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가 걸어온 80년史… 진실이란 사명 위에 서다

임열수 2025. 10. 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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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인천 첫 신문 ‘대중일보’로 시작
경기도청 수원 이전 제호 바꿔 ‘역사 흐름’


경인일보는 해방 직후 인천지역 첫 신문인 ‘대중일보’(大衆日報)로 태어나 수도권 언론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중일보는 1945년 10월 7일 창간사에서 “오직 불편 부당의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을 만천하 독자에게 공약한다”고 밝혔다.
1972년 12월 연합신문 본사. /경인일보DB


대중일보는 이후 인천신보(1950년 9월), 기호일보(1957년 7월), 경기매일신문(1960년 7월)으로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신문을 발행했다. 경기매일신문은 1960년대 인천신문(1960년 창간), 경기일보(1966년 창간) 등과 3강 체제를 유지했다.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 창간행사. /경인일보DB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 창간행사. /경인일보DB


1960년대 후반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하자 인천·경기지역 언론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경기연합일보로 제호를 바꾼 인천신문은 1969년 수원 교동으로 본사를 옮기고 제호를 연합신문으로 바꿨다.

1972년 8월 연합신문 신축사옥 기공식. /경인일보DB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3강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은 통합돼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으로 출발한다. 경기신문은 1982년 3월 경인일보로 제호를 바꿨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나온 조치였다.

경기신문사옥. /경인일보DB


신군부의 ‘1도1사’ 언론정책은 1987년 언론기본법 폐기로 끝이 난다.

1983년 경인일보사옥. /경인일보DB


언론 자유화 이후 경기일보, 인천신문, 기호신문 등이 창간됐다.

1989년 경인일보 신사옥 준공 당시 모습. /경인일보DB


한국신문 100년 연표에는 인천에서 창간된 대중일보에서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 경기신문으로 이어지는 경인일보의 80년 역사적 흐름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신사옥. /경인일보DB



/임열수 기자 pplys@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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