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 ②저경궁과 대빈궁, 궁원제의 명암

강소하 2025. 10. 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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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매우 독특하면서도 의미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이다. 영조·정조·순조를 거쳐 대한제국까지, 후궁의 왕실 제사의 위상 변화를 재조명하는 최초의 전시여서 더욱 그렇다.

이번 기획전은 말그대로, 왕을 낳았으나 왕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을 조명한다. 특히, 이들을 모신 사당을 '칠궁(七宮)'이라 하는데, 조선의 유교적 제례 질서 속에서 종묘에 들지 못한 후궁들을 위해 별도로 조성된 공간이다.

'칠궁'은 ▶인빈 김씨의 저경궁(원종) ▶희빈 장씨의 대빈궁(경종) ▶숙빈 최씨의 육상궁(영조) ▶정빈 이씨의 연호궁(진종) ▶영빈 이씨의 선희궁(장조) ▶유빈 박씨의 경우궁(순조) ▶황귀비 엄씨의 덕안궁(영친황)을 통칭한다. 원래는 각각 흩어져 있던 사당을 1908년 육상궁 경내로 통합하고, 1929년 덕안궁까지 옮기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일제강점기 무리한 합사와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축소된 칠궁을 넘어, 그 안에 깃든 후궁들의 삶과 역사적 층위를 복원하고자 했다"는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의 설명 만큼이나 특별한 이 전시의 면면을 도록을 중심으로 세심히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는 총 5부로 구성된 전시의 흐름을 따른다. [편집자주]

②인빈 김씨&희빈 장씨, 동일한 위상 불구... 영조의 상반된 입장으로 명암 대비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어머니인 인빈 김씨(1555-1613) 사당인 저경궁 현판.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영조의 궁원제 선포는 원종의 사친(私親)인 인빈 김씨와 경종의 사친인 희빈 장씨의 의례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친 후궁이라는 동일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에 대한 영조의 상반된 입장은 궁원제의 명암으로 대비된다.

인빈은 인조반정 이후 즉위한 모든 왕들의 혈연적 조상으로 그녀에게 궁원제를 적용하는 것은, 사친 후궁의 궁원제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토대가 됐다. 반면, 희빈은 인현왕후를 시해한 혐의로 사사되면서 작호를 박탈당한 뒤 '장씨'로 불렸고, 끝내 궁원제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경종이 즉위한 후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이란 칭호를 정하고 사당인 대빈묘를 새로 건립하는 사친 추보(追報)가 진행됐지만, 영조가 왕위에 오른 뒤 희빈을 쫓겨난 어머니인 출모(出母)로 규정, 대빈 추숭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궁원제의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 국가 사전(祀典) 내 의례적 위상 확보 못한 돌출적 존재, '대빈궁'

1641년(인조 19)부터 1736년(영조 12)까지 예조에서 정리·편찬한『광해상등록((光海喪謄錄)』은 다양한 왕실 구성원들에 대한 의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로 인해 대빈궁은 궁원제에 따른 '궁호'가 아니라, '대빈'이라는 칭호에 존귀함을 표시하는 '궁'을 덧붙인 명칭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빈궁은 국가 사전(祀典) 내에서 의례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채 돌출적인 존재로 남게 됐다.

『광해상등록((光海喪謄錄)』은 1641년(인조 19)부터 1736년(영조 12)까지 예조에서 정리·편찬한 등록이다. 하지만, 광해군의 상례에 관한 기사는 일부이고 폐위된 연산군과 노산군, 왕의 생부인 대원군, 왕의 장인인 부원군 등의 제사와 묘소 관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후궁인 인빈 김씨, 희빈 장씨, 숙빈 최씨 등의 의례도 수록돼 있는데, 궁원제 이전 형식에 해당한다. 특히, 인빈의 제사 물품, 사당의 이건, 신주 이안(移安) 의례 등이 기록돼 있어 사친 의례의 전례(前例)로서 중요한 검토 대상이 됐다.

◇ 육상궁에서 시책과 시인을 올리는 최초의 상시책인의 거행하다

1755년 6월 22일 인빈 김씨에게 '경혜'를 시호로 올리기 위해 제작된 시책.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1755년(영조 31) 6월 2일 영조는 인빈의 시호를 '경혜(敬惠)'로 정하고, 궁원제에 따라 사당과 묘소를 저경궁·순강원 순으로 승격시켰다.

또, 육상궁의 의례와 같이 상시봉원도감(上諡封園都監)을 설치하고, 22일에 시책과 시인을 올리는 상시책인의(上諡冊印儀)를 거행했는데, 이때 사용된 것이 '경혜인빈 김씨 시책'이다. '상시책인의'는 왕의 사친에게 시호의 의미를 기술한 시책(諡冊)과 시호(諡號)를 새긴 시인(諡印)을 올리는 의례다.

시호는 제왕·경상(卿相)·유현(儒賢)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칭송해 임금이 추증(追贈)하던 이름으로, 영조는 1753년 숙빈을 위해 '화경(和敬)'을 시호로 정했고, 육상궁에서 시책과 시인을 올리는 최초의 상시책인의를 거행했다.

이 시책은 옻칠한 6개의 죽간으로 1첩(帖)을 만들고, 총 10첩을 둥근 고리로 엮은 죽책(竹冊)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글자는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金泥)를 채워 장식했다.

◇ 책·인을 받을 수 없는 신분, 시호 대상도 아니었지만... '상시책인의'의 역설

영조가 창안한 상시책인의는 궁원제의 성립과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의례로서 강조됐지만, 후궁은 책·인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영조가 창안한 '상시책인의'는 궁원제의 성립과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의례로서 강조됐다. 그러나 후궁은 책·인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며, 왕이 시호를 올리는 대상도 아니었다. 국가례에서 '보(寶)'와 '인(印)'은 용어 자체로 왕·왕비와 세자·세자빈의 신분을 특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빈을 위해 세자빈의 옥인보다 격이 낮은 은인(銀印)을 시인으로 정한 영조는 "내가 사친을 위하여 감히 옥인(玉印)을 바랄 수는 없더라도 어찌 은인을 만들 수 없겠는가?"라고 주장했고, 이 과정에서 죽책문 작성을 거부한 대제학 조관빈을 유배형에 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영조는 후궁의 의례적 차등을 인정하면서도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는 '상(上)'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효의 논리'를 내세웠다. 따라서 어머니를 위한 '상'자와 신분적 제약에 따른 '인'자가 충돌하는 '상시책인의'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1659-1701)의 사당 '대빈궁' 감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는 예법과 인정에 모두 합당한 사친 의례를 정비하겠다는 영조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대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희빈을 왕비로 책봉함으로써 세자의 적자(嫡子) 지위를 확립하고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하면서, 왕비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됐다.

이때 숙종이 '후궁을 중전으로 책봉할 수 없다'는 규정을 선포, 희빈은 조선시대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마지막 후궁으로 남게 됐다.

◇ 세자의 생모지만 죄인으로 사망... 조선시대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마지막 후궁

희빈 장씨의 상장, 천장, 추보 의례와 관련된 문서를 예조에서 날짜순으로 정리한 '장희빈 상장등록'.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희빈 장씨의 상장(喪葬), 천장(遷葬), 추보(追報) 의례와 관련된 문서를 예조에서 날짜순으로 정리한 '장희빈상장등록'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희빈의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로부터 자진 후 상례 진행 과정 ▶양주 인장리 묘소를 광주 진해촌으로 천장하는 절차 ▶'옥산부대빈장씨'라는 칭호로 신주를 다시 쓰고, 경종이 친림해 전배례(展拜禮)를 행하는 것으로 추보 절차 마무리 등이다.

세자의 생모지만 죄인으로 사망한 희빈의 위상은 그녀의 사후 상례와 추보 의례에서 중요한 변수가 됐다. '희빈'이라는 작호 대신 '장씨'라는 호칭이 사용됐고, 세자의 의례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다만, 묘소는 세자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 국가 차원에서 천장을 진행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1791년(정조 15) 대빈의 제사는 저경궁보다 낮추는 수준으로 정비됐고, 백폐(白幣)와 울창주(鬱鬯酒)가 없는 방식으로 차등화됐다. 이는 내시가 거행하는 대빈의 제사에는 헌관이 담당하는 제사와 같이 폐백과 울창주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이번 기획전은 2026년 6월 26일(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5인 이상 단체관람의 경우 사전 신청을 통해 전시 안내를 진행한다. 문의 031-730-8820

강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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