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를 놀렸더니, 경고장이 날아왔다

올 것이 왔다. ‘농지법 규정에 의거 농지처분의무통지 농지 결정을 위한 청문을 시행하오니, 참석하시어 의견을 진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공주시 농정유통과에서 온 편지에는 정신이 확 들게 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농지를 정당한 사유(3개월 이상 해외 체류 등) 없이 놀리면 지자체에서 1년 이내에 땅을 처분하라고 통지한다. 계속 달라지는 게 없으면 6개월 이내에 매각할 것을 ‘명령’하고, 이를 무시하면 이행강제금을 물린다. 그 첫 단계에 들어가니, 와서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공문이다.
농지 놀리면 ‘1년 내 처분’ 통지→‘6개월 내 매각’ 명령
밭을 살 때 전 주인이 임대해 심은 조경수가 심겨있었다. 나무를 파 가도록 조경업자에게 요구했으나 해를 넘겨 미루다 여름이 다 되어서야 뽑아갔다. 파헤쳐진 밭에 뭘 심기도 어중간해 그냥 두었더니 풀만 무성하게 자랐다.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 나와 있는 동네 어르신은 “그 밭에 고라니가 숨어서 살아”, “거기서 풀씨가 우리 밭까지 날아와” 하며 나무라셨다. 실재 송아지만 한 고라니가 우리가 다가가자 후다닥 달아나는 것도 목격했다. 밭을 버려둔 결과가 처분예고장으로 날아온 것이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부담을 안고 서둘러 농사 계획을 세웠다. 600평 전부에 곡식을 심기에는 5도 2촌 주말 농부 처지에서 부담이었다. 궁리 끝에 3분의 2는 과일나무를 심고 나머지 땅에 농막을 들여놓고 텃밭으로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무는 곡식보다는 손이 덜 갈 것 같았다.
어떤 나무가 좋을까? 병충해에 잘 견디고 손이 덜 가는 나무, 오래 둬도 과일의 보관성이 좋은 나무가 뭘까? 대봉감? 사과 대추? 매실? 아내는 산림청에까지 전화해서 물어봤다. “그런 나무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전화기 저편에서 담당자가 웃었다. 마을 어른들은 이 동네가 산골이어서 감나무는 겨울에 곧잘 얼어 죽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궁리 끝에 사과대추로 정했다. 사과대추는 보통 대추보다 알이 서너배 굵어, 큰 것은 골프공만 하다. 아삭아삭 식감이 좋고 당도가 높아 씻어서 껍질째 먹으면 맛있다. 비타민 C 함량이 귤의 10배라는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알려져 건강식으로도 인기가 높다.

나무 농사는 편할 줄 알았는데
그해 봄, 굴착기를 불러 나무 심기 좋게 밭고랑을 넓고 깊게 꾸몄다. 풀이 나지 않도록 위에 부직포를 덮었다.(한 해 정도 효과가 있을 뿐 부직포를 뚫고 풀은 자랐다. 나중에 부직포가 낡아 조각조각 떨어지는 것은 공해였다.) 공주 나무시장에서 묘목을 사 왔다. 사과대추 60주를 주력 종목으로 하고, 사과 5주, 자두 5주, 매실 20주, 두릅 5주 이렇게 심었다. 대꼬챙이처럼 작은 나무가 바람에 휘어지지 않게 버팀목도 대줬다. 마을 어른들은 우리가 두릅을 사다 밭에 심은 걸 어이없어 하셨다. “뒷산에 두릅이 천지인데 뭐하라 밭에까정 심는댜?”
나무를 심고 남은 밭 100여 평에는 감자, 호박,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참외 등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골고루 심었다. 이왕 농사를 시작했으니 농업인의 주민등록과 같은 농업경영체 등록도 하고, 지역 단위농협에 300만원을 출자해서 조합원 자격도 얻었다. 농협 조합원이 되면 퇴비, 농약, 비료 등을 할인해 살 수 있고 이용에 따른 배당도 받는 등 혜택이 많다. 이제 농업인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공주시에 “유실수 과수원을 만들었으니 참고해 달라”는 의견서를 증빙용 사진 몇장과 함께 보냈다. 이렇게 하면 지자체는 일단 농지 처분 절차를 멈추고, 정말 농사를 짓나 당분간 관찰한다.

농약 없는 농사의 꿈은 허무해지고
이제 와 생각하면 농사를 몰라서, 또 농사를 쉽게 생각해서 범한 실수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무는 손이 덜 가리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밭작물보다는 덜할지 모르지만, 나무도 때맞춰 방제해 줘야지, 전지해야지, 퇴비 줘야지 할 일이 많았다. 나무 주변 풀 관리는 기본이었다. 농약을 제때 치지 않으면 사과, 자두 같은 과실은 수확할 게 거의 남지 않았다. 농약을 되도록 치지 않겠다는 이상과 잘 크던 과일이 썩고 허무하게 떨어져 버리는 현실 사이에서 계속 갈등해야 했다.
유실수 품종 선택도 공부가 부족했다. 사과대추는 농약도 덜 치고 관리 부담이 적다고 들었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대추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병이 있었다. 바로 ‘빗자루병’. 모무늬 매미충이 옮기는 파이토플라스마라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이병에 걸리면 나뭇잎이 빽빽이 나고 꽃눈이 잎으로 변해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한번 증세가 나타나면 치료가 힘들어 다른 성한 나무를 위해 베어내야 한다. 한국에는 1950년대부터 확산해 보은 등 대추 산지 과수원을 초토화한 병이다. 나무 심은 지 5년쯤 되자 우리 밭의 사과대추도 하나둘 이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미 밑동이 굵어진 나무를 베어낼 때 마음이 쓰렸다.

농사, 흉내는 쉽지만 알고 보면 전문직
나무는 묘목 때는 작지만 해가 갈수록 크는 걸 고려하는 것도 소홀히 했다. 무엇보다 밭 주변에 심긴 조경수가 ‘계륵’이었다. 조경업자에게 나무를 뽑아갈 때 경관을 위해 몇 그루만 두고 가라고 하니 남쪽 둘레에 메타세쿼이아 20여주를 남겼다. 다 자라면 30m 높이에 이르는 메타세쿼이아는 한 해가 다르게 쭉쭉 자랐다. 가을에 금빛 병풍으로 선 모습이 전남 보성의 메타세쿼이아 길인 양 멋져 농장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이게 이 밭의 시그니쳐 풍경이야” 하며 자랑했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큰 사람 덕은 봐도 큰 나무 덕은 못보는 법이여. 그늘지고 양분 다 빨아먹어” 하며 걱정하셨다. 처음엔 속으로 “남풍을 막아 낙과 피해도 줄이고 좋지 뭐” 하며 버텼으나,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두려움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 결국 나이테가 15개도 더 된 나무를 어느 초겨울에 고생고생하며 베어내야 했다. 농막과 가까운 쪽에 키가 작은 대추나무를 심고, 매실처럼 풍성하게 자라는 나무는 뒤쪽에 배치해야 함에도 반대로 해 전망을 좀 가렸다. 그렇다 해도 한번 심은 나무는 어쩔 수 없었다.
과일 농사를 해 보니 마트 과일 코너를 지날 때 잠시 서서 쳐다보게 된다. 매끈하고 큼직한 사과와 배, 탱탱하고 말끔한 자두, 복숭아를 대체 어떻게 키운 걸까? 내 것은 수확 전에 다 떨어져 버리거나 작고, 못나고, 벌레 먹은 것만 남던데…. 농사도 전문직이 아닐까?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잘하기는 참 어렵다.
#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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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의 농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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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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