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군 품에 ‘백두산’을 안긴 평생 뱃사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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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출범한 해군은 초창기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마침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당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그동안 쌓인 기부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적당한 군함 물색에 나섰다.
이미 백두산함 인수 경험이 있는 박 중령은 이후에도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 미국산 군함들을 들여와 우리 해군에 인도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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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출범한 해군은 초창기만 해도 보잘것없었다. 배는 여러 척 있다고 해도 함포가 장착돼 해상에서 적과 싸울 수 있는 전함은 사실상 없었다. 해군 장병들이 월급 일부를 갹출해 제대로 된 함정 구입에 필요한 돈을 모았고, 여기에 장병 가족들도 삯바느질 등을 통해 동참했다. 마침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당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그동안 쌓인 기부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적당한 군함 물색에 나섰다. 그때 뉴욕에서 거금을 주고 사들인 전함이 바로 우리 해군 최초의 전함인 ‘백두산함’이다. 손 총장은 일행 중 박옥규(1901∼1971) 중령을 백두산함 초대 함장에 임명한 뒤 즉각 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너 귀국할 것을 지시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하와이 호놀룰루를 경유하는 기나긴 항해였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고심 끝에 당시 소장 계급이던 박옥규 제독한테 해군 지휘를 맡겼다. 그는 2대 해군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중장으로 진급했고, 약 1년 4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한 뒤 전역했다. 정부는 6·25 전후 해군 조직 정비에 기여한 공로로 박 제독에게 태극·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1950년대 후반 어느 일간지는 그를 “전형적인 뱃사공”이라고 부르며 “총장이 되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뒤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정신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고 소개했다. 종종 술냄새를 풍기는 박 제독을 부하들은 “막걸리 대장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다니 용장(勇將)이요, 지장(智將)이기 전에 덕장(德將)이었음이 분명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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