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무너뜨린 ‘비용강요’ 스스로 택하나…북한의 ‘핵·재래식 무력 병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1·12일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를 현지 지도했다고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당 제9차 당대회에서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상용무기는 전차, 군함, 전투기 같은 재래식 무기를 말한다.
북한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경제난을 겪으면서 돈이 많이 드는 재래식 무기는 접어두고 핵·미사일, 수도권을 겨냥한 장사정 포에 집중해왔다. 남북 경제력 격차가 너무 벌어지자 북한이 고육책으로 군사력 건설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한국은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첨단 무기 증강을 지속해, 남북의 재래식 군사력에서 질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관건은 재원 마련과 어렵게 만든 재래식 무기가 실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지난해부터 북-러 군사협력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북한의 경제 형편은 여전히 어렵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2015년과 코로나19의 여파로 2020~2022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올해 4월과 5월 5000t급 ‘최현급’ 구축함 1번함 및 2번함을 진수하고 내년 2026년 10월까지 3번함을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이슈브리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건설과 동아시아 안보 구도에의 영향’에서 “한국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건조 비용이 1조원 내외란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북한의 인건비나 기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하더라도 이에 비견하는 5000톤급 내외의 구축함 건조 비용에는 북한 역시 억대 달러 단위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러한 규모의 함정을 2년 내에 3척 이상을 복수로 건설하는 것은 무리한 투자”라고 주장했다.
또 전차의 능동 방어체계 구축과 신형 군함 건조를 위해서는 민간산업 분야에서 금속·전자·조선 분야의 첨단 기술력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이런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확인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이 2023년 7월 ‘전승절’ 열병식에서 공개한 ‘천마-2호’ 계열의 전차는 위협물체를 사전 탐지하여 무력화하는 능동방호체계(APS)와 유도탄 탑재 기능을 갖춘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이러한 성능이 실제로 전투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가 없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43년간 미국의 국방·군사 전략을 설계한 앤드류 마샬의 ‘경쟁전략’을 연상시킨다. 경쟁전략은 비용 강요 전략이라고도 불린다. 앤드류 마셜은 소련의 군사적 강점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련의 군비 투자 가치를 낮추는 방식으로 국방부 지출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가령 미국이 핵 무장이 가능하고 소련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는 핵 폭격기 전력을 유지하면 11개 시간대 걸친 장대한 국경선을 보유한 소련은 첨단 방공체계 유지와 개량에 미국 폭격기 예산보다 더 큰돈을 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마셜은 냉전 때 미국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장점을 이용하여 소련의 상대적 열세나 약점을 공략하는 전략을 세워, 소련이 군사력에 과잉 투자하도록 유도해 소련 붕괴를 재촉하는 전략을 세우도록 했다. 1980년대 소련의 군사비는 국민총생산(GNP)의 40%에 육박했고 과도한 군사비야말로 소련 경제는 물론 소련 자체의 붕괴로 몰고 간 원인으로 꼽힌다.
김 위원장이 실제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으로 2중 군비경쟁에 나설 경우 북한의 약점(돈과 기술)으로 한국의 강점(돈과 기술)을 공격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냉전 때 마샬은 소련에게 막대한 재정 부담과 힘든 선택을 강요하는 세심한 전략을 만들어 내려고 고심했다. 핵무력·상용무력 병진정책은 미국 전략가들이 머리를 짜내 소련에 던졌던 비용강요 전략을 북한 스스로가 선택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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