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 영조의 사모곡이 깃든 ‘육상궁’을 다시 보다

강소하 2025. 10.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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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매우 독특하면서도 의미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이다. 영조·정조·순조를 거쳐 대한제국까지, 후궁의 왕실 제사의 위상 변화를 재조명하는 최초의 전시여서 더욱 그렇다.

이번 기획전은 말그대로, 왕을 낳았으나 왕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을 조명한다. 특히, 이들을 모신 사당을 '칠궁(七宮)'이라 하는데, 조선의 유교적 제례 질서 속에서 종묘에 들지 못한 후궁들을 위해 별도로 조성된 공간이다.

'칠궁'은 ▶인빈 김씨의 저경궁(원종) ▶희빈 장씨의 대빈궁(경종) ▶숙빈 최씨의 육상궁(영조) ▶정빈 이씨의 연호궁(진종) ▶영빈 이씨의 선희궁(장조) ▶유빈 박씨의 경우궁(순조) ▶황귀비 엄씨의 덕안궁(영친황)을 통칭한다. 원래는 각각 흩어져 있던 사당을 1908년 육상궁 경내로 통합하고, 1929년 덕안궁까지 옮기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일제강점기 무리한 합사와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축소된 칠궁을 넘어, 그 안에 깃든 후궁들의 삶과 역사적 층위를 복원하고자 했다"는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의 설명 만큼이나 특별한 이 전시의 면면을 도록을 중심으로 세심히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는 총 5부로 구성된 전시의 흐름을 따른다. [편집자주]
 

①영조의 사모곡으로 상징되는 '육상궁'
영조는 어머니 숙빈에게 '화경(和敬)'이란 시호를 올리고 궁원제를 선포, '궁원식례'를 편찬해 종묘·왕릉과 구별되는 궁·원의 제도를 마련했다. (왼쪽부터) 『궁원식례보편』, 『육상궁 소령원 식례』(원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왕의 생모인 후궁의 사당이 '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조가 마련한 '궁원제(宮園制'를 통해서였다. 유교적 정통성과 군주의 효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했던 영조가 숙빈을 왕후로 추존하는 대신, 그녀의 신문을 고려한 새로운 효의 방식을 모색한 것이다.

영조는 숙빈묘에 자주 행차하고, 직접 제사를 올리는 친제(親祭)를 시도, 신하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사적인 일 속에도 공적인 것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공적 의례의 정비에 나섰다. 이후 9년 뒤인 1753년 숙빈에게 '화경(和敬)'이란 시호를 올리고 궁원제를 선포, 『궁원식례』를 편찬해 종묘·왕릉과 구별되는 궁·원의 제도를 마련했다.

이 궁원제는 '칠궁' 성립의 제도적 기반이 됐으며, 각 궁의 형성과 위상은 당시의 정치적·시대적 맥락에 따라 다채롭게 전개됐다.
 

종묘 정제의 요소 절충, 궁원제의 의례적 위상 높이려 한 영조의 의지

『궁원식례보편』은 원편인『육상궁 소령원 식례』에 새로운 규정을 보완해 만든 별도의 책으로, 영조는 이에 대해 "이제는 내 마음에도 꼭 맞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조를 이토록 기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원편의 경우 세자의 사당을 기준으로 종묘의 정제(正祭)와 구분되는 속제(俗祭)의 형식을 취한 반면, 보편은 종묘와 동일한 방식으로 거행됐다는 점이다.

왕실 조상에게 생시처럼 효를 다하기 위한 '속제'에선 신에게 바치는 희생인 생고기 대신 일상의 음식인 유밀과(油蜜菓)를 올렸다. 또한, 작(爵·술잔) 대신 은잔(銀盞)을 사용하고, 폐백(幣帛)을 생략하는 원칙을 준수했다.

이러한 보편의 규정은 속제를 기본으로 하되, 종묘 정제의 요소를 절충해 궁원제의 의례적 위상을 높이려는 영조의 의지를 보여준다.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숙빈 최씨 묘비 탑본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묘비 탑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1718년(숙종 44) 9월 건립된 숙빈 최씨 묘표(墓表)의 탑본으로, 전면은 대자 해서로 '유명조선국후궁숙빈수양최씨지묘((有明朝鮮國後宮淑嬪首陽崔氏之墓)라고 썼고, 후면의 음기(陰記)는 중자 해서로 숙빈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기록했다.

음기의 기록에 따르면 숙빈의 본관은 해주이고, 1693년(숙종 19) 숙원으로 봉해진 후 귀인을 거쳐 1699년(숙종 25) 정1품 숙빈에 봉해졌다. 숙빈 소생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 연잉군만 장성, 서종제(1656~1719)의 딸과 혼인했다.

숙빈은 장동(壯洞)의 창의궁에서 요양하다 1718년 3월 9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5월 12일 양주 고령동 옹장리에 안장됐다.

◇소령묘갈문 원고, "자식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을 듯하다"

1744년 숙빈 최씨의 묘호(墓號)를 소령(昭寧)으로 정한 뒤 소령묘 옆에 세운 묘갈문의 원고로, 영조가 직접 짓고 쓴 소령묘갈의 후면 음기로서 곳곳에 수정하고 삽입한 흔적이 있다.
 
1744년 숙빈 최씨의 묘호(墓號)를 소령(昭寧)으로 정한 뒤 소령묘 옆에 세운 묘갈문의 원고로, 영조가 직접 짓고 쓴 소령묘갈의 후면 음기로서 곳곳에 수정하고 삽입한 흔적이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음기(陰記)에는 숙빈의 가계와 생애 및 자손들을 기록하는 한편, 숙빈의 은혜에 보답하는 존봉(尊奉)의 절차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어 "아! 지금 이후로 존경하고 받들어 근본에 보답하는 자식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을 듯하다"라는 한 문장을 넣으며 깊은 감회를 드러냈다. 위 사진에서 빨간선 안에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 25년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이 비문을 지음에 문임(文任)의 신하를 버려두고 소략하게나마 내가 기술한 것은 또한 자식으로서 사친의 조심하는 마음을 체득함이라. 붓을 잡고 글을 쓰니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 지난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

◇축문에서 자신을 '자(子)'로, 숙빈 최씨를 '비(妣)'로 칭하고 싶어하다

영조는 '비(妣)'가 적통의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비판을 수용, 자신과 숙빈의 호칭을 '국왕'과 '사친(私親)'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국왕' 아래 자신의 휘인 '금(昑)'을 기재할 것을 주장, 신하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영조는 축문에서 숙빈 최씨를 '비(妣)'로 칭하고 싶었지만, 적통의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비판이 일자, 자신과 숙빈의 호칭을 '국왕'과 '사친(私親)'으로 정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러한 논의를 거쳐 정비된 축식은 다음의 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영조는 "지난해를 생각하니 아픔이 새롭습니다. 지금 친히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장차 탄식과 후회가 남을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팔고조도(八高祖圖), 어머니의 이름으로

왕실 팔고조도의 경우 2단에 부모 2명, 3단에 조부모 4명, 4단에 증조부모 8명, 5단에 고조부모 16명을 차례로 기록했다. 이렇게 수록된 30명의 내외 조상 중 돌아가신 적통의 부모를 의미하는 '고(考)'와 '비(妣)'는 왕의 부계에만 사용됐고, 그 외에 조상은 '부'와 '모'로 써서 구분했다.

팔고조도의 제작이 본격화된 것은 영조 대부터다. 1734년(영조 10) 영조의 명으로 종부시 소장 팔고조도와 운흥군 집안에서 편찬된『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등의 분석이 진행, 이를 토대로 한 수정 편찬 작업을 거쳐 1년 후 교정청에서『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를 완성하게 된다.

사친(私親) 후궁을 어머니로 기록하는 팔고조도의 제작이 시작된 것도 영조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1734년(영조 10)영조의 명으로 팔고조도에 대한 분석이 진행, 1년 후 교정청에서 완성본을 영조에게 바쳤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에서 경종과 영조의 팔고조도는 왕후와 생모의 계통을 2종으로 구분 제작해 경종의 적모를 인현왕후, 영조의 적모를 인원왕후로 정했고, 사친의 계통은 별도로 작성했다.

이에 영조는 사친의 일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하들을 비판하면서, "내가 만약 지나치게 행동한다면 숨기는 것이 옳지만, 지나치지 않음에도 숨기고자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이후 사친 후궁의 부모 2명, 조부모 4명, 증조부 8명의 이름이 팔고조도에 수록되면서, 조상에 대한 증직(贈職)이 이뤄지게 됐다.

이렇듯, 영조는 팔고조도에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했고, 시호를 더하여 위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효를 다하고자 했다. 영조의 사모곡으로 각인된 어머니 숙빈의 이름은 팔고조도를 통해 영원한 기억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밖에도 영조가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직접 쓴 제문 등에는 효를 다하지 못한 슬픔과 더불어 은혜에 보답하고 정성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 이번 기획전은 2026년 6월 26일(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5인 이상 단체관람의 경우 사전 신청을 통해 전시 안내를 진행한다. 문의 031-730-8820
 

강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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