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개선 시동 건 화학업계,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위기 탈출해야

한겨레 2025. 10. 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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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일곱째)과 국내 석유화학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2025년 8월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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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근속연수 16년, 1인당 평균 급여 1억200만원을 자랑하며 오랜 세월 취업 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선망받던 여천엔씨씨(NCC)가 부도 위기에 놓이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여천NCC는 2021년만 하더라도 6조원이 넘는 매출액과 387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하지만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확장으로 글로벌 화학 시장이 공급과잉 현상을 빚으면서 회사는 2022년 이후 4년 연속 영업적자에 빠졌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디엘(DL)케미칼이 각각 50%씩 공동출자해 설립한 합작기업이다. 공동경영하므로 의사결정은 합의로 이뤄지고 리스크도 함께 나눠야 한다. 그런데 이번 위기 상황에서는 의사결정에서 엇박자를 내며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여천NCC 위기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화솔루션은 재빠르게 여천NCC에 1500억원의 자금 대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DL케미칼은 워크아웃(부실기업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흑자로 전환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자금을 투입했다가는 모기업인 DL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당장 만기가 도래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DL케미칼도 자금대여안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업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위기설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2025년 6월 말 현재 여천NCC가 보유한 현금은 136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 총액은 1조7천억원이 넘는다. 1년 이상 만기가 남은 차입금과 사채는 3569억원이고 나머지는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한다.

물론 이 가운데 연장 가능한 차입금도 있어 당장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자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상반기까지 383억원의 이자비용을 지급했으니 하반기도 이 금액만큼이 또 발생할 것이다. 또한 매년 수백억원대의 시설투자를 비롯해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이번에 주주사에서 빌린 돈은 정말 급한 불을 끄는 데만 쓸 것 같다.

NCC는 ‘Naphtha Cracking Center’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나프타 분해 공장’이다. 석유제품인 나프타를 열분해해 올레핀계 기초유분인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 등과 방향족계 기초유분인 벤젠·톨루엔·자일렌 등을 분리, 추출한다. 이 기초유분을 원료로 물성 변화를 수반한 다양한 화학반응을 이용하면 합성수지, 합성섬유 원료, 합성고무, 기타 화공약품 등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들 화학제품은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음식 용기, 빨대, 물병, 타이어, 건축자재 및 전자제품 외장재 등에 두루 쓰인다.

수요가 꾸준한 제품의 주원료를 만들기 때문에 그동안 여천NCC의 지속가능성에 큰 의구심이 없었다. 결국 중국의 물량 공세가 위기를 불러온 셈인데, 문제는 동종 제품을 만드는 다른 화학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여천NCC의 주요 제품인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 등은 롯데케미칼과 엘지(LG)화학 등도 생산하는데 모두 재무구조가 좋지 않고 실적도 악화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만 하더라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조원, 1조5천억원을 넘길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2022년부터 영업적자에 빠져 2025년 상반기까지 4년 연속 까먹고 있다. 4조원 가까운 현금과 금융상품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가 10조원이 넘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 2025년 상반기까지 377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는데, 이와 별개로 3천억원에 가까운 이자비용도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LG화학(별도기준)은 수년째 적자에 허덕일 정도로 악화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처럼 조 단위의 영업이익을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2년 1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2023년 매출액이 20조원 아래로 떨어지며 적자로 전환했다. 2024년 20조원대의 매출액을 회복하며 1544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2025년 상반기에 다시 적자로 전환됐다. 2조6천억원이 넘는 현금과 금융자산을 보유했지만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가 9조원이 넘어 역시 재무구조는 안정적이지 않다. 연간 3천억원이 넘는 이자비용이 부담되는데 영업적자를 내고 있어 부담이 더하다.

반면 최근 3년간 중국의 석유화학 기업들은 거침없이 성장했다. 에틸렌 최대 생산 국영기업인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 모두 2021년까지 2조위안대(약 391조원)에 머물던 매출액이 2022년부터는 3조위안대로 진입했다. 그리고 모두 영업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으로 두 회사 모두 영업이익은 줄고 있다. 그래도 적자를 내지 않는다.

중국 화학기업들은 최근까지 에틸렌 생산능력만 총 5500만톤(t)대로 늘려 우리와 격차를 4배 이상 벌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기가 엄청나게 좋아지지 않는 이상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흑자전환은 요원해 보인다. 판매가격 하락으로 마진 폭이 줄어드는데, 공급과잉에 따른 생산 감소로 고정비 부담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였지만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에 따른 공급량 증가를 우리가 당해낼 수는 없다. 이제는 화학산업도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같은 화학업계의 금호석유화학이 아직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이유도 다른 회사처럼 범용성 있는 제품이 아니라 고기능 고부가가치를 가진 제품군인 ‘스페셜티(Specialty) 화학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관, 사업재편 협약식

산업통상자원부는 업계가 과거의 호황에 취해 설비만 증설하고 고부가 전환을 놓쳐 지금의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하며 2025년 8월20일 민관이 함께하는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안을 내놨다. 10개사가 사업재편 협약을 체결했는데 최대 370만t 규모의 나프타분해 시설 감축과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 등이 주요 뼈대다. 기업들이 향후 제출하는 구조조정 계획안에 따라 연구개발 지원, 금융, 세제 등 종합대책을 적기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민관이 손잡고 구조조정을 진행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과거에 조선업이나 해운업도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다가 고통의 구조조정 시간을 보냈지만 몇 년 뒤부터 호시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석유화학 업계도 그럴 것이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체질 개선 뒤에는 분명히 좋은 날이 다시 올 것이다.

박동흠 공인회계사·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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