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 화장품 방문판매…엘지생건, 중국 공급가 두고 본사·대리점 갈등

장종우 기자 2025. 10. 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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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생활건강 방문판매 대리점주들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엘지생활건강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본사는) 가격파괴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장종우 기자.

한때 화장품 판매 경로의 혁신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자취를 감춰가는 ‘방문판매’를 둘러싸고 엘지(LG)생활건강(엘지생건) 방문판매 대리점과 본사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방문판매 대리점들은 폐업 기로에 놓인 사정을 호소하며 본사에 ‘가격 덤핑’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엘지생건 쪽은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갈등 속에 실직 위기에 놓인 방문판매 노동자들은 대부분 중장년 여성이다.

엘지(LG)생활건강 화장품 방문판매 대리점주들이 모인 ‘전국엘지옴니대리점 협의회’(협의회) 회원 40여명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엘지생활건강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본사에 △국외시장에서의 대리점 매입원가 이하 판매행위 중단 △온오프라인 시장 가격 질서 확립 △후원수당 현실화 등을 요구했다. 협의회는 본사에 협상과 대화를 요청하지만, 본사는 “고통을 분담하고 위기를 극복할 때”라며 “집단행동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데 동참해달라”는 입장이다.

2021년 500여개였던 엘지생건 방문판매 대리점은 매년 50~60개 매장이 문을 닫아 지난 8월 기준 325개로 급감했다. 2008년부터 경남 진주에서 대리점을 운영한 정호연(59)씨는 한때 매달 5억원어치의 화장품을 매입했지만, 지금은 2천만원 수준에 그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고 했다. 정씨는 “이익이 10원도 나지 않아 직원 3명을 모두 내보냈다. 지금은 개인택시를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방문판매는 개인사업자인 대리점이 본사의 화장품을 구매하면, 이를 방문판매원이 사들여 집집마다 방문해 재판매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1960년대 ‘쥬리아 화장품’이 방문판매로 성공한 뒤 다른 회사들도 같은 방식을 따랐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화장품 유통 80%를 차지할 정도로 성행했다. 다만 온라인과 화장품 전문점 등 유통 경로가 다양화되며 조직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대리점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중후반 중국에 진출해 중국 도매상들과 거래를 시작하기도 했다. 중국 지인들에게 한국 화장품을 소개한 중국동포 출신 방문판매원들의 공이 컸다고 한다. 이제는 중국발 수입이 대리점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불거졌다. 협의회는 “본사가 중국에 직접 판매하는 도매가가 대리점 공급가보다 훨씬 낮아 중국 매출에 타격이 크다”며 “해외 사업을 중단하거나 공급가를 균등하게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쿠팡 등 온라인 판매 채널에 방문판매용 제품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 본사가 이를 단속해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엘지생건은 그간 대리점주들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했다고 반박한다. 엘지생건은 한겨레에 “대리점 매출을 보전하기 위해 판매실적에 따른 장려금을 지급했고, 방문판매원들을 위한 광고용 소책자도 따로 만들어 배부했다”고 했다. 아울러 “협의회가 단속을 요구하는 온라인 채널을 통한 재판매의 경우, 단속 결과 대부분 대리점이나 방문판매원들이 등록한 것이었다”며 “대리점 쪽의 자정 노력 없이 본사의 단속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했다.

특히 중국 판매에 관한 협의회 요구는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엘지생건 관계자는 “애당초 대리점이 구매한 화장품은 국내에서 방문판매원을 통해서만 판매할 수 있는데, 대리점들이 계약을 위반해 중국에서 도매거래를 해왔다”며 “해외 영업은 팬데믹 시기 대면 판매가 불가능해져 부가적으로 허가해 준 것이지 해외 영업권을 넘긴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본사는 대리점의 생존을 위해 국외 판매를 양성화했는데, 대리점이 본사의 국외사업 축소를 요구하는 것은 영업권 침해라는 것이다.

화장품 방문판매가 사양산업인 것은 맞지만, 이대로 사라질 경우 5122명의 방문판매원이 실직자가 될 수 있어 본사도 대리점도 섣불리 사업을 접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방문판매 노동자는 대부분 50~60대 여성으로 재취업도 쉽지 않다. 천항영 협의회 회장은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방문판매원들이 ‘그럼 저희들은 어떡하느냐’고 한다. 십수년을 함께하며 한때는 즐겁게 같이 일했던 사람들 일자리를 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사업을 함부로 접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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