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하다] 생홍어의 고향…인천 대청도 홍어 이야기
삭히지 않아 더 신선한, 대청도 생홍어의 맛
바람에 말려 풍미 깊어…대표 명물, 말린 홍어

대부분 '홍어' 하면 대부분 전라남도 흑산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홍어가 잡히는 곳은 인천 대청도다. 이 섬에서 잡힌 홍어는 전국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약 90%가 목포로 보내지고 나머지는 인천으로 향한다.
하지만 대청도 주민들은 홍어를 삭히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 섬에서는 삭힌 홍어를 파는 식당도 없다. 보통 홍어는 회로 먹거나 말려서 볶아 먹는다. 대청도에서는 홍어를 직접 손질하고 맛볼 수 있는 '회 뜨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지난달 3일 오전 김형진(59·사진) 대청도 특성화사업추진위원장 겸 모래울 마을 협동조합 이사장의 설명에 따라 기자가 직접 대청도 모래울동(대청4리) 마을 정자에서 홍어회 뜨기 체험에 나섰다.
평소 홍어는 삭힌 음식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생물 홍어를 손질해 먹는 체험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현장에 도착하니 탁자 위 도마에 어른 팔 길이만 한 싱싱한 홍어 1마리가 놓여 있었다. 납작한 몸통에 양옆으로 커다란 지느러미는 마치 하늘을 나는 연을 연상케 했다.
김 위원장은 "대청도 홍어를 제대로 맛보려면 회 뜨는 법부터 알아야 한다"며 직접 시연에 나섰다.
홍어는 상어처럼 딱딱한 뼈가 아닌 연골로 이뤄진 연골어류로 일반 생선과 회를 뜨는 방식이 다르다.
"홍어는 몸이 납작하고 살이 부드러워서 칼을 너무 세게 누르면 살이 뭉개지기 쉬워요. 살결을 따라 얇게 떠야 제맛이 나죠."
가장 먼저 홍어의 배를 갈라 '애(간)'를 꺼냈다. 손질한 애는 따로 접시에 담아두고, 내장을 제거한 뒤 껍질에 묻은 진액을 깨끗이 닦아냈다.
홍어 껍질은 질기고 미끄러워 손으로 직접 벗기기 쉽지 않다. 모래울동 마을에서는 체험객이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도록 전용 도구 '방울집게'를 개발했다.
방울집게를 이용해 껍질을 벗기자 하얗고 탱탱한 살이 드러났다. 연골을 따라 8등분한 뒤 회칼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눕혀 살결을 따라 얇게 썰어냈다.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순서를 익히고 나니 손질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직접 썬 홍어회를 초장에 찍어 먹으니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흔히 알려진 삭힌 홍어 특유의 톡 쏘는 향은 없었다. 굵은 소금과 고춧가루를 살짝 찍어 홍어 애를 먹어봤다. 녹진한 크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부드럽고 고소했다.
홍어회 뜨기 체험은 2인 1조 기준 3만 원으로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특히 가을철이 체험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 전통 어법 '주낙'이 지켜낸 섬의 맛
"홍어는 원래 삭혀 먹는 음식이 아니었어요. 대청도에서는 삭힐 필요가 없으니까 회나 말려서 먹죠."
김형진 위원장은 "삭힌 홍어는 육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발효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시대 때 전남 영산도 주민들이 나주 인근 영산포로 이주하면서 홍어를 가져갔고, 강을 따라 며칠씩 이동하는 동안 자연 발효가 이뤄져 삭힌 홍어 문화가 생겨났다고 전했다.
반면 대청도 주민들은 바다에서 바로 건져 올린 홍어를 신선하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삭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홍어가 다량으로 잡히는 건 대청도만의 전통적인 어업 방식인 '주낙어업' 덕분이다. 주낙은 길게 늘인 줄에 수백 개의 미끼 바늘을 다는 어법이다.
"마을 어르신 가운데 고(故) 이동원 선생님이 북한 진남포 어민과 함께 주낙 방식을 개발하면서 지금의 홍어 주낙어업이 자리 잡았죠. 한 줄에만 바늘이 400~500개나 달리는데 물길만 제대로 읽으면 수십 마리의 홍어가 한 번에 걸려듭니다."

대청도에서는 생 홍어회뿐 아니라 말린 홍어도 인기다. 살을 오징어처럼 찢어 양념에 볶아 반찬으로 먹거나 탕에 넣어 해장국처럼 끓인다.
"서풍이 적당히 불고 해가 잘 드는 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말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크기가 3분의 2로 줄어요. 껍질까지 먹을 수 있고, 아귀포처럼 쫄깃하죠."
홍어는 말리는 조건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습한 날엔 건조 시간이 길어져 발효가 더 진행되면서 삭힌 맛이 강해지고, 맑은 날엔 빨리 마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담백한 맛이 난다. 같은 '말린 홍어'라도 날씨와 바람에 따라 다채로운 맛이 나는 셈이다.
직접 맛본 말린 홍어는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마치 고급 오징어 진미채를 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통 시스템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말린 홍어는 식품 가공품으로 분류돼 가공·포장 과정에 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옹진군에는 이를 처리할 시설이 없어 대부분 전북 군산 등 다른 지역에서 가공하고 있다. 유통비용이 크게 늘어나 소규모 판매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위원장은 "대청도처럼 원물이 풍부한 섬에서 직접 가공까지 할 수 있도록 인천시나 옹진군에서 식품가공센터를 지어줬으면 좋겠다"며 "생홍어뿐 아니라 쫄깃하고 담백한 말린 홍어도 대청도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청도=이나라 기자 nar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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