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획> 기억하는 이들, 역사가 된 여성들
인터뷰: 윤석남 / 작가
"한 인간으로서 완벽한 대접도 받지 못한 이 사회를 위해서 당신들의 목숨을 내던졌다는 거죠. 저는 처음에는 그게 굉장히 의아스러웠어요. 왜?"
"안녕하십니까. 작업을 하고 있는 윤석남입니다. 저는요. 요즘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해서 관심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을 그리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작업.
화폭에 담긴 인물이 백 명을 훌쩍 넘었지만, 작가는 아직도 붓을 놓지 못합니다.
인터뷰: 윤석남 / 작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나라라는 거는 그냥 나라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나 자신을 내가 보호하기 위해서는 내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분들을 내가 그림을 그리자 이분들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나는 작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계속해서.“
손톱만 한 사진 한 장에 의지해 백 년 전의 얼굴을 복원하고, 그것마저 없을 때는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웠습니다.
각기 다른 사연 속에서도, 눈빛만은 한결같이 강렬합니다.
인터뷰: 윤석남 / 작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보면서 보면은 아주 그 눈빛에서 강한 그런 열정 같은 게 보여요. 그래서 제 그림에는 그렇게 강한 눈빛이 많이 표현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 속에서 돋아난 8개의 파이프.
유관순, 남자현, 강주룡, 김알렉산드라.
그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담담하지만, 울림이 큽니다.
이회영기념관 <목소리> 특별전 - ‘남자현’
"힘들 때 늘 나를 지켜준 것은 총알이 뚫고 지나간 핏빛 바랜 적삼이었어. 삼베 적삼은 나의 방패였고 나의 깃발이었고 나의 남편이었고 그리고 나였어."
기록에서 소외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리’라는 현재의 감각으로 소환합니다.
학생 신분으로 만세운동에 나섰던 배화학당 소은명, 목포 정명여학교 박음전의 목소리는, 100년이 흐른 지금 모교 후배들이 다시 불러냈습니다.
유가온 1학년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100년 넘게 속으로 불러 보았어. 한번도 잊은 적이 없어. 정명여학교 친구들 내 목소리 듣고 있는 거야? 나 음전이야, 박음전. 14살 박음전. 나 대신 한 번만 불러줘. 피도 조선, 뼈도 조선, 이 피, 이 뼈는 살아 조선, 죽어 조선, 조선 것이라."
인터뷰: 유가온 1학년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처음 읽자마자 약간 울컥해서 울었어요. 약간 너무 슬프잖아요, 대본 자체가. 그래서 엄청 울고 이제 울지 않을 정도로 이제 계속 읽은 다음에 오디션을 봤죠."
박음전
정명여학교에 다니던 박음전은 14살, 지금의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목포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신문을 챙겨 읽고, 워싱턴 태평양회의에 나서는 우리 대표를 응원하려 태극기를 만들어 동료들과 거리에 섰습니다.
비록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지만, 기억하려는 이들의 노력으로 그는 다시 우리 곁에 숨 쉽니다.
인터뷰: 유가온 1학년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박음전이라는 학생이 사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기억 속에 살아있지 않으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기억을 오래오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1919년 3.1운동부터 4.8 만세운동, 그리고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
여학교 학생들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체포되고 재판에 넘겨져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야 했던 이들.
광복 80주년을 맞아, 학업을 잇지 못한 독립운동가 선배 15명에게 학교는 뒤늦은 명예 졸업장으로 최소한의 예우를 전했습니다.
인터뷰: 양호복 교장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우리가 나라를 잃었던 그런 아픔이 있지만 그 아픔을 다시 만세 운동이라고 하는 그러한 결의로 그것을 승화시켰고요. 그러한 결의가 찬 것이 지금 다시 또 우리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어떠한 계기가 되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여성 독립운동의 조직화를 이끈 김마리아, 임시정부 자금 조달을 위해 목숨을 걸고 조선과 중국을 오간 정정화.
흑백사진 속에 머물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AI 기술을 통해 생생한 얼굴로 되살아납니다.
기획부터 화질 복원, 제작까지 모두 1인 제작자의 손에서 탄생한 영상들입니다.
굶주린 이들에겐 따뜻한 한 끼를, 연필 대신 태극기를 쥐었던 어린 학생들에겐 교복 입은 일상을 돌려줍니다.
인터뷰: 정성훈 / AI 영상제작자
"단식으로 이제 돌아가신 분들이 조금 있으셨습니다. 단식으로 순국하셨기 때문에 영상상에서 이제 한 끼를 좀 푸짐하게 드셨으면 좋겠다 하는 취지에서 출발을 했고요."
나라를 지킨 이들을 영상으로라도 예우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댓글마다 이어집니다.
인터뷰: 정성훈 / AI 영상제작자
"처음에는 이제 저희 같은 경우에도 AI 복원, 말 그대로 이제 기술을 보여주는 데 좀 집중을 했었더라면 영상을 복원하면서 저희 자체적으로도 조금 독립투사분들에 대한 조명과 의의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고요."
신혼여행과 휴양의 섬 하와이.
리조트가 늘어선 해변을 벗어나 한참 수풀을 헤치고 들어서면, 오래된 묘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백 년 전, 직접 싸울 수 없어 모금과 연대로 항일을 이어간 하와이 동포들의 자리.
그 발자취와 유산을 되찾고 있는 작업입니다.
인터뷰: 김주용 학예실장 /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 (0911)
"왜 묘비에 주목하는가를 말하면 삶의 마지막 기록이었고 이분들의 삶을 역추적해 보니까 이분들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분들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분들이다, 이걸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록이 바로 이 묘비다."
국립창원대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발로 뛰어 1천6백기가 넘는 무덤을 찾아 기록했습니다.
그중 독립운동 행적이 뚜렷한 65명은 올해 정부 서훈을 신청했고, 미주 독립운동 조직의 중심에 섰던 여성 12명의 이름도 함께했습니다.
인터뷰: 김주용 학예실장 /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 (0911)
"김치를 만들어서 독립자금을 댄다든가 영남부인회를 조직한다든가 부인구제회를 만든다든가 나중에는 상조회를 만든다든가. 이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총과 펜으로, 교단과 감옥에서,
조국의 독립과 여성의 해방을 외쳤던 수많은 이름들.
백 년의 세월을 건너, 그들을 기억하고 역사의 빈칸을 채우려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그 이름은 비로소 온전한 역사가 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다시금 마주하는 역사의 빈칸.
그 속에 새겨질 여성들의 이름은,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미래의 시작입니다.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