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하사품’ 내복, ‘국민의 시간’ 시계…역대 대통령 선물꾸러미 풀어봤더니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뒤 첫 명절인 추석을 맞아 시계와 8도 수산물, 우리 쌀을 추석 선물로 마련했다. “특별 제작된 대통령 시계에는 ‘대통령의 1시간은 온 국민의 5200만 시간과 같다’라는 절실한 마음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삶을 개선하기 위해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담았다”는 대통령실 설명과 함께다. 명절 선물에 시계가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실제 평소 ‘시간’을 강조해 왔다. 9월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1시간은 5200만 국민의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분초를 아껴가며 매진했던 날들이 마치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그 메시지가 이번 선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역대 다른 대통령들은 어떤 선물을 선택했을까?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씨는 설날 선물로 ‘하사품’을 국외 파견 근로자나 군인, 집배원 등에게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군 장병과 어려운 국민에게 담배를, 국외 파견 근로자에게는 통조림과 고추장, 김치 등을 선물했다.
전씨는 신문 집배원과 광부 등 추운 날씨에 밖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방한복을 지급하기도 했다. 내복의 라벨에는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는 글씨가 찍혔고, 선물상자에는 봉황 무늬와 함께 한자로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 새겨졌다. 하사품은 ‘임금이나 윗사람이 주는 물품’이란 말로 잘 쓰이지 않은 지 오래다. ‘각하’도 마찬가지다.

노태우씨는 물품보다는 주로 격려금을 전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향 특산물을 주로 명절 선물로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인 전남의 특산품 김을 자주 선물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 멸치를 명절 선물로 애용했다. 그의 부친은 거제에서 멸치 선단을 운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멸치를 즐겨 선물해, ‘YS 멸치’라는 별명이 선물에 붙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턴 여러 지역의 특산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3년 추석, 호남의 복분자와 영남의 한과를 묶어 ‘지역 통합’ 선물을 마련한 게 대표적이다. 각지의 특산물을 고루 섞는 것에는 ‘지역감정 극복’을 정치적 화두로 삼았던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의 명절 선물에는 지역 전통주가 동봉됐다. 2004년 국화주, 2005년 이강주, 2006년 가야곡왕주, 2007년 송화백일주가 함께 보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주로 지역 특산물을 명절 선물로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였던 2008년 추석에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연산 대추, 전북 부안 재래 김, 경남 통영 멸치 등 전국 특산물을 담아 ‘화합’을 상징하는 선물을 준비했다. 하지만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내부 지적에 부랴부랴 다기 세트로 교체해 불교계에 보낸 일화가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선물에서 주류를 제외해 독실한 기독교인의 색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추석 선물로 경기 이천 햅쌀, 강원 평창 잣, 경북 예천 참깨, 충북 영동 피호두, 전남 진도 흑미 5종 세트를 마련했다. 농협중앙회 평가단의 품질 우수 추천을 받은 국내산 농산물로만 꾸렸다.
논의 단계 초기엔 선물 후보군에 ‘봉하 오리쌀’이 올랐지만,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다음으로 미뤘다고 한다. 선물을 받을 야당 의원들을 고려해 참여정부의 상징성이 큰 품목을 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선물 최종 시안을 받아 든 문 전 대통령의 첫마디가 “술은 어딨느냐?”였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매번 전통주를 명절 선물로 받았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이정도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술은 단가가 세서 넣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은 “예전엔 우리 술도 주고 해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편리하던데…” 하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깐깐한 예산 관리로 화제가 됐던 이정도 비서관은 현재 이재명 대통령실에서 관리비서관을 맡고 있다.
이후 2020년 설 선물엔 봉하마을 떡국 떡이 품목에 포함됐다.
2022년 설 선물에는 포장지로 독도 일출 사진을 사용했다. 설 선물을 받은 주한 일본대사관이 독도 그림을 문제 삼아 선물을 반송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명절 선물은 지난해 9월 마련한 추석 선물이었다. 도라지 약주·유자 약주 등 전통주와 배 잼·청귤 핸드크림 등 지역 특산품이 담겼다.
12·3 비상계엄 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명절 선물’이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김 여사에게 고가의 시계를 전달한 사업가 서성빈씨는 2022년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후원금 최고 한도액인 1천만원을 후원했다. 서씨는 지난 8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6명 정도 모아서 후원금 낸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김 여사가 이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전달했다”며 “이후 김 여사가 대통령 명절선물을 후원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추석 선물은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에게 전달됐으나, 내란과 주가조작 등 혐의로 구치소에 구금된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선물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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