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한겨레 2025. 10. 4. 1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30대 중반의 지수씨는 얼마 전 3년간 사귄 연인과 이별했다. 이별은 지수씨가 먼저 말했다. 상대는 종종 연락을 끊거나 이유 없이 침묵했고 지수씨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감정의 기복에 지쳐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수씨는 '이 관계는 내게 상처만 줄 뿐, 더 이상의 의미가 없구나' 판단해 이별을 고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게티이미지뱅크
“난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단다.”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30대 중반의 지수씨는 얼마 전 3년간 사귄 연인과 이별했다. 이별은 지수씨가 먼저 말했다. 연인은 감정이 불안정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어 잦은 상처를 주곤 했지만, 동시에 가장 잘 웃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상대는 종종 연락을 끊거나 이유 없이 침묵했고 지수씨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감정의 기복에 지쳐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수씨는 ‘이 관계는 내게 상처만 줄 뿐, 더 이상의 의미가 없구나’ 판단해 이별을 고했다. 친구들은 “너무 잘 헤어졌어, 고생 끝났네!”라며 위로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복잡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게 아닌 데도 그 사람과 웃던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복잡한 감정들 속에서 지수씨는 혼란스러웠다.

좋기도 밉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이 그립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때, 좋은 사람이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멀리하게 되면 ‘왜 이러지?’, ‘이건 잘못된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감정과 태도, 경향성을 동시에 느낄 때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 부른다. 양가감정은 특정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다른 감정이나 태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정서적 경험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양가감정을 경험한다. 친구의 성공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내 상황과 비교해 우울감을 느끼거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퇴사 결정에 후련하면서도 불안함을 느낀다. 잔뜩 기다렸던 가족 모임에서 부담스러운 잔소리에 얼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자녀에게 엄격한 훈육 후 아이를 위한 행동이라 확신했지만 미안함과 후회가 따라온다. 사랑과 미움, 기대와 실망, 고마움과 짜증 같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느껴질 때 우리는 당황하거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클립아트코리아

충돌하는 두 가지 마음

자기검열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양가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양가감정을 ‘얼른’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명확한 감정이 건강하다”는 사회적 메시지 속에서 자란 우리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이분법에 익숙하다. 감정이 선명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비일관적이거나 불안정하다고 자책하거나, “도대체가 내 마음을 전혀 모르겠네”라며 감정을 단순화하고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려 한다. 양가감정은, 마음이 ‘일관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정직한 감정들이 함께 충돌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전혀 다른 감정의 충돌이라기보다 서로 연결되어 맞닿아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랑하는 만큼 밉고,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이며, 믿었기에 배신감이 크고, 기대가 컸기에 분노가 생긴다. 가족, 연인, 직장 상사처럼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사람일수록 감정은 복잡하고 모순될 수 있다. 관계 안에서의 감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양가감정은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정신분석에서는 발달과 통합을 향한 과정에서 양가감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동일한 대상인 아버지에게 느끼는 사랑과 증오가 죄책감과 불안, 억압 등 심리적 구조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멜라니 클라인은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분리해서 인식하던 유아가 점차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가진 존재로 엄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양가감정을 통합해간다고 설명했다.

억누르거나 삭제하지 않기

양가감정을 인식하고 통합해가는 과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필요하다. 양가감정을 잘 소화하여 경험할 수 있게 되면, 타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내 안의 모순을 견디는 심리적 기초가 생긴다. 한나 시걸은 이를 ‘양가감정의 성취’라 부르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양가감정은 우리가 자기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중요한 건, 양가감정을 억누르거나 삭제하지 않고, “나는 지금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 ‘이런 마음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이 양가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세분화하여 인식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잘 이해하고 관계를 돌볼 수 있다.

양가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감정을 순위 매기지 않고, 좋은 감정만 표현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모순되고 상반된 마음이라 할지라도 ‘어느 쪽이 진짜지?’ 라고 나를 취조하는 대신 ‘둘 다 내 감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생각이 많을 때는 이 여러 감정 속에서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손이 가는 대로 감정을 자유롭게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음은 평소 감정의 복잡함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목록이다. 이 중 몇 문항이 내게 해당하는지 살펴보자.

솔직한 감정 표현을 방해하는 마음의 신호들

□ 내가 한 말을 오해할까 봐 감정을 돌려 말할 때가 있다.

□ 감정을 말하고 나면 괜히 말했나 싶어 불편해진다.

□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 내 기분이나 마음을 잘 파악되지 않을 때가 많다

□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면 관계가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

□ 연인과 자주 연락하면 서운한 일이 생길까 봐 오히려 거리를 둔다.

□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다스리는 편이다.

□ 최근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다.

*6개 이상: 감정 표현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3~5개: 막상 중요한 순간에 표현하기를 머뭇거릴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돌봐 주세요.

*2개 이하: 감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는 편입니다. 복합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과 풍부하게 나누어 보세요.
클립아트코리아

복잡함에 머무르는 힘

양가감정을 이해하고 담아내는 것은 복잡한 내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적절하거나 충분치 않은 마음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전혀 다른 듯 보이는 두 가지 마음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으려면,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실망할 수 있고, 신뢰하면서도 분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감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단순하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해볼 질문들

1. 지금 내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두 가지 감정은 무엇인가요?

2. 복잡한 마음을 느낄 때 나는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편인가요? 회피하려 하나요?

3. 관계에서 좋은 것만 보려 할 때, 어떤 마음을 억누르게 되는 걸까요?
오늘의 용어: 양가감정(ambivalence)

양가감정은 정신분석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핵심개념의 하나로 하나의 사물과 사람, 관계나 상황에 대해서 서로 반대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1910년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오이겐 블로일러가 처음 사용하였고, 프로이트가 1913년 ‘토템과 터부’를 발표하면서 아버지를 향한 애증, 즉 동일한 대상에게 느끼는 사랑과 증오가 무의식적 갈등과 억압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였다. 클라인과 비온 등 대상관계학자들은 양가감정을 인간관계의 성숙 과정과 감정의 통합 능력과 관련하여 이론을 발전시켰다. 핵전쟁에 반대하는 정신분석가 모임을 이끌었던 한나 시걸은 1992년 발표한 논문 ‘양가감정의 성취(The Achievement Of Ambivalence)’에서 개인의 감정뿐 아니라 국가와 세계 정서에서 진영 간에서 이루어지는 양가성의 성취가 이념과 통치 체제를 따르는 제도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노은정의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은?

개인이 느끼는 일상의 정서와 감정에는 무의식적인 모순과 억압된 기억, 문화적 압박과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때문에 잘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마음을 돌보는 일은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모호하고 낯선 마음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보는 노은정의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https://www.hani.co.kr/arti/SERIES/3316?h=s)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에서 만나보세요!

노은정 두번째마음 심리상담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