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배관공, 매실농사…배지 떼고 맞이한 추석, 그들은

여의도를 떠난 ‘전직’ 국회의원은 추석 연휴에 무엇을 할까. 다시 여의도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지역구를 다지는 이도 있지만, 원래 거기 있었던 듯 다른 자리로 돌아간 이도 있다. 추석을 맞아 “동네를 지키고, 누군가를 돕고, 삶을 돌아보는” 그들을 만났다.
“소방관으로 정년 퇴직하는 게 목표입니다.”
오영환(37) 전 의원은 9월부터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리조트 수상인명 구조요원으로 일한다. 추석 대목, 앉을 틈도 없이 일할 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
지난 29일 그는 지난해 5월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마치고 두 번째로 공시생이 됐고 1년여 만인 지난 7월 서울 소방본부 채용시험에서 9급 소방공무원으로 최종 합격했다고 했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는 집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12시간씩 공부했고, 2차 체력검정을 위해 띠동갑 내외의 어린 친구들과 함께 훈련도 했다. 그리고 올해 소방관 임용 1차 필기에 이어 체력검정과 면접까지 단박에 통과했다.
소방관을 그만둔 지 6년 만이었다. 그 사이 21대 국회에서 4년을 일했다. 그런데 시험을 위해 국회의원 배지만 내려놓은 게 아니다. 그는 국회 입성 전 구조구급대와 산악구조대,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 119 특수구조대(항공대원) 등으로 10년간 근무한 경력을 뒤로하고 새내기 소방관이 된 것이다.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지만 대기 인원이 많아 내년 1월께 소방관 제복을 입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일할 계획이다. 그는 취직하기 힘든 시기에 적성과 전문 자격을 살려 일할 자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현장이 그리웠다”며 “당장은 현장 화재진압대도 감사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년 내 항공대 복귀가 목표”라고 전했다.
‘국회의원 생활에 후회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소방관을 그만둬야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젠 특수구조대로 상공을 날며 인명을 구하는 일만 하고 싶다”고 했다.

“개점휴업 상태에요.”
환갑을 넘은 이상규 전 의원은 15년 차 배관공이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한 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배운 일”이었다. 얼굴이 알려지자 “정치하는 사람 피곤해서 안 받겠다”는 인력시장에서, “동네 형님이 와서 일이나 배우라며 불러줘서 조력공으로 시작한 일이 ‘배관’”이었다.
2012년에는 19대 국회의원(서울 관악을)이 돼 일을 쉬었지만, 2년 만에 위헌정당해산 심판으로 자리를 잃었다. “이후 10년 넘게 현장에서 일했”다. 이 전 의원은 “다 잊고 일이나 같이하자”며 불러준 곳도 공사 현장이었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 자이아파트, 개포동 삼성아파트처럼 수도권 대단지 현장부터 경남 창원시 지방 현장까지 가리지 않고 일했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 무렵까지 일요일 딱 하루만 쉬는 “일만 하면 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지난 1월 사고를 겪었다. 배관 작업을 하다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지난여름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이번 추석 연휴, 그는 쉴 틈이 없다. 현장에 갈 수는 없다. 몸도 문제지만 “세상이 좋아져” 일할 현장이 줄어든 탓이다. 쉴 틈 없이 돌아가던 현장이 지난해 추석부터 잘 열리지 않는다. “원청에서 아예 폐쇄하니 하청은 일을 쉰다”고 했다. 대신 그는 서울 관악구 난향동 근처 시장 곳곳을 돌아볼 생각이다. 지역에서 진보당 간판을 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후보로 나서는 후배와 함께다. 몸도 마음도 여의도를 떠난 지 오래지만 “후배를 돕는 일은 외면할 수 없”다. “요즘도 시장에 가면 민원을 넣는 주민이 꽤 있을 정도”로 관악구 토박이로 20년 넘게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추석 소원을 물었다. 그는 “소일거리처럼 돕는 동네 배관 일 말고, 다시 공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몸을 쓰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강기갑 전 의원(74)이 ‘흙사랑 농장’이라고 이름 붙인 2만평이 넘는 경남 사천의 매실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30일 아침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쨍했다. “여느 때처럼 잡초 ‘밭’으로 염소 서른 마리를 풀어놓고 돌아온 참”이었다. 예전에는 예초기를 돌렸을 그 땅에서 이젠 염소가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그는 “뭘 몰살시키지 않고 더불어 사는 상생이 내 땅 위에 있다”며 “운명이랄까, 업보랄까 땅 냄새만 맡아도 편하다”고 했다.
2012년 의원 임기를 마치자마자 내려왔다. 17·18대 국회의원 생활 8년, “시작할 때 있었던 농사 빚(2억4천여만원)”은 “지금도 이별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정치는 축재의 수단이었지만 그에겐 달랐다. 2004년 농사를 시작할 때 120마리가 넘는 젖소를 키우던 낙농시설은 여의도 생활 얼마 안 돼 접었다. “의원 한다고 1년이 됐을 땐가, 아내는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느냐고 수화기 너머에서 매일 울었”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8년 동안 떠나 있을 때 매실액을 돌보지 못해 그냥 방치돼 있었는데 그게 식초가 됐”다. “10년 가까이 발효된 식초의 맛을 상상해봐라.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고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라고 했다. 식초만이 아니었다. 그 식초 속엔 ‘미생물’이 살고 있었고, 오랜 생명력을 가진 ‘케이(K)3유산균’이라는 특허까지 받았다.
후회는 없을까. “다시 돌아가면 그때처럼 분에 못 이겨 행동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름 따라 산다고. ‘강’한 ‘기갑’이어선가.”
“그렇게 산 시절이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했으니” 남은 삶은 “어울려 살고 싶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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