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일본산 스포츠카 22년 몰아… 모친은 평소 “빨간 장미 돼라”

지난 5일 일본 나라현의 마호로바 자동차 박물관에는 평소보다 4배 많은 관광객이 방문했다. 전날 자민당 첫 여성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22년 동안 몰았던 도요타 스포츠카 ‘수프라(supra)’를 보러 지역 주민들이 몰린 것이다. 나라현 출신인 다카이치를 위해 나라도요타가 차를 인수·수리해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차를 20년 넘게 몬 애국적 총리 예정자’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는 1961년 나라현에서 회사원 아버지와 경찰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나 기시다 후미오, 아베 신조 전 총리 같은 세습 정치인이 다수인 일본 정치 풍토에선 출신부터 이례적인 인물인 셈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어린 다카이치에게 여성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것엔 맞서는 ‘가시’가 되라면서 “빨간 장미처럼 되라”고 말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상 비싼 학비를 댈 수 없어, 다카이치는 처음 합격한 도쿄의 와세다·게이오 대학 대신 고베대학 경영학부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가와사키의 ‘Z400GP’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대학 졸업 후 1984년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에 5기생으로 입학했다. 처음부터 정치인을 지망해 입학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출간한 ‘30살의 버스데이’에서 다카이치는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나오는) 월급으로 밴드 활동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그러나 24살 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때 일본이 버티고 설 수 있는 법 제도를 만드는 장소로 향하자”라는 마쓰시타의 강연을 듣고 감명받아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함께 마쓰시타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미국 퍼트리샤 슈로더 민주당 의원실 인턴으로 일한 2년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일본 경제가 가장 활황이던 1980년대, 미국에서는 미·일 무역 불균형을 비판하며 ‘재팬 배싱(Japan Bashing·일본 때리기)’이 한창이었다. TV에서 우연히 본 슈로더 의원은 일본에 비판적이었고, 다카이치는 왜 그런지를 이해하겠다며 1987년 미국으로 향했다. 다카이치는 그때 ‘일본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일본인의 운명은 미국의 여론에 좌우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귀국 후 TV 뉴스에서 정치 분석 캐스터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은 다카이치는 1992년 참의원에 도전했지만, 자민당 내부 경선에서 패배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낙선했다. 1년 후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다카이치는 자유당, 신진당 등을 거쳐 1996년에 자민당에 입당했다. 1993년 중의원 당선 동기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측근으로 자리매김하며 아베 2차 내각 때 첫 여성 총무상에 오르고, 자민당의 ‘당 3역’ 중 하나인 정조회장도 지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총리를 예약한 다카이치는 당선 인사에서 “(자민당 의원은) 인원이 적으니까 이제 전원이 일해야 한다. 나도 ‘워크 라이프 밸런스(워라밸)’라는 말을 버릴 것이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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