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피라미드’ 꼭대기 향하는 혐중…“참극 막을 장치 절실하다”

임재우 기자 2025. 10. 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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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혐오 표현과 함께 벌어진 사건들
지난 9일 보수단체 ‘자유대학’ 등이 주최한 반중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자유대학 유튜브 갈무리

“너거는 중국인이가. 나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너희들 어미가 있냐? 가만히 두지 않겠다.”

지난 3월18일 밤 11시5분, ‘노래방 손님이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대구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집에 들어가시라’는 경찰 권유에 ㄱ씨가 다짜고짜 ‘중국인이냐’며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행패는 ‘입’에서 멈추지 않았다. ㄱ씨는 경찰이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를 움켜잡아 벗긴 뒤 얼굴을 밀어냈고, 말리는 또다른 경찰을 향해서는 침을 수차례 뱉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결국 제압당한 ㄱ씨는 지난 5월 대구지법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겨레가 법률 데이터 기업 ‘엘박스’를 통해 최근 1년 동안의 판결문을 검색한 결과, ‘혐중 정서’ 관련 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된 사례는 모두 4건이었다. ‘혐오 표현’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혐중 표현’ 발화자가 저지른 폭행·상해·공무집행방해 등만 추린 결과다. 사건 발생 시점은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를 인용한 올 4월4일 사이였다. 사건 내용을 보면, 윤 전 대통령이 계엄 뒤 중국의 선거개입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창하면서 불붙인 ‘혐중 정서’가 영향을 줬을 개연성이 크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지난해 12월19일 새벽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 얼굴을 때린 ㄴ씨의 첫마디도 “너 중국인이냐”였다. 만취한 ㄴ씨는 일면식도 없는 아파트 주민의 눈 주위에 타박상을 입혔고, 서울 용산경찰서에 붙잡힌 뒤에도 수갑을 잠시 풀어준 경찰의 얼굴을 때리는 행패를 부렸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6월 ㄴ씨에게 “피해자를 이유 없이 때려 상해를 입혔고,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을 반복적으로 폭행했다”며 7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지난 3월2일에는 인천 계양구의 한 편의점 직원인 20대 여성이 봉변을 당했다. 손님으로 온 ㄷ씨 또한 “중국인”으로 운을 뗀 뒤, “너는 좌파야”, “빨갱이”, “국회에 수류탄을 던지겠다”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ㄷ씨는 편의점을 찾은 다른 손님들에게도 자신의 말을 옹호하라고 요구하며 1시간가량 소란을 피웠다. ㄷ씨는 다음날 한 음식점에서도 술에 취한 상태로 “지금 공산화되어 있는 이 나라에 내가 애국시민”이라며 다른 손님들을 “개딸”이라고 부르는 등 30분간 난동을 부렸다. 인천지법은 지난 5월 ㄷ씨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렇듯 쌓인 ‘혐중 정서’라는 전조 현상은 실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Hate Crime)’로까지 이어졌다. 35살 남성 곽아무개씨는 지난 4월1일 한국에 여행 온 20대 중국인 여성 2명의 허리를 걷어찼다. 버스 안에서 중국어로 대화했다는 이유로 화가 나 정류장부터 70m를 쫓아와 난데없이 폭행한 것이다. 곽씨는 닷새 뒤에도 대만인 30대 남성을 중국인으로 오인해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서울서부지법 형사 7단독 마성영 판사는 지난 8월 판결 당시 “피고인이 평소 중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가 실제로 야간에 중국인을 노리고 범한 혐오범죄로 보이는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이 사건이 ‘혐오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적시했다. 마 판사는 곽씨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혐중정서가 ‘혐오의 피라미드’ 형태로 증폭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혐오의 피라미드’ 이론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분류→혐오 표현→차별 행위→혐오 범죄’를 거쳐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현재 한국의 혐중 정서는 차별 행위가 혐오 범죄로 이어지는 위험한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혐중 정서가 계엄을 거쳐 한국사회에서 주류화되면서 ‘혐오의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향하는 중”이라며 “법률에 근거가 없어 처벌되지 않을 뿐 혐오 표현에 상처받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은 상황이다. 더는 참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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