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로 떼돈 번 정원관, 전 재산 탕진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김태원, 이상원, 정원관 3명의 멤버로 구성된 ‘소방차’는 한국의 0세대 아이돌로 국내 아이돌의 시초라고 평가받는다.
‘소방차’는 당시 댄스를 선보이는 무대가 생소했던 우리나라에, 댄스와 퍼포먼스를 메인으로 활동하며 소년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데뷔곡 ‘그녀에게 전해 주오’를 필두로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하얀 바람’, ‘사랑하고 싶어’, ‘연애편지’, ‘G카페’, ‘Bye Bye’, ‘추남 시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10대들의 ‘원조 오빠’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멤버 중 정원관은 100kg이 넘는 거구의 체격으로 다른 두 멤버에게 뒤지지 않는 날렵한 안무를 소화하며 공중제비를 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여 큰 사랑을 받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소방차 책받침은 거의 필수품이었으며 정원관의 ‘바가지 머리’가 대유행할 정도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약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소방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잖은 가운데, 최근 정원관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9월 23일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에 얼굴을 비춘 정원관은 자신의 인생사를 돌아보며 소회를 풀었다.
‘소방차’ 시절 11개의 밤무대와 수많은 CF, 각종 방송 활동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정원관은 돈을 버는 족족 탕진했다고 밝히며, 그때 수입이 현재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당시 돈을 펑펑 쓰고 다녔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보고 있다”라며 “너무 감사한 일이다. 비록 돈은 다 날렸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좋은 네트워크가 됐고 그게 비즈니스로 이어지면서 현재의 사업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결국 내 자산이 됐다”면서 긍정적인 면모를 보였다.

정원관은 ‘소방차’ 해체 이후 3년 만인 1996년 엔터테인먼트 회사 ‘뮤직팩토리’를 설립해 5인조 보이그룹 ‘NRG’를 발굴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2003년에는 조PD가 세운 회사 ‘퓨처플로우’의 대표직을 맡은 후 회사명을 ‘라임뮤직’으로 변경해 걸그룹 ‘i-13’ 등을 키웠다. 2007년부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음원 사이트 ‘벅스뮤직’의 대표이자 연예 기획사 ‘에스엔비이엔티’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마케팅 설루션 업체인 ‘가디언즈컴퍼니’의 대표로 있으며 17살 연하의 아내와 정아인, 정다인 두 딸을 둔 아빠의 삶을 살고 있다.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애 엄마인 줄 알았죠?” 55세 미혼 김희정, 20년째 ‘자식’ 키운 진짜 이유
- “건물 대신 ‘라벨’ 뗐다”… 장동민·이천희 ‘건물주’ 부럽지 않은 ‘특허주’
- “억 벌던 손으로 고기 썰고 호객”…연예인 자존심 던진 ‘지독한 제2막’
- “13억 빚 정리 후 작은 월세방이 내겐 우주”…김혜수·한소희의 ‘용기’
- “소화제만 먹었는데 췌장암 3기”…등 통증 넘긴 50대의 뒤늦은 후회
- “연예인은 고급 거지” 300번 실직 체험 황현희, 100억 만든 ‘독한 공부’
- “절대 빨대로 빨아먹지 마세요”…‘아아’에 ‘거품’ 얹었더니 [밀착취재]
- 보일러 없던 월세방서 ‘2000억’…배용준, 욘사마 버리고 ‘투자 거물’ 됐다
- “45만 월세의 반란” 박군, 30억 연금 던지고 ‘15억 등기부’ 찍었다
- 냉동실에 오래 둔 고기 하얗게 변했다면 먹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