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한 북극곰…40만 년간 얼음에 적응했더니…

한겨레 2025. 10.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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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
약점이 되어버린 북극곰의 극한 적응
북극곰 새끼가 먹는 모유에는 지방이 27% 함유돼 있다. 위키커먼스

만약 당신이 영하 40도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얼음 위에 맨발로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 5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북극곰은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 바다 얼음 위를 유유히 거닌다. 심지어 일 년 내내 극지방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북극곰 서식지 범위가 북극권(Arctic circle)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극곰은 북극의 추위를 어떻게 버티는 걸까?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이 질문은 그리 세련되지는 않아 보인다. 해양생물학자 실비아 얼(Sylvia Earle)은 북극곰의 생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북극은 극도로 척박한 곳이지만, 그곳의 환경은 북극곰이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우리에게 ‘혹독한’ 환경은 그들에게는 ‘집’과 같다.”

북극곰은 약 40만 년 전 불곰과 갈라져 독자적인 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는 지난 50만 년 동안 가장 길었던 간빙기로, 무려 5만년간 따뜻한 기후가 이어지면서 그린란드 빙상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린란드 남부 지역은 오늘날 상상하기 힘든 침엽수 숲이 우거졌다. 그 틈을 타고 북극곰의 조상은 이전까지는 살 수 없었던 북위 지역까지 진출했고, 이후 시간이 지나 기후가 추워지는 동안 북극에 남아 홀로 얼음 환경에 적응한 거대 육상 포유류가 됐다.

고위도 북극의 극한 환경에 살아남으려면 에너지 수요가 높기 때문에 지방이 풍부한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북극곰 새끼는 27%의 지방을 함유한 모유를 먹고 자라며, 성체는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얼음 구멍에서 물범을 사냥하고 지방층(blubber)을 섭취한다.

영양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체중의 약 50%를 지방으로 채울 수 있어서 에너지 저장과 보온에 용이하다. 사람에게라면 치명적일 정도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평생 유지하지만 심혈관계 구조와 기능이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유전적 변이가 축적됐고, 덕분에 혈관 질환 걱정 없이 평생 지방이 풍부한 물범 식단을 유지하는 포식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수영하는 북극곰. 물에 젖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위키커먼스

북극곰의 흰색 털은 먹이로부터 위장하기에도 좋지만, 길고 뛰어난 단열 효과를 갖추고 있어서 추위를 버티기에 알맞다. 물론 낮은 기온이 지속되면 몸을 둥글게 말아 일시적으로 체표면적을 줄이거나 눈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체온을 유지한다. 특히 새끼는 600~800g의 매우 적은 체중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체지방이 적고 단열에 취약해 출산 후 3개월 정도는 어미가 함께 지내며 굴 안에서 보호한다.

북극곰은 극한의 북극 기후와 환경에 최적화된 포식자다. 바다 얼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인 물범 사냥에 특화돼 고지방 대사에 알맞게 적응해 왔다. 하지만 최근 그들이 살아온 무대가 급속히 바뀌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바다 얼음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이로 인해 얼음 구멍을 찾아 사냥하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먹이를 찾아 장거리 수영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건조한 조건에선 단열이 잘 되던 긴 털은 물에 젖고 나면 공기층이 형성되지 않아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어미의 등에 올라타 수영을 하는 새끼들은 저체온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다. 게다가 사냥이 어려운 여름엔 최대 6개월까지 단식에 내몰려 생존을 위협받는다.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육지에서 조류의 알을 사냥하거나 순록을 잡아먹는 광경도 종종 목격되고 있지만, 고지방 식단에 길들여진 북극곰들에겐 턱없이 모자라다. 북극곰과 가까운 불곰은 잡식성이라서 열매나 곤충을 먹으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북극곰은 극지 물범잡이에 완전히 특화된 사냥꾼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바다 얼음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그들에게 ‘집’과 같은 곳이다. 따라서 얼음이 사라지면 먹이를 잡고 새끼를 기르는 기본적인 생존과 번식이 어려워진다. 즉,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북극곰의 극지 적응은 이제 생존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진화의 결과 얼음은 북극곰에게 집 같은 곳이 되었다. 이원영 제공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겨울 바다 얼음의 면적은 1433만㎢로, 47년간 위성으로 관측한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북극곰의 위기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북극곰의 사례는 극한 환경에 특화된 적응이 기후 변화에 따라 위협으로 다가오는 진화의 역설을 보여 준다. 완벽한 적응은 완벽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인간의 생존 환경은 환경 변화에 얼마나 유연한가? 우리가 완벽히 적응해 버린 현대 문명 체제 속에서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 버텨낼 수 있을까?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https://www.hani.co.kr/arti/SERIES/3304?h=s)에서 만나보세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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