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모두 모였어요” 진골 농구인 가족의 추석 나기

조원규 2025. 10. 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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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성리학’의 창시자 강을준 전 감독은 진골 농구인 가족이다. 강 전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 코치를 거쳐 창원 LG, 고양 소노의 감독을 지냈다. 부인 이유진 씨 역시 국가대표 출신이다. 장남 강지훈과 차남 강영빈은 연세대와 명지대에서 국가대표의 꿈을 꾸고 있다.

농구인 가족의 가장 큰 고충은 다 같이 모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은 더 소중했다. 가족은 4일부터 6일까지 함께 있었다. 강지훈은 “이렇게 함께 모인 것은 고3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 함께 모인 것은 고3 이후 처음

이번 추석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장남 강지훈이 KBL 신인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강 전 감독에 의하면 “중요한 결정이 있으면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 갔다.” 올해 3년 만에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강지훈은 연세대 체육교육과 3학년이다. 1년만 더 다니면 중등 교사 자격을 취득한다. 조기 프로 진출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연세대도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프로는 또 다를 것 같다. 1년이라도 빨리 도전해서 좋은 형들과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 도전의 이유다. 1년 유급을 해서 4학년 나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강지훈이 밝힌 신장은 맨발 203센티. 높이와 스피드, 세로 수비, 리바운드, 속공 가담 능력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가로 수비가 처음에는 부족하겠지만 빨리 따라가겠다”라며 “팀마다 감독님의 수비 철학, 스타일이 다르니 그것에 빨리 맞추겠다”라는 성숙함도 드러냈다.

강지훈의 당면한 목표는 KBL 입성이다. 장기적으로는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 매년 성장하는 선수. 잘해서 은퇴 후 영구결번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다짐했다.

강영빈도 “저희 형 프로 잘 가게 해달라” 빌었다고 했다. 강영빈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제2의 모교라 표현하는 명지대다. 강을준 감독은 10년 가까이 명지대를 지도하며 팀의 첫 전국대회 우승, 전국대회 2연패의 역사를 만들었다.

▲ 저희 형 프로 잘 가게 해달라고

강영빈은 대학리그 건국대와 첫 경기부터 코트를 밟았다. 출전 시간은 짧았지만, 재학생들의 응원에 많이 떨었다고 했다. 차츰 적응했고 이번 시즌 명지대가 치른 19경기 중 16경기에 출전하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상된 결과다. 지난 동계 훈련, 강영빈의 몸에서 많은 훈련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팀에 부상자가 많아 기회를 받았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수준 차가 많이 나고, 올해는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강영빈은 “가장 큰 과제는 웨이트다. 스피드와 탄력은 형보다 좋다(웃음)”며 다음 시즌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을 약속했다.

“공격보다 수비, 리바운드가 먼저다. 스크린을 정확하게 걸고 기회가 오면 꼬박꼬박 넣는 것이 다음 시즌 목표”라고 말하는 대학 루키는 고학년이 되면 “다른 대학에서 강영빈 이름을 들으면 ‘아 어떻게 막지?’ 이런 말을 듣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머니 이유진 씨는 옆에서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팀의 대학리그 마지막 경기 후 김태진 명지대 감독이 “새벽 운동에 안 빠지는 선수가 강영빈”이라며 개인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학부모들 앞에서 칭찬했다는 것이다.

이유진 씨에게 농구는 즐거웠던 기억이다. 실업 입단 첫해에 센터에서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아줄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는 감독의 말을 믿고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당시에는 더 힘들게 운동했다. “혼나기 전에 똑바로 하면 되지, 안 되면 잠 안 자고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운동했고 아들들이 농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같은 생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이 씨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새벽에 두 아들의 슛을 잡아 줬다.

▲ 안 되면 잠 안 자고 열심히 하면 되지

그랬던 이 씨지만 강영빈은 안쓰럽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기본기를 다져야 할 중요한 시기에 코비드19로 인해 운동을 못했다. 강영빈의 학교는 체육관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하는 아들이 대견하면서 안쓰럽다.


▲ 이유진 씨의 국가대표 시절. 1993년에 찍은 대표팀 단체 사진이다.


아버지 강을준 감독은 냉정하다. 둘 다 부족하다고 했다. 운동 능력과 슈팅이 좋은데 너무 온순하다고 꼬집었다. 더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성격은 아빠의 반만 닮았어도 좋겠다는 말에 이유진 씨는 “엄마도 독한 년 소리를 들었다”며 웃었다.

강 감독은 현행 입시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기본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팀 성적을 만들기 위한 훈련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입시 제도는 팀이 전국대회 8강, 최소한 16강에 들어야 원서를 넣을 수 있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현실이 아버지 이전에 농구인으로서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로서의 바람도 이어졌다. 강지훈에 대해 “언론에서 로터리픽 얘기도 나오던데, 로터리픽이 개인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후 순위라도 잘 성장할 수 있는 팀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은 아들은 “감독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본인이 깨우쳐야 한다”고 했다.



강지훈은 “아빠처럼 수비하고 엄마처럼 슛 쏘면 성공한다”고 얘기했던 농구 원로의 말을 소환했다. 빅맨으로는 작은 신장으로 포스트를 지키던, “독한 년” 소리를 들으며 훈련에 매진했던 부모님의 DNA를 본인의 것으로 소화하라는 의미다.

▲ 아빠처럼 수비하고 엄마처럼 슛 쏘면

이유진 씨의 바람은 조금 달랐다. “선수를 평생 할 것은 아니니까 예의 바르고 생활에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강)지훈이가 1학년 시즌을 마치고 외할아버지와 한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약속은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조금 잘한다고 우쭐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 등의 바람이 이어졌다. 농구보다 인성을 강조했다.

“좋죠. 너무 좋죠. 고등학교 이후로 4명이 다 모인 경우가 없어서…. 잘 먹어서 좋았고요, 친척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강지훈의 말이다. 아버지의 핀잔도 어머니의 당부도 아들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지는 못했다.

 

강지훈은 플레이오프 준비를 위해 7일 연세대에 합류한다. 그리고 가족은 11월 3일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치러지는 연세대에서 다시 모이길 기대한다. 결승전이 치러지는 12일까지 계속 모일 수 있기를 바란다.


▲ 강지훈과 안우진

<보너스 원 샷>
강지훈은 야구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 테스트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한 선수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포기했다. 당시 고교 최고 투수였던 안우진(키움)이다. 클럽 유망주와 엘리트 최고 투수 차이는 크다. 이후 학교 반 대항 농구대회에 참가하면서 농구에 재미를 붙였다. 농구선수의 꿈이 영글어졌다. 그것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귀가를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 1년 유급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으로 허락을 받았다.
#사진_점프볼DB, 강을준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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