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숨 참고 2000미터 잠수…남방코끼리물범의 완벽한 비밀

한겨레 2025. 10. 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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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
남인도양 암스테르담섬 인근 바다의 남방코끼리물범. 물범은 인간처럼 폐로 호흡하는 포유류다. 위키커먼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수심이 그리 깊지도 않은 곳이지만 발을 헛디뎌 내 키보다 깊은 곳에 빠졌고, 죽기 살기로 허우적거리다가 물을 잔뜩 마시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 후로 한동안 물가엔 얼씬도 하지 못했다. 행여나 입이나 코에 물이 들어가면 그날의 공포감이 떠올랐고 숨이 가빠졌다.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동물들을 볼 때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고,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육체적 한계를 느꼈다.

실제로 인간의 몸은 물속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아가미가 있는 어류와 달리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속 깊이 들어가면 높은 수압을 견디지 못해 폐를 비롯한 장기 조직이 압축돼 손상을 입고, 고압 상태에서 산소와 질소가 혈액에 더 많이 녹아들면서 질소 마취 및 산소 중독 증상이 나타난다. 잠수를 직업으로 삼는 제주 해녀들도 보통 1분 정도 잠수하며 10~20m 이내 얕은 수심에 머문다. 훈련된 다이버는 더 깊이 오래 잠수를 하기도 하지만 몇 분을 더 버티는 정도에 불과하며 100m 이상 들어가려면 치밀한 감압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남극 킹조지섬 남방코끼리물범 번식지. 이원영 제공

그런데 인간처럼 폐로 호흡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깊이 잠수할 수 있는 동물이 있다. 인간을 닮은 외형 때문에 인어 전설의 모티브가 된 동물 중 하나인 해양포유류 물범이다. 물범은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잠수 능력을 지녔다. 특히 남방코끼리물범(southern elephant seal)의 평균 잠수 시간은 28.4분, 평균 잠수 깊이는 443.8m에 달하며, 무게가 3톤 가까이 나가는 무거운 수컷은 최대 120분간 숨을 참고 2388m까지 잠수한 기록이 있다. 군사용 잠수함의 잠항 깊이가 최대 830m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다. 코끼리물범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깊이 잠수할 수 있는 걸까?

코끼리물범 역시 심해를 헤엄쳐 들어갈 때 엄청난 압력에 노출된다. 하지만 수압으로 인해 폐가 압축되는 걸 방지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 우선 이들은 흉곽이 매우 유연하다. 그래서 압력이 높아져도 흉강이 손상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수압에 따라 폐와 기관(trachea)의 공기 이동을 조절할 수 있어서, 압력이 높아지면 의도적으로 폐의 공기 공간을 줄이고 기관으로 공기를 이동시킨다. 이를 학술 용어로 ‘폐 붕괴(lung collapse)’라고 하는데, 폐가 붕괴돼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폐의 부피를 줄여 폐가 손상되는 것을 막는 생리적 적응 현상이다. 폐에 있던 공기가 기관으로 옮겨지면 폐는 아주 작아져서 압력이 높아져도 파열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또한 폐에 있던 공기를 기관으로 옮겨 놓으면 공기가 혈액과 접촉하며 기체 교환이 일어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이는 강한 압력에 노출됐을 때 공기에 있던 질소나 산소가 혈액으로 확산돼 벌어지는 잠수병을 막는다. 이 과정은 압력 변화에 따라 생리적으로 유연하게 조절되며, 심해 잠수를 마친 물범이 수면 가까이 떠올라 압력이 낮아지면 기관의 공기가 다시 폐로 돌아와 본래 부피로 복원된다.

아남극권 케르겔렌 제도의 남방코끼리물범. 위키커먼스

심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압력을 견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숨을 오래 참은 채 제한된 산소를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폐 붕괴로 인해 산소 공급이 멈춘 상태로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코끼리물범은 잠수 중에는 심박수를 분당 4~6회까지 극단적으로 낮춰 산소 소비를 줄인다. 그리고 몸의 전체적인 대사율도 낮춰 산소 소모를 줄이는 절전 모드로 바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다. 게다가 생존에 필수적인 뇌와 심장에만 집중적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나머지 기관으로 가는 혈류는 제한하는 선택적 혈류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물속에서 버틸 수 있다.

또한 근육 속에 산소를 저장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코끼리물범의 근육 세포 속에는 미오글로빈이 매우 높은 농도로 분포해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할 수 있다. 또한 타 분류군과 비교해 체중 대비 혈액량이 높고 헤모글로빈 함량도 뛰어나 잠수하는 동안 세포 호흡이 필요한 곳에 신속하게 산소를 운반할 수 있다. 코끼리물범은 단지 깊게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멀리 오래 헤엄친다. 매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6개월의 번식기가 끝나면 나머지 6개월은 바다 위 수천㎞를 이동하며, 이 기간엔 뭍으로 거의 올라오지 않은 채 물에서 이동을 하거나 먹이를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남극권(subantarctic) 케르겔렌 제도(Kerguelen)에서 번식하는 남방코끼리물범 암컷은 번식기가 끝나면 남극해까지 평균 2789㎞를 헤엄을 치고, 다시 번식기가 되면 원 서식지까지 망망대해를 끊임없이 헤엄쳐 돌아가는 평균 190일간의 긴 여행을 하며 먹이를 섭취한다.

염분·수온·수심 기록계를 부착한 남방코끼리물범. 이원영 제공

다른 누구보다 깊이 헤엄치며 물속을 누빌 수 있다면 남들이 찾지 못하는 먹이를 잡을 수 있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물속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을 수 있을까? 태양빛은 바다 깊은 곳까지는 도달할 수 없어서 수심 200m가량만 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다. 수중 음파를 이용해 반사되는 파장으로 먹이를 찾는 고래도 있지만 물범은 그런 능력이 없다.

대신 코끼리물범은 마치 쥐나 고양이가 콧수염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 먹이의 움직임을 감지하듯 입 주변에 난 수염을 사용해 물고기나 오징어를 잡는다. 2022년 일본과 미국 연구진이 코끼리물범 뺨에 적외선 LED 조명이 포함된 소형 비디오카메라를 부착해 물속에서 수염의 움직임을 촬영했는데, 깊은 물속에서 먹이가 다가올 때면 어김없이 수염이 움직였고 이내 입을 벌려 사냥감을 삼키는 모습이 확인됐다. 코끼리물범은 포유류 가운데 수염 하나당 신경 섬유 수가 가장 많아서 예민하게 물속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물고기가 아가미 호흡을 하며 발생되는 작은 물의 흐름 변화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극지에서 펭귄과 물범을 관찰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나도 물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 동물의 눈으로 보는 물속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물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스쿠버 장비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했다. 물범 덕분에 수심 20m 이상 잠수할 수 있는 자격증도 생겼고, 필리핀과 멕시코 바다에서 거북과 고래상어 옆에 나란히 헤엄치는 경험을 했다. 물속의 다채롭고 수많은 생명체들을 직접 보고 나자 물범이 왜 그토록 깊이 잠수하게 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들은 누구나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깊이까지 도달해 먹잇감을 찾고자 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잠수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런 노력 덕에 효율적으로 몸을 조절하며 능숙하게 해저를 탐험할 수 있게 되면서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심해 사냥감들을 능수능란하게 잡을 수 있는 특별한 전략을 갖출 수 있었다.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https://www.hani.co.kr/arti/SERIES/3304?h=s)에서 만나보세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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