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깨우지 말아 줘"…연휴에 밀린 잠 실컷 자도 괜찮을까

김표향 2025. 10. 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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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면 시간, OECD 평균보다 18% 적어
'수면 부채' 쌓이면 회복 수면 메커니즘 작동
'몰아자기' 효과 있지만, 생체시계 살펴야
생체리듬 깨지면 일상 복귀 후 적응 어려워
숙면. 게티이미지뱅크

무려 열흘에 이르는 이번 추석 연휴는 모처럼 푹 쉬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출근을 재촉하는 짜증스러운 알람소리에서 해방돼 실컷 늦잠도 자고, 배부르게 먹은 뒤 달콤한 낮잠도 즐기며 그간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해가 중천에 뜬 뒤에 일어나도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지 않는, 그리고 스스로도 잠으로 시간 낭비했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무제한 수면권’이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죠.

우리 사회는 잠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잠이 많으면 게으르다고 여깁니다. “잠은 죽어서 자라”,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 부지런함을 배우라”는 말도 있고요.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죠. 지난해 한국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이 416잔(글로벌 데이터 분석기업 유로모니터)으로 세계 평균 150잔보다 2배 이상 많다는 통계를 보면, 한국인이 잠을 쫓느라 얼마나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불면증.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한국인은 잠이 모자랍니다. 대한수면연구학회가 올해 초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8% 적습니다. 수면의 질과 양에 만족하는 비율은 세계 평균의 75% 수준이고, 매일 숙면을 취하는 비율도 세계 평균(13%)의 절반인 7%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 60%는 수면 문제를 경험했다고 답했고요.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는 ‘심리적 스트레스’(62.5%)가 1위였습니다. ‘신체적 피로’(49.8%), ‘불완전한 신진대사’(29.7%), ‘층간 혹은 외부 소음’(19.4%), ‘신체적 통증’(19.2%) 같은 물리적 요인을 크게 압도했죠.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개인적인 불안’(35%), ‘불면증’(32%), ‘호흡곤란’(15%) 등이 꼽혔습니다. 학회는 “수면 건강이 단순히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정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진단합니다.

7시간 미만의 수면은 감기 발병 위험을 3배, 6시간 이하의 수면은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각각 48%, 15%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근력·지구력·반응시간 감소, 기억력·주의력 저하, 기분 장애, 비만, 당뇨병 등 여러 건강 문제를 초래하고요. 노동 생산성 감소와 의료 비용 상승으로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합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9월 28일 유한킴벌리가 경기 남양주시 광릉숲에서 개최한 '숲속 꿀잠대회'. 유한킴벌리 제공

잠을 아끼거나 미뤄 두면 빚처럼 쌓입니다. 몸에 필요한 수면 시간보다 적게 자거나 수면이 방해받아 수면 부족이 누적되는 상태를 ‘수면 부채(sleep debt)’라고 합니다. 8시간 자야 하는데 4시간밖에 못 잤다면 4시간만큼 부채가 발생하는 겁니다. 빚은 반드시 상환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 잘 시간이 생기면 더 오래, 더 깊이 잠을 자게 됩니다. 쉬는 날에 잠을 몰아서 자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실제로 몰아서 자기는 어느 정도 밀린 잠을 채우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고요.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코 아니겠지만요.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하루에 7시간 자야 하는 사람이 평소 5시간밖에 안 잔다면, 낮에 졸아서 보충하든 주말에 늦잠을 자든, 우리 몸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잠꾸러기들이 주장하는 ‘수면 총량의 법칙’이 그저 우스갯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짜 과학적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연구진은 장시간 각성 상태가 회복적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 매커니즘을 규명한 논문을 올해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주중에 쌓인 수면 부채가 10시간이라고 해서 휴일에 그 10시간을 꼭 채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잠은 모자라도 문제지만 지나쳐도 문제가 됩니다. 이유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잠이 들고 깨는 과정은 두 가지 원리를 통해 조정됩니다. 한 가지는 항상성인데요, 각성 상태가 길수록 잠잘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다른 한 가지는 생체시계로, 일정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휴일에 몰아서 자는 건 항상성 측면에서는 잠을 보충하는 일이겠지만, 생체시계 관점에서는 리듬이 깨지는 일이에요. 추석 연휴에 불규칙한 생활을 오래 하면 다시 출근했을 때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개 낮잠을 2시간 이상 자면 생체리듬이 깨진다고 합니다. 주말에 푹 쉬었는데도 월요일에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월요병’이 생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조금 싱거운 결론이겠지만, “휴일에 너무 많이 몰아서 자는 것보다 평일에 수면 시간을 늘리거나 충분히 자는 것이 훨씬 좋다”는 얘깁니다.

하루에 필요한 수면 시간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입니다. 5시간만 자도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고, 10시간을 자도 연신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죠. 양적으로도 충분하고 질적으로도 만족해야 ‘좋은 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휴가 끝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자신의 수면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보면 어떨까요. 지루한 강의시간을 버티지 못한다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쉽게 잠이 든다거나, 아침에 알람 없이는 도무지 일어나지 못한다면 수면 부족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숙면을 방해하는 코골이, 무호흡, 하지 불안 증후군, 잠꼬대 같은 증상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수면 부족이나 수면 장애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해 치료받는 게 좋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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