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 고문·반기문…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조문 행렬

기성훈 기자 2025. 10. 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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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세계 1위로 키워낸 '비철금속 업계 거목' 고 최창걸 명예회장의 장례 첫날인 7일 각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세계 1위 반열에 올리고, 한국의 제련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비철금속 업계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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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빈소 모습./사진제공=고려아연

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세계 1위로 키워낸 '비철금속 업계 거목' 고 최창걸 명예회장의 장례 첫날인 7일 각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임종은 유중근 여사(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아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이 지켰다. 장례는 이날부터 나흘간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맡았으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예정이다.

이날 오전 9시 30분 반기문 전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이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오전 11시 52분에는 장형진 영풍 고문이 방문했다. 장 고문은 약 10분간 조문한 뒤 병원을 나섰다. 장 고문은 약 10분간 조문한 뒤 병원을 나섰다. 장 고문과 최 명예회장은 과거 동업시절 함께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은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 등의 근조화환도 놓여있다.

고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가운데)이 제련소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사진제공=고려아연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창업주인 최기호 선대 회장의 차남으로 1941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고 1973년 귀국했다. 그는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뒤 30여 년 만에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고려아연을 키워냈다.

그는 생전에 경영 철학으로 화려한 혁신보다 꾸준함과 성실함을 강조했다.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세계 1위 반열에 올리고, 한국의 제련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비철금속 업계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자원 빈국이자 아연제련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세계 제련소들을 제치고 고려아연을 세계적인 종합 비철회사로 성장시켰다.

고려아연 고위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전세계 제련소를 대표해 세계최대 광산업체와 벤치마크 제련수수료(TC)를 협상하는 업체로 우뚝 서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인재와 노사 화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장학사업과 해외연수를 장려했고,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 기록을 남겼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도 단 한 차례의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아 국내 재계의 귀감을 사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최 씨 가문이나 특정 누구의 회사가 아닌 임직원 모두의 회사라고 생각했다"며 "늘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없는지 물으셨고, 다른 회사의 좋은 제도가 있으면 먼저 도입하자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금융위기 등 국가와 기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임직원들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는 밑바탕이 됐다"고 기억했다.

사회공헌에도 앞장섰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단체 기부를 이어왔고,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 운동'과 자원봉사회를 직접 독려했다. 이런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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