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준 패널티 540만 원…상담원이 다 물어내라?

김채린 2025. 10. 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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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던 A 씨, 지난 5월 한 고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주문한 상품을 일주일이 넘도록 받지 못한 고객이었습니다.

쿠팡에 입점한 판매자가 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A 씨가 판매자 확인 또는 상품 취소가 가능하다고 안내하자, 고객은 언성을 높이며 반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당시 A 씨가 녹음한 고객과의 통화 내용 일부분입니다.

- 고객: 나도 쿠팡을 오래 하고 있거든, 사용을?
- 상담원: 네.
- 고객: 당신네들 이거 뭐 그 따위로 장사를 해먹고 XX 잘 먹고 잘 사는 거야?
- 상담원: 고객님, 욕설은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고객: 열이 안 받게 생겼어 지금?

한 차례 욕설을 내뱉은 고객은 "지금 당장 (판매자에게) 확인하라"고 요구했고, 상담원 A 씨는 주말이라 당장은 어렵다고 여러 차례 안내했습니다.

돌아온 건 "시끄러 XX" "처음부터 XX, 팔지를 말든가"라는 욕설.

"욕설을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반복되자, A 씨는 "통화를 종료하겠다"고 안내하고 결국 전화를 끊었습니다.

■ '욕설 고객' 통화 파일 SNS에 올린 상담원…발각 후 벌어진 일은?

이후 A 씨는 자신의 SNS(스레드) 계정에 해당 고객과의 통화 녹음 파일을 올렸습니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손발이 떨린다는 등의 글도 덧붙였습니다.

A 씨는 기자에게 "당시 이름과 구매 상품 등 고객의 개인정보는 묵음 처리했고, 앱으로 음성도 변조했다"고 말했습니다.

통화 녹음 파일을 SNS에 올린 이유에 대해선 "위로해 달라, 상담사도 사람이니 욕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상담원)가 휴지통이냐. 입으로 쓰레기 뱉지 말아달라. 고객님들은 한 번 지르면 그만이겠지만, 우리는 그거를 몇십 통, 몇백 통 받고 그 감정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의도였어요." (A 씨)

A 씨에 따르면 이 게시물의 조회 수는 1천 회를 넘겼습니다.

그로부터 보름 뒤, A 씨가 소속된 쿠팡 하청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군가 A 씨의 SNS 게시물을 쿠팡에 제보했다며 재택근무자인 A 씨를 회사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쿠팡 상담원 계정에는 더이상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전화를 받은 뒤 SNS 게시글을 삭제했고, 다음 날 회사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통화 녹음 파일도 지웠습니다.

A 씨가 녹음한 면담 대화에 따르면, 관리자는 A 씨에게 "상담 녹취는 회사 자산인데 그걸 개인 휴대전화에 담아놓은 것만으로도 보안 위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고객과) 상담하고 있는 내용 자체가 쿠팡의 프로세스이고, 그게 SNS에 드러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된다"라며 "쿠팡 업무는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식상으로는 관리자의 권고로 사직서를 썼지만, A 씨는 사실상 해고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A 씨는 "규정을 어겼으니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후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 퇴사로 끝난 줄 알았는데…"쿠팡이 준 패널티, 당신이 다 물어내"

A 씨가 쿠팡 하청회사에서 퇴사한 지 2달 넘게 지난 8월 중순, 회사는 A 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여기엔 A 씨의 SNS 글을 문제 삼아 쿠팡이 회사에 '개인정보보호 위반'에 따른 패널티(도급대금 감액)를 줬고, 이 때문에 회사가 5,398,292원의 직접적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어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근로계약상 신의성실의무, 비밀유지의무 위반 등을 근거로 당사가 입은 손해액에 대해 귀하에게 구상 청구를 통지한다"면서 "내용증명 통지 수령일부터 7일 이내에 아래 계좌로 5,398,292원을 입금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기한 내에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형사 책임을 묻는 법적 조치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진 A 씨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이 있었습니다.

A 씨는 지난 5월 관리자 면담 당시, 경위서를 쓰며 "향후 회사에 불이익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적었습니다.

관리자가 "경위서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라며, 구상권 청구 동의 부분을 콕 집어 적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당시 관리자에게 "진짜 구상권 청구가 되냐"고 걱정하며 물었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제가 이 회사를 4년 넘게 다니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없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다던 일이 A 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날아온 겁니다.

A 씨는 KBS에 제보하며 "회사가 물어내라는 돈은 쿠팡 상담원으로 일하며 번 돈보다 더 많은 액수"라며 "SNS에 하소연했다고 구상권 청구까지 한다니, 상담원 인권만 매번 밑바닥"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하청회사 "경고 차원으로 내용증명 발송 …실제 구상권 청구 계획 없어"

기자는 상담원이었던 A 씨가 회사가 받은 손해라는 5,398,292원을 모두 물어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하청회사인 KS한국고용정보 측에 문의했습니다.

12일 만에 답변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내용증명의 목적은 '경고'였을 뿐, 실제 A 씨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계획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내용증명으로 경고를 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보안 교육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원이 고객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업무 관련 내용을 SNS에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으면 경고 효과가 없어 문서를 발송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직원의 귀책 사유로 회사가 경제적 손해를 봤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배임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KS한국고용정보 관계자는 "실제 구상권을 청구한 사례는 없고, A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의 내용증명을 받고 1달 가까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A 씨는 "경고인데 돈을 입금할 회사 계좌까지 적어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화에서) 문제가 될 부분은 다 거르고 올린 건데, 내가 무슨 고객 정보를 유출했다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기자는 원청인 쿠팡에도 하청에 부과한 패널티 5,398,292원을 어떻게 산정한 것인지 구체적 근거를 물었지만, 비공개 계약 사항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쿠팡 측은 "이 사건은 고객 개인정보를 상담원이 개인 기기로 무단 녹음 후 유출한 것으로, 쿠팡은 이를 매우 엄중하게 여겨 고객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협력사에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조치를 신속하게 요청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고객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엄격한 기준을 갖고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협력사 상담원 등 근로자 보호와 관련된 사항을 철저히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상담원, 월 평균 11.6회 폭언 노출…"근로자 보호 조치부터 제대로"

이 모든 일은 한 고객이 상담원에게 무심코 내뱉은 욕설에서 시작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22년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원들은 고객으로부터 한 달에 평균 11.6회 폭언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용준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이번 사건은 업무 과정 중 회사가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해 벌어진 측면도 있다"면서 "오히려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근로자 보호 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고객센터 상담원 등을 고용한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을 때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 연장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폭언 등으로 인한 고소,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합니다.

상담원이 처한 현실이나 SNS 이용량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과 유사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는데요.

한 변호사는 KBS에 "(회사 측 내용증명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 손해액만 내세웠다"며 "실제 이런 내용증명을 받을 경우, 내가 왜 그 돈을 물어야 하고 어떤 사유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본 건지 근거를 밝혀달라, 도급 계약서 등 근거 자료도 보내달라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고객 개인정보를 묵음 처리했더라도 통화 녹음 파일이 제대로 변조되지 않았거나, 원본으로 복구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제3자가 음성을 통해 그 사람이 누군지 식별할 수 있다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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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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