결과적으론 아이스너가 카첸버그를 해고하면서 디즈니에서 퇴출됐다. 카첸버그가 느낀 배신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훗날 그는 “나의 모든 의지는 그 순간부터 새 스튜디오를 세우겠다는 집념으로 모였다”고 회상했다.
마이클 아이스너
헐리우드의 거장, 목마름에 시달리다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 영화업계엔 또 하나의 스타가 등장했다. 《죠스》, 《E.T.》, 《쥬라기 공원》등을 연이어 흥행시킨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였다. 이미 세계적 스타감독이자 거장으로 평가받던 그의 마음 한켠엔 알 수 없는 갈증이 자리잡았다.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여전히 불만이 컸다. 거대 자본과 스튜디오가 정점에 선 먹이사슬안에서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라도 늘 그 아래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창작자 중심의 스튜디오, 예술가들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왕국”을 꿈꾸고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1990년대를 전후해 본격화된 기술 발전이 할리우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점점 발전했고, 관객의 눈은 더 화려한 볼거리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요구했다. 전통적인 스튜디오 방식에서 컨베이어 벨트식으로 쏟아지는 작품에서는 한계가 느껴졌다. 거대 자본이 관리자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찍어내던 방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커졌다. 이로 인해 새로운 혁신과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도원결의에 등장한 귀인, 완성된 꿈의 조합
쫓겨난 경영자와 시스템을 바꾸려는 거장. 이 둘의 마음은 통했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 요소가 부족했다. 바로 자본. 결정적으로 그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었던 건 세 번째 인물,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 덕이었다. 게펜은 이미 음악 산업에서 전설적인 이름이었다. 그는 게펜 레코드를 세워 이글스, 건즈 앤 로지스, 너바나를 발굴했고, CBS와 워너뮤직 등과의 인맥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거대한 네트워크를 쌓아올렸다. 무엇보다도 그는 엄청난 자본을 손에 쥔 투자자였다. 게펜은 자신을 ‘냉정한 돈꾼’이라 칭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도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데이비드 게펜
그렇게 1994년 세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는 곧바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스필버그는 상징성과 창작자의 권위를, 카첸버그는 스토리텔링과 제작 능력을, 게펜은 돈과 네트워크를 책임질 수 있었다. 게펜은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스티븐, 너는 예술을 책임져. 제프리, 너는 콘텐츠를 맡아. 그리고 돈은 내가 가져올게.”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펀, 제프리 카첸버그(왼쪽부터 )
더 컸던 기대, 실망으로 돌아오다
그들은 회사이름을 ‘드림웍스 SKG’라고 정했다. 꿈을 보여주는 예술인 영화를 창작자의 의도대로 제작하고 만들자고 작심한 작명이다. 말그대로 꿈을 현실화하는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헐리우드 최강팀, 어벤전스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의 이름 첫글자를 따기로 했다. 스필버그의 S, 카첸버그의 K, 게펜의 G가 합쳐저 SKG가 된 것이다 .
초기 회사명
초기 자금 규모는 당시 기준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33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금이 모였다. 게펜의 자금력은 물론이고,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 같은 실리콘밸리의 신흥 갑부들도 기꺼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신생 스튜디오 하나가 메이저 스튜디오와 맞먹는 재정적 힘을 지니게 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헐리우드의 언론은 ‘드림팀 스튜디오’라며 열광했다. 물론 기존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건 거품이다. 스타 셋이 모여봤자 오래 못 간다”며 비웃었다.
위기의 드림웍스, 라이언 일병이 구하다
창업 초기는 기대만큼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세 창업자의 기질은 극적으로 달랐다. 스필버그는 늘 예술과 품질을 강조했고, 카첸버그는 흥행성과 속도를 앞세웠으며, 게펜은 수익과 장기적 자본 회수를 따졌다. 회의 자리에서 의견 충돌이 잦았고, 때로는 고성이 오갔다.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카첸버그는 관객은 표를 사야한다고 소리치면 스필버그가 좋은 예술이 관객을 끌고 온다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게펜은 그런 둘을 보며 냉정하게 숫자를 계산했다.
드림웍스 첫 작품 개미.
1998년 첫 작품 《개미》와 《프린스 오브 이집트》가 연이어 개봉했다. 비평가들은 호평을 쏟아냈지만 기대보단 아쉽다는 성적표를 거뒀다. 2000년 내놓은 《로드 투 엘도라도》역시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면서, 드림웍스의 신화가 끝났다는 조롱 섞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내부적으로도 긴장이 고조됐다. 투자자들은 불안해했고, 업계에선 역시 메이저 스튜디오를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코웃음쳤다.

하지만 이런 비웃음을 스필버그가 직접 뒤집었다. 1998년, 스필버그가 직접 연출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관객에게 충격을 안겼고,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스필버그는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고, 드림웍스는 단숨에 “흥행과 예술을 동시에 잡는 스튜디오”라는 명성을 얻었다.

완성된 복수, 슈렉의 등장
파콰드 영주 캐릭터
그리고 2001년, 마침내 카첸버그의 애니메이션 신화가 다시 쓰여졌다. 《슈렉》은 그가 디즈니를 떠나면서 품었던 모든 분노와 야심을 쏟아부은 작품이었다. 영화는 동화의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비틀며, 전형적 공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았다. 심지어 당시 디즈니 CEO 마이클 아이스너를 빼닮은 캐릭터가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콰드 영주가 그 주인공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슈렉》은 아카데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적으로 4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디즈니의 아성은 무너지고, 드림웍스는 마침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왕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슈렉. 2001년작
꿈을 낚는 소년, 드림웍스의 꿈
드림웍스의 상징인 달 위의 소년 로고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낚싯대를 드리운 소년은 스필버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꿈을 낚는 아이’라는 심벌을 원했고, 실제 디자인을 맡은 아티스트는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누군가는 그 소년이 바로 어린 시절의 스필버그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라 말한다.

물론 성공 이후에도 세 사람의 갈등은 계속됐다. 게펜은 점차 영화 사업에서 거리를 두었고, 카첸버그는 애니메이션을 별도 회사로 분리해 나가려 했다. 스필버그는 여전히 감독으로 바쁘게 현장을 오가며 회의에는 깊게 개입하지 않기도 했다. 2004년 카첸버그를 CEO로 애니메이션 부문은 완전히 분리·독립해 드림웍스 애니매이션으로 재탄생했다.

드림웍스 로고
이어 2006년 드림웍스가 바이어컴에 팔리며 두 회사로 나뉘어졌다. 10년 뒤인 2016년 드림웍스는 38억달러에 NBC 유니버설로 넘어간다. 드림웍스가 독립 스튜디오로서의 시대를 넘어, 거대 미디어 그룹 속 자회사로 전환되는 분기점이었다.기존 드림웍스 SKG라는 이름 역시 이 때 드림웍스로 바뀌었다.
정점에 섰던 거인들의 반전, 헐리우드를 바꾸다
드림웍스의 탄생은 단순히 세 거인의 만남이 아니라, 1990년대 헐리우드가 겪던 변화가 불러낸 필연이었다. 디즈니의 독점에 균열을 내고, 창작자 중심의 스튜디오를 만들고자 했던 열망, 그리고 거대한 자본의 모험이 맞물린 결과였다. 초창기 실패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슈렉》이라는 걸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드림웍스는 수많은 비웃음과 위기를 견뎌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보여주었다. 헐리우드에서, 세 거인의 꿈이 만나면 한 시대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드림웍스 로고
드림웍스의 정확한 창립일은 1994년 10월 12일.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헐리우드의 혁신이 된 드림웍스가 탄생한 것이다.

추석을 맞아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서 달위에서 꿈꾸던 그 소년을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달빛 아래 던져진 한 줄기 낚싯줄처럼, 우리 마음속 소망도 차분히 달에 걸려 빛나기를 바라며.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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