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원했는데 딸 낳았다”며 아빠가 한 몹쓸 짓···성차별이 낳은 혁신가 [히코노미]
그녀는 ‘마녀’였다. 칠흑같이 검은 옷만 고수하고, 얼굴엔 표정이 없어서였다. 얼음장 같은 집엔 좀처럼 온기가 돌지 않았다. 식어 빠진 파이나 빵 조각 따위로 배를 채운다. 어둑한 집에서는 아픈 아이들이 병원을 가지 못한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그녀가 돈이 든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다리가 잘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부(富)가 거친 말(馬)의 성질을 가졌음을 잘 알고 있어서, 어디서나 돈의 고삐를 쥐었다. 꼭 필요한 데에만 돈을 쓰고, 쓸데없이 부를 과시하지 않았다. 개인적 생활에서나, 국가적 대의 앞에서나 같은 원칙이었다. 사치하지 않았고, 국가에 돈을 빌려줄 때도 과한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당대의 사람들은 돈 많은 여자를 낯설어하고 시기해 ‘월스트리트의 마녀’라고 불렀지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성녀의 것에 가까웠다. ‘헤티 그린’의 이야기다.

헤티 하울랜드(결혼 전 성)는 사실상 버려진 아이였다. 1834년 매사추세츠의 부유한 고래잡이 업자로 이름난 하울랜드 가문에서 원하는 건 아들이었다. 성염색체가 XX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헤티는 축복받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그녀도 사람 대접을 받는 듯했다.
온 집안이 반기던 남동생은 그러나 얼마 못 가 죽어버렸다. 엄마는 몸져누웠고, 아빠는 헤티에게 더 이상 미소 짓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헤티 그린은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부모’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에서, 헤티 그린의 삶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위한 일이었지만, 외려 헤티 그린의 자양분이 되고 있었다. 세계가 흘러가는 흐름이 그녀의 작은 몸뚱이에 쌓여가고 있어서였다. 경제라는 물이 헤티 그린 내면에 지식의 샘으로 고였다.

퀘이커 교도로서 에드워드는 버는 것에 무한한 행복을, 쓰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비싼 시가 대신, 싸구려 담배를 입에 물었고, 고급 요리보다 막 끓여 내놓은 수프에 미소 지었다. 그는 항상 말했다. “비싼 것에 물들면,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값싼 것들의 진짜 가치를 잃을지도 몰라.” 딸 헤티도 아버지의 절약 정신을 체화했다. 그의 부유함은 태가 나지 않았다. 단출한 드레스 뿐이었고, 보석은 겨우 한두개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딸이 자랑스러웠다.

헤티는 남자들 곁에 머물렀지만, 그들은 모두 금융인이었다. 돈이 돌아가는 이야기, 가장 유망한 투자처를 논하는 자리였다. 에드워드는 헤티의 뉴욕 여행 비용으로 1200달러를 줬는데, 헤티는 200달러만 쓰고 나머지 1000달러는 채권에 투자하고 왔다. 신랑을 찾지 못했지만, 헤티는 투자처를 찾아서 귀향했다.


사업가 집안 간의 만남은 남다른 곳이 있어서, 두 에드워드는 계약서를 써서 결혼이 비즈니스의 연장임을 분명히 했다. “에드워드 H 그린이 헤티의 재산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린이 계약서에 사인하자, 헤티는 하울랜드란 성을 떼고 그린을 이름 뒤에 붙였다. 헤티가 그린이 되었던 그해, 아버지 에드워드가 죽었다. 헤티는 추스르고 싶어, 남편과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헤티의 유산은 500만달러였다. 오늘날 가치로 1300억원이 되는 거금이었다. 여자의 몸과 재산은 남자의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 에드워드가 친 울타리 덕분에 헤티는 넉넉한 자산을 자기의 철학대로 운용할 수 있었다. 헤티의 투자 촉은 미국을 향해 있었다. 남북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미국에서 그녀는 돈 냄새를 맡았다.

링컨의 영광스러운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린백’의 가치는 폭락하고 있었다. 상처받고 찢겨 헐떡이는 미국을 향한 의심이었다. 재정 우려는 미국 정부의 신뢰를 깎아 먹었다. 낮은 신뢰가 지폐의 가치를 훼손했다. 지폐의 가치가 낮아질수록, 헤티는 그 돈을 죄다 사들였다. 남들이 그린백을 두고 “쓰레기”라고 할 때, 그녀는 거기서 기회를 봤다. 앓아누운 미국에게서, 그녀는 부활할 미국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액면가의 절반에 거래되는 미국 지폐를 그녀는 기꺼이 품었다.
1875년 미국 의회가 ‘Specie Payment Resumption Act’를 통과시켰다. 지폐를 다시 금으로 전액 상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금태환 제도로의 복귀였다. 미국 지폐는 다시 순식간에 제 가격을 회복했다. 헤티는 큰 부를 거머쥐었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못하는 투자 원칙을, 헤티 그린은 실행하고 있었다. ‘대박’의 열기에서 그녀는 냉정을 유지했고, 장이 얼어붙으면 그녀는 투자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큰돈을 벌었다는 졸부들과 정확히 정반대로 행동했다. 수많은 어중이떠중이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경제의 파고에 떠내려갔다.
헤티 그린의 남편 에드워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4년 에드워드는 전 재산을 루이빌&내슈빌 철도 주식에 쏟아 부었다. 그해 철도 업계 집단 사기 사건이 발각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전 재산이 털린 것을 넘어 거액의 빚까지 남았다. 돈을 빌려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헤티는 남편의 부채를 모두 갚아줬다. 빚과 함께 남편도 집에서 내보냈다.

달콤하기 짝이 없는 감언에도, 허랑하고 과장된 이설에도 그녀는 좀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충분히 생각해 보기 전까지는 거래를 성사하지 마라”는 금언을 새기고 있어서였다. 그녀의 부는 차근차근 눈덩이처럼 불었다. 시샘하고, 배 아픈 자들이 그녀를 트집 잡았다. 돈만 아는 마귀, 부를 신으로 삼는 여자. 누군가는 그녀가 수 년째 같은 팬티를 입는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그녀는 어느새 ‘월스트리트의 마녀’로 불렸다.

은행 앞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돈을 빼기 위해서였다. 고함을 치는 사람들 앞에서 은행은 빗장을 걸었다. 모든 예금을 한 번에 내 줄 은행은 없었다. ‘뱅크런’ 앞에서 은행은 무력했다.



1916년, 죽음을 앞둔 그녀의 재산은 1억 달러였다. 당시 미국 GDP의 0.1%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정치권에 줄을 대지도,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도 않은 순백의 돈. 때가 묻지도, 오염되지도 않은 몇 안 되는 달러. 눈을 감기 전 그녀는 딸 실비아에게 말했다. “여성도 경제관념을, 자신의 돈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억압을 정면으로 거부한 ‘마녀’의 마지막 가르침. 혹은 성녀의 메시지.

ㅇ헤티 그린은 미국 GDP의 0.1% 재산을 가졌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돈 많은 여인으로 통한다.
ㅇ그녀는 ‘비쌀 때 팔고, 쌀 때 사는’ 차가운 투자관념을 바탕으로 차분히 돈을 모았다.
ㅇ사치하지 않아 매일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남성 투자자들은 그녀를 ‘월스트리트의 마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ㅇ‘마녀’라는 멸칭과는 달리 그녀는 경제 위기에 빠진 미국에 돈을 대는 등 애국적인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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