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직장 내 갈등, 어디서부터 괴롭힘일까?

ㄱ씨는 오전 6시26분 팀장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출근 전이었다. 팀장은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교육청에서는 벌써 보도자료를 냈구나”라고 했다. 이에 ㄱ씨는 “헉.....”이라고 답장했고, 팀장은 “헉이 아니라 바로 보도자료 준비해서 내겠습니다 해야죠”라고 ㄱ씨를 질책했다.
2019년 대전 소재 한 재단법인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된 사건이다. 이렇게 업무 시간 외에 업무 관련 카톡을 보내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일까? 법원은 아니라고 봤다. 업무를 “독려한 것에 불과”하고, 인터넷 기사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신속한 보도자료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 6년차를 맞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당사자나 사용자 쪽도 어디서부터 괴롭힘으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하급심 판례가 축적되는 과정이라, 명확한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혼란은 신고와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0년 5823건에서 지난해 1만2253건으로 크게 늘었고, 공식 통계는 없지만 관련 민사·행정 소송도 늘었을 걸로 추정된다.
이에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그간 판례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판례 분석 자료를 입수해 어떤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는지 살펴봤다.
공개적 질책은 ‘케바케’
노동부가 한국노동법학회에 발주한 연구용역보고서 ‘국내외 직장 내 괴롭힘 판단(판정, 판례) 등 사례 연구’를 보면, 잦은 공개적 질책이나 모욕, 폭언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업무와 일정 수준 관련성이 있더라도 대부분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난 걸로 봤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대학 행정실 주임이 다른 부서의 회계·서무 담당 기간제 직원에게 “모태솔로지?” “눈이 낮잖아” 등 외모를 비하하는 등 언행을 하거나, 부하 직원들이 출장이나 휴가를 보고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화를 내고 회의 도중 “씨X” 등 욕설을 수차례 한 경우, 사립대 학과장이던 교수가 학과조교에게 “기본적인 업무인데 못 배웠냐. 짜증난다” “진짜 마음에 안 들고, 일도 못하고 짜증난다” 등의 말을 반복적으로 한 사례에 대해 법원은 모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특히, 욕설의 경우에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더라도 상급자가 직원들이 듣는 데서 지속적으로 욕설을 섞은 통화를 한 경우도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봐 괴롭힘이 인정되기도 했다.
업무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추궁이나 질책이라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뤄져 피해자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경우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청소년 상담과 복지 관련 정책연구를 하는 법인에서 일하던 한 상담사에 대해 담당 팀장이 다른 직원들이 있는 가운데 “왜 나한테 직접 보고하지 않느냐” “상담은 제대로 하는 게 맞냐? 왜 학생이 주말 동안에 문제가 있었냐? 상담 개입에 대해 말해봐라”라며 추궁하고 질책한 것을 법원은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다만 공개적 질책이 이뤄졌음에도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피해자의 업무 수행 능력이 실제로 부족하다는 정황이나 상당한 증명이 이뤄져 질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다. 일례로, 외상센터에서 일하던 수습 간호사에 대해 선배 간호사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며 질책한 것에 대해 법원은 피해자가 응급실에서 치른 시험 성적이 저조하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에게는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성이 요구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선배 간호사가 교육 목적을 벗어나 폭언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치 않는 사적 연락이나 사생활 간섭은 대개 인정
직장에서 직위나 관계 상 우위를 이용해 피해자에 대한 사생활 관련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거나, 사생활에 개입·간섭하거나,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등 행위도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는 편이다.
기혼 남성 본부장이 같은 팀 미혼 여성 직원에게 카카오톡으로 교제를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자 업무 중 화를 내거나 자살을 암하고 무단 결근한 사건, 어린이집 여성 원장이 여성 교사에게 속옷 종류를 지적하고 신체 접촉을 시도한 경우, 출장에 동행한 부하 직원에게 상급자가 자기 가족의 관광을 부탁한 경우 등이 법원에서 괴롭힘으로 인정됐다.
따돌림도 단골 분쟁 소재다. 법원에서 인정된 괴롭힘 사례로는 피해자를 향해 한숨 쉬거나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사내 메신저로 피해 근로자에 대한 험담을 주고 받은 경우가 있다. 다수가 소수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상으로 한 따돌림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급자에 의한 괴롭힘도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부당해고를 다퉈 복직된 상급자를 부하 직원이 업무 지시를 위한 단체 대화방에서 강제 퇴장시키고 험담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하급자라고 하더라도 회사 내의 평판, 여론 등을 이용해” 상급자를 괴롭힐 수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바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민·형사 소송으로 해결해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76조의 근본적인 한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 등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었어도 근기법상 보호를 받지는 못하고, 개별적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통해 권리 구제를 꾀해야 한다. 판례를 봐도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특수고용노동자 등 근기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법적 보호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우 의원은 “일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일터기본법 제정을 통해 근기법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직내괴 관련 판례 축적 필요”
노동부 용역보고서는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때 업무상 적정 범위에 해당하는지, 지속성·반복성을 얼마나 중요한 기준으로 볼 것인지 등에 대한 법원 해석이 아직은 일관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로 인한 당분간의 혼란은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주어진 법령의 조문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해석을 통해 도출된 개념요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선례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게 보고서 결론이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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