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빼고 모두 우리 편’…미 연방대법원 관세 재판에 쏠린 눈

이본영 기자 2025. 10. 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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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난폭한 ‘관세 전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것은 연방대법원뿐일까?

올해 1월에 취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련 사건 심리가 한 가닥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3500억달러(약 48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약속과 관련해 큰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연방대법원의 동향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세계가 주시하는 사건

연방대법원은 와인 수입 업체와 완구 업체 등이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은 위법이고 위헌이라며 낸 소송의 공개변론을 11월5일(현지시각)에 진행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8월에 항소심 결과가 나온 이 사건은 일반적 절차대로라면 내년 6월께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연방대법원은 신속 심리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연방대법원은 공개변론 뒤 이른 시일 안에 판결을 내놓는다. 연방대법원이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조속한 결론 도출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송 대상이 된 관세는 트럼프가 각국별로 대미 수출품 일반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마약성 물질인 펜타닐 단속 비협조를 이유로 중국·멕시코·캐나다에 부과하는 ‘펜타닐 관세’다. 미국이 부과한 한국 상품 상호관세율은 현재 15%다. 트럼프는 애초 한국에 25%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지난 7월 말 대미 투자 펀드 조성 등을 내용으로 한 한·미 협상 결과에 따라 15%로 조정했다.

이 사건 원고들은 무명의 업체들이지만 미국의 전체 수입업자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많은 무역 상대국들이 원고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승소한다면 수입업자들은 상호관세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동안 납부한 관세를 돌려받을 길이 열린다. 트럼프 행정부가 엉터리 계산법으로 산출한 일방적 상호관세의 압박에 시달리고, 이를 깎으려면 뭔가를 내놓으라는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과 합의를 한 국가들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징벌적 관세 조처들의 주요 축인 상호관세가 무효화된다면 앞으로 협상이나 합의 이행과 관련해 미국에 대해 입지가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액의 대미 투자 펀드를 약속하며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소송의 최종 결과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쟁점과 하급심 판단은?

이 사건 쟁점은 간단하다.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미국 대통령이 마구잡이로 상호관세를 부과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법은 미국의 안보, 외교 정책, 경제에 “이례적이고 비상한 위협”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위협과 관련된 외환 거래 등 금융 활동을 금지하거나 외국인의 미국 내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는 이 법을 근거로 대면서 만성적 무역 적자를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방위적인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관세를 부과하거나 올리는 근거를 제공하는 다른 법률들도 있지만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은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한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일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백악관

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도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은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 수단에 관세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간단한 이유로 원고들 손을 들어줬다.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은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수단들을 열거해놨는데, 만성적 무역 적자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 법을 근거로 삼은 것은 위법하고 위헌적이라는 것이다. 위헌 논란은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 분립과도 연결된 문제다. 항소심은 “미국 헌법은 관세와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의회의 핵심 권한을 오로지 입법부에만 부여하고 있다”는 판단을 강조했다. 이 판결에 트럼프는 “관세가 사라지면 이 나라에는 완전한 재앙이 될 것”이라며, 판사들이 민주당 편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패소가 확정되면 트럼프의 말처럼 미국에 완전한 재앙이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자신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집권 이래 가장 집중적으로 매달려온 ‘트럼프표 정책’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관세로 국고를 불렸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패소가 확정되면 그동안 거둔 관세를 돌려줘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도 벌어진다. 이 경우 원고로 참여한 이들한테만 환급해주면 되는지, 상호관세를 낸 수입업자들 모두에게 돌려줘야 하는지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까지 상호관세는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는다면 전면적인 환급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패소하면 관세의 반가량을 환급해줘야 하며, 그것은 재무부에 끔찍한 일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선트는 내년 중반까지 소송의 결론을 미루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도 조속한 심리 진행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 집계로 2025 회계연도에 8월24일까지 징수한 관세는 약 4750억달러(약 666조원)로, 트럼프 행정부는 소송에서 지면 이 중 2100억달러를 돌려줘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소송 대상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에 대한 영향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근거해 매기는 품목 관세는 들어 있지 않다. 자동차와 철강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가 대표적인 품목 관세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만약 소송에서 진다면 품목 관세를 확대하는 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품목 관세는 안보 영향 조사를 진행한 뒤 매겨야 한다. 그만큼 절차를 밟아야 하고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호관세처럼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연방대법원은 어쨌든 트럼프 편?

트럼프가 가장 크게 믿는 구석은 연방대법원 그 자체다.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 성향이다. 이례적으로 한쪽으로 크게 기운 구조다. 이들 중 3명은 트럼프가 1기 집권 때 지명했다. 보수적 판결을 쏟아내는 연방대법원은 논란이 많은 트럼프의 정책과 관련해서도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상호관세 사건은 법률적 측면뿐 아니라 상식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트럼프가 완승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의 입법 취지,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적용을 금한다는 조문 내용, 대통령의 정책 수단으로 관세를 명시하지 않은 점, 의회에 과세권을 부여한 헌법 내용 등이 그 근거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를 편들어주고 싶어도 논리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이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판결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도 트럼프를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에서 누가 웃을지는 1차적으로 11월5일 공개변론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원의 공개변론은 사건의 결론에 관해 유력한 힌트를 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연방대법관들은 당사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데, 이를 종합하면 다수 의견이 어디로 향할지 짐작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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